[김민호 기자] "신문 내용이 너무 지엽적이다"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진행방식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증인신문이 마냥 늘어지는 것을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이정미 헌재 소장 권한대행 등이 박 대통령 측의 변론을 적극적으로 제지해 눈길을 끌었다.

9일 헌재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기일에서 이 권한대행은 작심한 듯 조성민 전 더블루K 대표 증인신문에 개입해 대통령 측이 중복 질문이나 불필요한 질문을 할 때마다 말 허리를 끊었다.

굳은 표정으로 심리를 시작한 그는 박 대통령 측이 조씨에게 월급을 어떻게 나눠 받았는지를 꼬치꼬치 묻자 "월급을 받았다는 사실을 지금 장시간 질문하고 있다. 효율적으로 신문하라"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지적했다.

또 박 대통령 측이 그에게 K스포츠재단의 정관을 읽어봤느냐며 말꼬리를 잡자 "신문 내용이 너무 지엽적"이라고 막아섰다.

대통령 측이 반복해 더블루K와 K스포츠재단의 관계를 묻자 "질문 내용을 이해 못 하겠다. 앞부분에서 다 (조씨가) 설명했지 않느냐"고 '정리'하기도 했다.

최근 근거 없는 '탄핵기각설'이 불거지는 등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재판부의 '심증'에 관한 무분별한 추측이 언급되고, 박 대통령 측 지연 전략에 끌려간다는 비판이 나오자 헌재가 심리의 주도권을 틀어쥐고 사건 진행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탄핵심판 주심인 강일원 헌법재판관 역시 '공격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강 재판관은 박 대통령 측이 계속해 조씨의 검찰 수사기록 내용을 다시 물어보자 말을 끊고 "지금 왜 수사기록을 다 확인하고 계시느냐.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박 대통령 측이 같은 행동을 반복하자 강 재판관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왜 자꾸 불리한 내용을 물으시는 것인지 모르겠다. 대리인이 피청구인(대통령)의 이익에 반대되는 신문을 하는데, 핵심만을 물어보라"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대통령 측이 조씨에게 "급여가 법인카드로 나간 게 아니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자 "급여가 어떻게 법인카드로 나가느냐"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탄핵심판 청구인인 국회 소추위원 측도 핀잔을 들어야 했다.

강 재판관은 국회 소추위원 측 대리인이 조 전 대표에게 "증인이 검찰 조사에서 최순실씨가 실질적으로 K스포츠재단을 지배하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를 다시 한 번 설명해달라"고 하자 "지금까지 다 증언했는데 뭘 설명하냐"며 "자꾸 중복하지 말고 딱 집어서 물어달라. 지금 질문은 다 중복이다"라고 지적했다.

또 국회 소추위원 측이 조 전 대표에게 의견을 묻는 질문을 하자 "(조 전 대표는) 답변 안 해도 된다. 의견을 묻지 말아달라"고 강조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헌재가 재판 지휘권을 행사해 탄핵심판 변론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은 박한철 소장이 1월 31일 퇴임한 이후 심판 진행의 공정성과 신속성을 둘러싸고 여러 얘기가 나오는 상황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헌재가 대통령 측 신청 증인을 대거 받아들여 2월 말 선고가 불가능해지면서 외부에 '끌려가는' 듯한 인상을 줄 수 있 다는 점을 고려해 '적극적인' 자세로 나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