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북한의 '비운의 황태자'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됐다. 지금까지 알려진 피살 당시의 상황을 볼 때 현재로선 독극물에 의한 암살로 추정되고 있다.

15일 뉴스트레이츠타임스(NST)와 더스타 등 현지 매체들이 당국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을 종합하면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 제2청사에서 괴한의 습격을 받고 병원으로 옮겨지던 중 구급차에서 숨졌다.

셀랑고르주 범죄조사국(CID) 파드질 아흐마트 부국장은 김정남이 10시에 떠나는 마카오행 비행기의 탑승이 막 시작될 무렵인 9시쯤 공항직원들에게 "누군가 뭔가로 내 얼굴을 문질렀다"며 어지럼증을 호소했다고 전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으로서 그동안 살해위협을 호소하며 도피생활을 해온 점으로 볼 때 충분히 그럴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치밀한 준비 아래 감행된 듯한 암살극 상황을 재구성해보면 이렇다.

6일부터 말레이시아에 머물었던 김정남은 마카오로 향하는 항공편에 탑승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했다. 그는 비행기가 출발하기 약 한 시간 전에 공항 안에서 봉변을 당했다.

김정남은 13일(이하 현지시각) 오전 9시 이전에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 셀랑고르주 범죄 조사국 부국장 파드질 아흐마트는 김정남이 습격을 받은 시간이 13일 오전 9시쯤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2(KLIA2)라고 밝혔다.

통상 암살이라고 하면 인적이 드문 곳에서 은밀하게 이뤄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번 암살 사건은 공항이라는 공공장소에서 인적이 붐비는 가운데 범행이 이뤄졌다.

 
암살사건이 발생한 장소는 쿠알라룸푸르 공항 제2청사의 항공편 탑승권 발매용 키오스크(무인단말기) 부근이다. 사진에서 보듯 인파로 매우 붐비는 곳이다. 한때 IT 사업을 했던 김정남은 전자기기 사용에 능숙하기 때문에 비행기 표 발권은 주로 무인단말기를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남이 비행기 표 발권을 하려 할 때 신원 미상의 여성 2명이 출국장에 있는 김정남 뒤로 접근했다. 범인들은 김정남의 뒤를 낚아챈 뒤 얼굴에 독극물로 추정되는 액체를 뿌렸다.

인적이 붐비는 장소에서 김정남의 얼굴에 '순식간'에 독극물 스프레이를 뿌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파드질 아흐마트 부국장은 "그(김정남)는 출발대기장 안내 데스크 직원에게 누군가가 그를 뒤에서 잡고 얼굴에 액체를 뿌렸다고 말하면서 도움을 청했다. 그는 즉각 공항 내 치료소로 이송됐다"고 말했다.

아흐마트 부국장은 "공격 도구가 천이었는지 바늘이었는지는 우리는 모른다"고 설명했다. 한편, 용의자로 추정되는 여성 1명의 모습이 공항 CCTV에 잡혔다. 그녀는 하얀색 상의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이 여성은 작은 크로스 백을 메고 공항 밖에 서서 뭔가를 기다리는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여성은 단정한 차림이지만 날렵한 매무새가 눈길을 끌었다.

이를 두고 현지 언론들은 범인 2명이 숙달된 암살자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을 했다.

아무리 사건 현장이 인파가 몰리는 혼잡한 곳이라도, 독극물 스프레이로 상대를 공격하고 현장을 빠져나가려면 고도의 훈련을 받은 전문가일 것이라는 추측이다.

얼굴에 독극물 추정 피습을 당한 김정남은 공항에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푸트라자야 병원으로 급히 이송됐다.

그러나 김정남은 결국 병원으로 이동하는 도중 숨지고 말았다.

 
그런데 김정남은 본명을 사용하지 않은 여권을 갖고 있었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공식적으로 밝힌 그의 사망보고서에는 이름이 김정남이 아닌 '김철'이라고 찍혀있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김정남의 사인을 일단 '급사'로 처리한 채 부검을 통해 정확한 사인을 밝히겠다고 했다. 부검은 15일에 이뤄질 예정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김정남이 말레이시아에서 접촉한 사람과 그의 동선을 파악하는 한편 달아난 범인들의 행방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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