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많은 사람들이 TV를 통해서 넬슨 만델라의 장례식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많은 전·현직 세계 정상들이 모여 그분의 서거를 애도하는 모습도 보았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을 대신해서 정홍원 총리가 참석했다. 물론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대통령께서 직접 참석했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스케줄로 말하면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보다 바쁜 사람이 이 세상에는 없을 터인데, 그는 부인을 동반해서 다녀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추모식 연설도 맡아서 했다. 거기다가 적대국인 쿠바 대통령도 만나 먼저 악수를 청했다. 그는 만델라가 보여준 용서와 화해의 뜻을 그곳에서 실천한 셈이다. 오바마로서는 이번에 미국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세계만방에 보여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세계는 미국을 종이 호랑이라고 얕잡아 보기도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이 기회를 통해 미국이 아직도 건재하다는 것을 세상에 재확인시켰다.

그렇게 보면 박근혜 대통령에게는 대한민국이 경제적으로 10대국에 진입했다는 것을 그곳에 모인 세계정상들과 TV를 통해 세계만방에 보여 줄 수 있는 기회였는데, 안타깝게도 놓치고 말았다. 박 대통령은 지금까지 해외순방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왔다. 이번에 남아공에 가셨더라면 어떠한 형태로든지 또 한 번의 외교성과를 거두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또 한가지, 그곳에는 북한 대표도 와 있었다. 물론 그 사람과의 격이 맞지 않아 만날 기회는 없겠지만, 대한민국이 자유국가의 일원으로 세계정상들과 동일한 국격을 가졌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 줄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북한의 정상은 자유롭게 외국에 나갈 처지도 못 되고, 자신의 정적들을 숙청하느라고 피를 보고 있는 이때, 그들의 적이고 원수인 대한민국의 정상은 세계의 정상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기회였다. 대한민국, 아니 청와대는 이 기회를 놓친 것이다.

더욱이 이 장례식이 누구의 장례식인가. 인종차별을 없애는데 목숨을 바친 분의 장례식이고, 원수를 원수로 여기지 않고 용서와 화해를 몸소 실행한 위대한 한 인간을 추모하는 자리가 아니었던가. 그래서 우리 대한민국도 우리를 전쟁광으로 알고 있는 북한을 향해 남한은 용서와 화해를 위해 북한과 대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것을 보여 줄 절호의 기회였다. 정말로 좋은 기회를 놓쳐서 매우 아쉽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대통령이 이곳에 못가면 우리 국회 여야대표단이 그곳에 가서 용서와 화해를 배우고 얼싸안고 눈물로써 회개할 기회가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본다.

넬슨 만델라는 인류의 평화를 위해 27년간의 옥살이를 한 분이다. 일생의 4분의 1을 감옥에서 보낸 분이다. 9년의 옥살이를 겪어 본 나는 감옥에서의 27년이 얼마나 긴 세월인지 잘 안다. 그것도 자신이 비도덕적인 일을 해서 감옥에 간 것이 아니기 때문에 너무나 억울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도 그는 자기를 감옥에 보낸 사람들을 용서했다.

그의 이러한 헌신으로 남아프리카는 인종간의 차별이 없어져 흑인 아이들도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가지게 되어 같은 학교에서 백인 아이들과 함께 공부할 수 있게 되었고 유색인도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나라를 만들었다.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헌신으로 미국도 법적으로 인종차별이 없어진 것과 같다. 넬슨 만델라와 마틴 루터 킹 두 분은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이들의 업적에 비하면 노벨상이 오히려 초라할 정도다.

넬슨 만델라의 마지막 길은 남아공이 흑인과 백인이 서로 얼싸안고 함께 그의 죽음을 애도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마틴 루터 킹은 백인우월주의자의 흉탄에 쓰러졌다. 많은 양심 있는 미국인들은 이것을 미국의 추한 부분이라고 부끄러워한다.

만델라와 킹 두분 모두 인종차별을 없애기 위해 헌신을 했다. 만델라는 용서와 화해가 깃든 헌신이었으나 킹은 흑인들의 권리를 더 주장했다. 그래서 만델라가 세계 사람들에게 더욱 칭송받는 이유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만델라는 세계인들에게 진정한 인류애와 세계 평화를 생각하게 하는 소중한 기회를 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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