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法꾸라지'(법+미꾸라지)로 불리는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영수(65·사법연수원 10기) 특별검사팀을 향해 '반격'을 시작했다.

이른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블랙리스트) 작성을 지시·주도한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실장은 "비정상을 정상화하려 한 정책 수행이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그는 재판에서 특검팀이 주장하는 공소사실의 의미가 불명확하고 내용 파악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며 석명(釋明·사실을 설명해 내용을 밝힘)을 신청했다.

공소사실에 헛점이 많으니 무리한 기소라는 취지다. 김 전 실장이 석명 신청을 통해 법망을 피해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김 전 실장 변호인은 28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등 혐의 첫 재판에서 "공소장의 범죄사실은 김 전 실장의 어떤 행위가 범죄가 된다는 것인지 잘 구분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실장 변호인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며 이같은 논리를 펼쳤다. 특검팀이 주장하는 공소사실만으로는 범죄 행위가 특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변호인은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의 행위를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강요죄의 상상적 경합범으로 기소하고 있다"며 "어떻게 직권을 남용했다는 것인지, 어떠한 행위가 강요죄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구체적인 기재가 없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특검팀 공소장에 "종북세력이 문화계를 15년간 장악했다. CJ와 현대백화점 등 재벌도 줄을 서고 있다. 정권 초기에 사정을 서둘러야 한다. 이것은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국정과제다"라는 김 전 실장의 발언 등이 적시된 것을 문제 삼았다.

변호인은 "당시 발언은 대한민국을 적대시하는 세력이 문화계를 장악하고 있으니 국정 정상화를 위해 같이 노력하자는 취지다"며 "이런 발언이 모두 법률위반에 해당한다는 것인지 명확히 설명하라"고 특검팀에 요구했다.

특검팀이 김 전 실장과 최순실(61)씨가 공모했다고 공소사실에 적시한 점에 대해서는 "김 전 실장은 최씨와 만나거나 연락한 적이 한 번도 없다"며 "김 전 실장과 최씨가 어떻게 공모했다는 것인지 특정하고, 어떻게 순차공모가 가능한지 설명하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사실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법리상으로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정치적 사건'이기 때문에 법리상 직권남용 등 혐의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취지다.

김 전 실장 변호인은 "이 사건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 수호를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문화정책에 대해 이른바 좌파 세력이 직권남용이라는 잘못된 논리로 접근하고 있는 정치적 사건"이라며 "대통령의 문화예술 정책이 범죄가 될 리 없다"고 강조했다.

또 "과거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10년을 거치면서 좌파 진보세력에게 편향된 정부 지원을 균형있게 진행하려는 정책, 즉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는 정책이 직권남용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어 "법조계 인사들에게 김 전 실장의 행위가 범죄가 되는지 논의한 바 있으나, 범죄가 성립된다고 답변한 사람은 아직 발견 못했다"며 "특검팀은 성실히 답해 달라"고 밝힌 뒤 재판부에 A4 용지 7장 분량의 석명요구 신청서를 제출했다.

김 전 실장은 이날 재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공판기일과 달리 공판준비기일에는 피고인이 직접 법정에 나올 의무가 없다.

한편 김 전 실장은 앞서 자신이 특검팀의 수사대상이 되지 않는다며 법원에 이의신청을 냈으나 기각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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