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NS 캡쳐
[신소희 기자]한(漢) 원제(元帝)가 전국에서 후궁모집을 한다고 하자 지원자가 수천 명에 이르렀다.

이때 왕소군(본명 왕장王嬙)도 18세의 나이에 후궁으로 선발되었다. 황제는 모연수(毛延壽) 등 화공들에게 궁녀들의 초상화를 그려 바치게 했다.

부귀한 집안 출신 궁녀들은 화공들에게 예쁘게 그려 달라고 뇌물을 바쳤으나 왕소군은 집안이 빈천하여 뇌물을 바치지 않았다.

모연수는 왕소군의 용모를 형편없이 못생기게 그려버렸다. 왕소군은 입궁한지 5년이 흐르도록 황제의 얼굴도 볼 수가 없었다.

남흉노의 호한야(呼韓邪) 선우가 모피와 준마 등 많은 공물을 가지고 와서 원제에게 공손히 문안을 올렸다. 크게 기뻐한 원제는 성대한 연회를 베풀어 호한야 선우를 환대했다.

호한야는 원제에게 황제의 사위가 되고 싶다고 청했다. 원제는 그의 청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공주를 시집보내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한나라 황실의 위엄을 과시하고 싶어 자기 후궁 중에서 아직 총애를 받지 못한 미녀들을 불러와 술을 권하게 했다.

궁녀들이 들어오자 호한야는 다채로운 모습에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그중에서 절세의 미인을 발견하고는 즉시 원제에게 또 다른 제의를 했다.

“황제의 사위가 되기를 원하지만 꼭 공주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저 미녀들 중의 한 명이어도 괜찮습니다.”

원제는 호한야의 제의를 즉석에서 수락하였고, 호한야는 왕소군을 지목했다. 너무나 아름다운 왕소군의 미모에 원제도 그만 반하고 말았다. 그러나 황제로서 한 번 내린 결정을 다시 번복할 수도 없었다.

원제는 연회가 끝난 후 급히 돌아가서 궁녀들의 초상화를 다시 대조해 보았다. 왕소군의 그림이 본래의 모습과는 너무 다른 것을 발견한 원제는 모연수를 참수하였다. 원제는 호한야에게는 혼수가 아직 준비되지 않았으니 3일만 기다리라고 속이고는 조용히 왕소군을 미앙궁(未央宮)으로 불러 사흘 밤 사흘 낮을 함께 보냈다.

3일 후 왕소군은 흉노족 차림으로 단장을 하고 미앙궁에서 원제에게 작별을 고하였으며, 원제는 그녀에게 소군(昭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왕소군은 흉노 땅에서 한나라와의 우호적 관계 유지를 위해 노력하여 그 후 80여 년 동안 흉노와 한의 접전은 없었다고 한다.

호한야 선우가 죽은 후 호한야의 본처 아들인 복주루(復株累) 선우가 왕소군을 취하려 하자

왕소군은 한나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성제(成帝)에게 서신을 올렸으나 성제는 흉노의 습속을 따르라고 명했다.

왕소군은 다시 복주루의 연지(閼氏, 선우의 황후)가 되어 딸 둘을 낳았다.

왕소군이 죽은 후 그 시신은 대흑하(大黑河) 남쪽 기슭에 묻혔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가을에 접어든 이후 북방의 초목이 모두 누렇게 시들어도 오직 왕소군 무덤의 풀만은 푸름을 잃지 않고 있기 때문에 ‘청총(靑塚)’이라 하였다고 한다.

왕소군이 흉노를 향해 떠나갈 때 마지막으로 장안(長安)을 한 번 바라본 다음 가슴에 비파를 안고 말에 올랐다고 한다. 왕소군 일행이 장안의 거리를 지나갈 때는 구경 나온 사람들이 거리를 꽉 메웠다.

왕소군이 정든 고국산천을 떠나는 슬픈 마음을 달랠 길 없어 말 위에 앉은 채 비파로 이별곡을 연주하고 있는데, 마침 남쪽으로 날아가던 기러기가 아름다운 비파소리를 듣고 말 위에 앉은 왕소군의 미모를 보느라 날갯짓하는 것도 잊고 있다가 그만 땅에 떨어져 버렸다고 한다.

여기에서 유래하여 왕소군의 미모를 ‘낙안(落雁)’이라고 칭하게 되었다.

왕소군이 정든 고국산천을 그리며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

오랑캐 땅엔 꽃도 풀도 없어

봄이 와도 봄 같지 않구나"

라고 읊었는데, 이것이 '春來不似春 (춘래불사춘)'의 유래다.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이라는데, 지금 어느 누구의 봄이 가장 서러울까

한문공부도 할겸 심심풀이도 할겸 요즘 정국을 春來不似春으로 읊조려 본다.

萬事亨通 一瀉千里

(만사형통 일사천리)

暴力疾走 槿海大君

(폭력질주 근해대군)

彈劾政局 火焰怨聲

(탄핵정국 화염원성)

四面楚歌 甕中之鼠

(사면초가 옹중지서)

左右兩手 數十奴僕

(좌우양수 수십노복)

獄中雲集 束手無策

(옥중운집 속수무책)

春來春來 不似春春

(춘래춘래 불사춘춘)

靑瓦官邸 別無花草

(청와관저 별무화초)

세상만사 쥐락펴락

형통하던 근해통령

심중하나 가지고도

시원스레 일사천리

어쩌다가 모금들켜

탄핵심판 신세되니

주말이면 어김없이

광화문에 촛불함성

우인들과 수족들은

옥중으로 모여들어

손도발도 묶였으니

방책일랑 어드멘고

봄이 오고 봄이 와도

정녕으로 봄 같잖고

청기와 집 관저마저

신통한 놈 없을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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