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내리진 지난 12일, 관가도 일손을 놓고 결과를 주시했다. 탄핵 인용으로 불확실성이 일단 해소됐지만 조기 대선에 따른 부처 개편 가능성을 예상하며 어수선한 모습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경제부처 한 고위 공무원은 "최근 몇 달간 눈치만 보면서 여러 현안을 다음 정부로 미루고 있다"며 "벌써부터 다음 정권을 누가 잡을지, 어느 줄에 서야 할지 고민하는 분위기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놓았다.

정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결정 이후 중국인 관광객이 급감하고 중국 내 '혐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는데 정부가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도 이런 분위기와 관련이 있다. 기획재정부, 문화체육관광부 등 부처는 '검토'만 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대응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공무원들은 요즘처럼 세상이 바뀌는 시기에는 일을 벌이지 않고 가만히 엎드려 있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은다. 또 정치가 관료사회를 완전히 지배해버려서 '늘공(늘 공무원)'들은 더 이상 할 게 없다는 자조도 나온다.

대선이 53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문재인 민주당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1위를 달리자 관료들 사이에 문 캠프에 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공직 사회에서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교수나 친노계 정치인과의 인연을 강조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문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 비서실장을 지내던 시절 청와대 파견 근무를 했던 공무원들을 가리켜 "차기 정부 황태자"란 말까지 나오고 있다.

문재인 캠프의 한 관계자는 "노무현 정부 때 인연을 맺은 공무원들이 한동안 연락이 뜸하다가 요즘 수시로 전화해서 밥을 먹자고 한다"고 말했다.

17일 조선일보는 관료들의 문재인 캠프 줄 대기 행보가 늘어나면서, 공직자들이 본업은 제쳐 두고 잿밥에만 관심을 기울이는 '기강 해이'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매체에 따르면 경제 부처의 한 과장급 간부는 "요즘 문재인 캠프와 긴밀히 연락을 취하느라 바쁜 선수들이 있다는 말이 세종청사에 널리 퍼졌다"고 했다. 일부 고위 공직자가 문재인 캠프에 참여한 교수들과 연락을 주고받으며 눈도장을 찍으려 한다는 것이다. 학연(學緣), 지연(地緣)을 매개로 민주당 내 친노 정치인들과 긴밀하게 정보를 주고받는 관료들이 적지 않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문재인 후보 측에서 섀도캐비닛(예비 내각)과 정부 내 핵심 보직 리스트를 만든다는 소문이 나면서 이름을 올려보려고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런 공무원을 가리켜 '문(文)바라기'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했다. 경제 부처의 한 30대 공무원은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근무 경력이 있는 간부 밑에서 일해야 앞길이 보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부 공무원은 문 후보와의 '연결 고리'를 은근히 자랑하기도 한다. 기재부 세제실의 일부 공무원들은 문 후보 측에 세제실장(1급)을 지낸 선배가 둘(김진표 의원·이용섭 비상경제대책단장)이나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출신 지역별로 웃고 우는 기류도 있다. 문 후보가 앞서가면서 민주당의 주축인 호남이나 PK(부산·경남) 출신들은 기대감을 숨기지 않는다. 반면 박근혜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던 TK(대구·경북) 출신들은 사석에서 "앞날이 깜깜하다"고 푸념한다. 창조경제 등 박근혜 정부 색채가 뚜렷한 업무를 맡았던 관료들은 해외 근무를 자청하는 등 피신을 시도하고 있다.

문 후보가 섀도캐비닛을 공개할 경우 줄 대기가 더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기획재정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지금처럼 문 후보가 크게 앞서는 상황에서 섀도캐비닛이 발표되면 끈을 대야 할 대상이 명확해져 더 가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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