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박근혜 전 대통령 측 뇌물공여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 출석한 최태원 SK그룹 회장.

검찰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2015년 광복절 특별사면과 면세점 사업권 획득, SK텔레콤의 주파수 경매 특혜, CJ헬로비전 인수·합병 등 여러 경영 현안에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을 받는 대가로 자금 지원을 한 게 아닌지 캐물었고 최 회장은 재단 출연금에 어떠한 대가 관계도 없으며 부정한 청탁 또한 한 적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2015년 7월과 작년 2월 두 차례 면담에서 양측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모종의 교감이 있었는지, 2차 면담 직후 K스포츠재단의 80억원 추가 지원 요구가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등도 핵심 조사 대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3시간 넘게 강도 높은 조사를 받고 19일 오전 3시 30분께 조사실을 나와 미리 준비된 차를 타고 청사를 빠져나갔다.

이날 검찰의 최 회장 소환은 '박근혜 구속'을 위한 마지막 퍼즐을 맞추기 위함이다.

지난해 검찰은 대기업 총수들을 조사한 뒤 이들을 '강요의 피해자'라고 판단한 바 있다.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구속기소)씨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미르·K스포츠재단에 돈을 냈다고 본 것이다.

다만 검찰은 지난해 11월을 전후로 "뇌물죄 적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유지했다가, 수사 막판 "법리 검토를 하고 있다"는 쪽으로 태도를 바꿨다. 박 전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 사이에 '뒷거래'를 했다는 정황이 점차 드러나자 방향을 전환한 것이다.

조사 결과에 따라 최 회장은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우처럼 강요·직권남용의 피해자에서 뇌물공여 혐의의 피의자로 신분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

최 회장은 2015년 8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났고, 같은 해 11월께 SK그룹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111억원을 출연했다. 최 회장의 사면이 결정 된 뒤 김영태 전 SK수펙스추구협의회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은 복역 중이던 최 회장과 만나 "왕 회장이 귀국을 결정했다. 우리 짐도 많아졌다. 분명하게 숙제를 줬다"고 말했다. 최 회장 사면의 앞뒤 정황을 볼 때 여기서 '왕 회장'은 당시 박 대통령, '귀국'은 사면, '숙제'는 미르재단 출연 등 그 대가를 의미하는 은어가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특히 '숙제'라는 표현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열쇠인데, SK 측은 "사면에 대한 뇌물성 대가가 아니라 최태원 회장이 사면 된 뒤 발표한 경제활성화 차원의 46조원 규모 투자 등 사면된 기업 총수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또 SK그룹 수펙스추구협의회 김창근 전 의장은 최 회장이 사면된 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에게 "하늘같은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 같은 증거와 정황들에 따라 검찰은 뇌물죄 적용의 관건이 되는 대가성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검찰은 참고인 신분으로 부른 최 회장 조사와 21일로 예정된 박 전 대통령 조사를 거친 뒤 뇌물죄 적용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것으로 보인다.

뇌물죄 적용으로 결론이 난다면 최 회장에 대한 구속수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영장 청구 여부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가 이뤄진 이후에나 결정될 전망이다. 검찰이 "박 전 대통령 조사에 주력하겠다"고 밝힌 만큼 기업인들에 대한 처리는 그 다음으로 미룰 가능성이 높다. 결국 '최순실 게이트'의 몸통이자 뇌물 수수자로 지목되고 있는 박 전 대통령의 혐의 입증 여부에 따라 기업 관계자들도 운명을 함께 할 상황에 직면해있다.

검찰 사정에 밝은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을 조사해서 직권남용과 뇌물죄 중 어떤 쪽을 적용할지를 먼저 판단하고 최 회장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지금으로서는 뇌물죄를 선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며 "그럴 경우 이재용 부회장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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