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미국 시에틀에서 이른 아침 한 통의 메일이 왔다. 20년 넘게 미국서 생활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한 필자는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부탁과 함께 "지금 미국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한국 뉴스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 국민들이 우병우 기각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있음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시사플러스에서 본 메일 내용을 게제했다.

우병우에 대한 영장기각보다 더 큰 문제

일하고 있는 도중에 뉴스를 들여다보니 우병우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애초에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제일 큰 직권남용의 문제에 대해 기소하지 않은 검찰은 어차피 영장을 그런 식으로 친 것이고, 우병우가 알고 있는 수많은 비밀들엔 검찰 수뇌부도 연루되어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라면 아마 그의 협박이 먹혔겠지요. 반면 국민은 분노했겠지요. 정권교체가 된다고 하면 왜 검찰개혁을 해야 하는지를 오히려 국민에게 강하게 각인시킨 셈입니다.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의 관심은 대선에 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틈을 타서 이렇게 쉽게 넘겨버리려고 했던 검찰이 오히려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판 셈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들의 판단미스지요. 결국 그들이 국민의 수준을 무시한 것, 앞으로 어떻게 받으려고 하는지. 아마 차기 정권에 뭔가 바쳐야 할 것도 많겠지요, 그들의 조직을 지키려면. 우병우가 나오는 장면을 보면서 어쩌면 차기 정권에서 제일 먼저 이명박이 들어가겠구나,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조직을 지키는 것은 절대로 공짜가 아닐테니까요.

그 와중에 지금 한반도의 어지러운 상황이 묻히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항공모함 칼 빈슨이 인도양에서 미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반도 지역으로 재배치되고 중국이 국경에 군을 모으며, 4월 위기설이 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SNS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들이 흉흉합니다. 전쟁이 일어날 것 같다는 이야기도 들리고.

지금 미국과 중국은 힘겨루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카드를 하나씩 내보이고 있는 셈입니다. 문제는 그 카드 테이블이 한반도라는 겁니다. 마음이 씁쓸한 것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우리가 상황들을 주도하거나 적어도 우리가 해야 할 역할은 분명히 했다는 겁니다. 지금 주한 미국대사도 공석인 상태에서 미국의 결정에 따라 한국이 비극의 장이 될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위협. 이것이 우리 대선에도 역할을 끼칠까요? 사실 그렇진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칼 빈슨호는 작전 최대 기간이 두 달입니다. 원자력으로 추진되는 항모이니 항해 기간을 연장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 안에 승선하고 있는 인원과 그 항모를 호위하는 선단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들은 보급과 휴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갑작스런 항로 변경을 명령받은 겁니다. 이것은 칼 빈슨의 항로 변침이 시위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재보급과 메인터넌스를 받으려면 하와이나 본국의 샌디에고 등으로 가야 할 테니.

지금의 상황이 진짜 위기로 발전된다면 아마 1994년의 상황이 재연될 겁니다. 한국으로 가려는 사람들에게 여행 제한령이 내려지고, 한국 내의 미국 시민권자들에게 소개령이 내려지겠지요. 그리고 집결지가 하달될 겁니다. 무엇보다 한국에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이 갑자기 자본을 빼내기 시작하고, 그것은 바로 주식시장의 폭락으로 이어질겁니다. 이런 현상이 생긴다면 그때는 정말 한국이 위기에 처한다는 증거가 될 겁니다.

다행히도 아직 이런 징조는 보이지 않습니다. 미국과 중국간 힘겨루기가 지금까지는 블러핑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의 반증입니다. 그래도 지켜보긴 해야 할 겁니다. 어느날 인천 공항으로 향해야 할 여객기들이 갑자기 시택 공항에서 계류 상태로 있다던지, 혹은 이쪽에 있는 포트 루이스 육군기지와 맥코드 공군기지에 비상령이 떨어지는 움직임이 생긴다면, 이곳과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수면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4월 위기설을 믿지는 않습니다.

슬픈 것은 전술했 듯이 이런 일들이 우리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전개된다는 겁니다. 강대국들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 움직입니다. 그나마 우리가 적극적으로 우리 역할을 강조하며 스스로 우리의 역할을 챙겨야 하는데, 지금 주한 미국대사도 없고, 중국과는 사드 배치로 인해 최악의 관계이며, 이런 점을 챙겨야 할 컨트롤 타워가 대한민국엔 없다는 겁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대한민국은 가장 힘든 시기를 겪어내야 합니다. 외교는 엉망이 됐고, 경제는 지난 이명박근혜 9년동안 바닥으로 내려가 버렸으며, 정의와 상식은 우병우 불구속에서 보듯 애매한 상태입니다. 그나마 촛불 시민들이 있어서 그들이 민주주의를 지켜냈고 혼군을 감옥으로 보낼 수 있었습니다. 결국 시민의 힘만이 이 모든 국면을 되돌릴 수 있다는 말이지요. 이제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대선에서 누구를 선택하는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다시 국제관계에서 역할을 해 내야 하고, 정의와 상식을 다시 세우는 일. 여러분의 투표 참여와 그 결과에 달렸습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