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 담으라 지시하는 농협 총기강도
[신소희 기자]권총을 갖고 시골 마을 한적한 곳에 있는 농협 지점에 들어가 금품을 빼앗아 달아난 범인이 55시간 만에 붙잡혔다.

사건 발생은 지난 20일 오전 11시 55분께 경산시 남산면 자인농협 하남지점.

"직원 4명이 근무하는 소규모 지점이나 그나마 직원 1명은 정기 건강검진 때문에 자리를 비웠다. 점심시간을 앞둬 손님은 없었다. 전국 대부분 소규모 농협 지점처럼 보안요원도 없었다. 복면한 범인은 남자 직원 1명과 여자 직원 2명만 있던 지점에 뛰어들어 자루를 던지며 돈을 요구했다.

약 1시간 전 자전거를 타고 지점 앞에 도착해 호시탐탐 틈을 노리던 범인은 총기를 들이밀며 "(돈을)담아"라고 수차례 외쳤다. 직원들이 두려움에 떨며 창구에 있던 일부 돈을 담는 순간 총성이 울렸다. 남자 직원 한 명이 달려들자 범인이 재빨리 몸을 피하며 이들을 위협하기 위해 쐈다.

총구는 지점 내부에 있던 복사기 쪽으로 향했고 탄피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졌으나 다친 사람은 없었다. 이윽고 이들이 극도의 공포 속에 현금 1천563만원을 허겁지겁 담아주자 범인은 직원 3명을 창구 뒷면 벽면 쪽에 있는 금고에 가둔 뒤 미리 준비한 자전거를 몰고 4분 만에 유유히 사라졌다."

경북 경산의 자인농협 하남지점에서 발생한 총기강도 사건은 보기 드물게 치밀하고 대담한 수법으로 세간을 놀라게 하고 있다. 이번 범행은 전문적인 수법과 총기를 사용한 대담성, 치밀한 범행 계획 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풀이된다.

치밀·대담한 수법으로 범행

이번 사건이 충격적인 이유는 인적이 드문 농촌 지역 은행에서 단 한 명의 용의자가 대담무쌍한 강도 행각을 벌인 뒤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달아났다는 사실이다.

보통 은행강도는 최소 2∼3명이 공모해 차량을 이용, 범행을 저지르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도주 수단으로 자전거가 이용된 것 등이 특이점이다.

대다수 은행 강도사건처럼 범인 검거를 위해 불심검문과 폐쇄회로(CC)TV 를 분석하는 경찰을 노려 허를 찔렀다. 도심이 아닌 변두리 지역 자전거 전용도로에는 CCTV가 설치돼 있지 않다는 점 등을 이용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의 용의자인 김모(43)씨는 범행 당시 어눌한 말투로 "(돈을)담아", "핸드폰", "(금고)안에" 등의 단어만 사용하며 외국인인 것처럼 연기했다.

김씨는 경찰에 검거되고 나서야 경산에 살고 있는 농부로 밝혀졌다. 또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 주차장에서 검거될 당시 가족 행사에 참석 중이었다는 점도 김씨의 대범함을 보여주고 있다.

김씨가 범행을 마친 뒤 농협에서 3.2㎞ 떨어진 곳에서 자신의 1t 화물차에 자전거를 싣고 이동한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것으로 보여진다.

김씨는 범행 직후 농협에서 돈을 찾아 나오는 고객처럼 여유롭고 태연한 모습을 보였다.

범인은 손님이 적은 점심시간을 택한 점, 남자직원 1명, 여자직원 2명만 근무하고 있는 것을 노렸다는 점, 4분 만에 모든 범행을 마친 뒤 도주했다는 점 등을 미뤄 농협의 사정을 꿰뚫고 있거나 철저히 사전 답사했을 것으로 풀이된다.

 
농협 청원경찰 부재 '화불러'

사건이 발생한 자인농협 하남지점은 예산 문제 등으로 인해 자체 방범을 위한 청원경찰을 현장에 배치하지 않았다. 이에 농협은 은행 자체 방범에 대한 한계를 드러냈다.

2006년 경산 하양읍과 옥곡동 농협지점 총기강도 사건과 2007년 1월 대구 옥포농협 지점 총기강도 사건도 모두 경비 인력 없이 직원만 근무하고 있었다.

특히 사건이 발생한 하남지점에서 강도 사건이 일어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3년 전인 2004년 11월 오후 5시께 남산농협 하남지소에 노모(당시 30살)씨가 흉기를 들고 침입해 여직원을 위협하고 돈을 뺏으려다 미수에 그쳤다. 바로 남산농협 하남지소가 자인농협 하남지점의 옛 이름이다.

당시 노씨는 인테리어 사업과 PC방을 운영하다 1억5000여만원의 빚을 지게 되자 이 같은 범행을 저질렀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이처럼 하남지점이 강도 사건 표적인 된 것은 직원 4명의 소규모 금융기관이라 청원경찰과 같은 별도의 경비인력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지문없고 이동통신사 협조 저조 등 '수사 어려움' 제공

경찰은 사건 발생 후 김씨가 남긴 지문 등이 없어 김씨 소재 파악에 어려움을 겪었다. 범행 당시 김씨가 넥워머와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손에는 장갑을 껴 과학수사대의 현장감식에서 지문 등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김씨는 범행 후 번호판이 없어 추적이 어렵고 다양한 도주경로를 택할 수 있는 자전거를 이용해 사라져 경찰이 김씨의 이동경로를 파악하는 데 혼선을 줬다.

경찰은 김씨가 범행 전 농협 옆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을 확보하고 통신 수사를 진행했다. 하지만 농협 옆 인근 기지국 3개 이동통신사(KT, LGU+, SKT) 중 KT만 경찰 수사에 협조했다.

LGU+와 SKT는 주말이어서 다음주 월요일(오는 24일)이나 돼야 수사에 협조할 수 있다는 답변만 내놨다. 이에 경찰은 수사에 필요한 3개 이동통신사의 기지국 수신 명단을 확보하지 못 하기도 했다.

또 경찰은 사건 발생 후 수사를 공개수사로 전환하고 김씨의 소재 파악 등을 위한 제보를 받았다. 경찰에 접수된 제보는 20여 건이었다. 접수된 제보들은 대부분 용의자가 경산 지역에 있다는 내용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신빙성이 있는 제보들은 없었다.

그러나 경찰은 끈질긴 CCTV 분석 등을 통해 단서를 확보한 뒤 사건 발생 55시간(22일 오후 6시47분께)만에 충북 단양의 한 리조트 앞 주차장에서 김씨를 체포했다.

23일 경찰에 따르면 경북 경산시 농협에서 발생한 총기강도 사건 용의자가 가족 간 채무문제 등으로 인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가족 보증문제로 빚을 지게 돼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빚이 얼마나 되는지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사건이 발생한 농협에서 8㎞가량 떨어진 곳에 사는 농민으로 경산시 남산면 청년회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김씨는 경찰에 붙잡히기 전 단양에있는 한 리조트에서 가족 채무문제 등에 평소 도움을 준 친척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가족모임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이날 경찰은 경북 경산에서 발생한 농협 총기 강도 사건을 수사하고 있는 경찰이 피의자 김모(43)씨가 범행 직후 버린 총기, 자전거 등을 찾았다. 권총은 사제 총기가 아니라 정식으로 만든 총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써 농협 총기 강도 용의자 김씨의 치밀·대담한 범행은 일단락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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