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막업씨 조선일보 캡쳐
[김승혜 기자]조선일보가 대선을 하루 앞두고 박근혜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관저에서 생활한 요리사와의 인터뷰 기사를 실었다.

8일 매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직전까지 청와대에 머물렀던 김막업(75) 요리연구가와 인터뷰를 청와대 생활을 보도했다. 김막업 요리연구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해외 순방 떠날 때도 ‘이제 좀 쉬세요. 전깃불 끄는 거 잊지 마세요’라며 단 두 마디를 했다. 관저 안에 함께 지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다. 웬만하면 인터폰으로 다 했다. 아침 식사는 냉장고에 윌, 덴마크 우유, 뮤즐리, 깨죽을 넣어두면 본인(박 전 대통령)이 알아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또 “TV를 보고 있던 적은 없었다. 침대에도 눕지 않고. 책상에서 꼬박 조는 모습은 딱 한 번 봤다”고 언급했다.

최순실씨와 박 전 대통령과 관계도 전했다. 그는 “(최순실씨가) 대통령과 같이 식사했다는 말도 다 엉터리다. 대통령은 늘 혼자 식사를 한다. (최순실은) 2014년부터 주말마다 거의 들어왔다. 사무실에서 3인방을 모아놓고 회의 같은 걸 했다. 박 전 대통령은 가끔 참석했다. 이들 외에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싫어했다. 다른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데 딱 한 사람(최순실)만 만나니, 소통을 모른다는 지적은 맞다”고 밝혔다.

다음은 조선일보가 김막업 씨와 나눈 대화 전문이다.

―관저에는 몇 명이 거처했습니까?

"대통령과 저밖에 없었어요. 윤전추(청와대 행정관)가 어떨 때는 자고 갔어요."

―대통령 방과는 붙어 있었습니까?

"관저의 공간은 유리문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대통령이 계시는 곳에는 내실, 의상실, 한실(韓室), 소식당 등이 있어요. 제가 있는 공간에는 이발실을 개조한 사무실, 미용실, 방 두 개가 있어요. 경호원들은 별채에 있고요. 유리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저와 윤전추밖에 없었어요. 원래 대통령 내실은 관저의 가장 안쪽에 있었어요. 그 방은 굉장히 넓었어요. 대통령이 꿈을 꿨는데 무섭대요. 두 달쯤 지나 그 방을 운동실로 바꾸고, 대신 접견실을 내실로 개조해 옮겼어요."

―대통령의 식사를 위해 청와대에 들어간 거죠?

"그분이 당 대표 시절 음식을 접대한 인연으로 그 제안을 받았죠. 죽기 전에 청와대 구경해보자는 마음으로 들어왔어요. 하지만 관저의 소식당이 좁고 냄새가 나 직접 요리할 수가 없었어요. 대식당의 주방에서 만든 음식을 제가 관저로 날랐어요."

―관저에서 요리를 하지 않았다면 무슨 신분으로 있었습니까?

"관저 관리를 맡은 총무비서관실 소속 계약직 공무원으로 있었지요. 세탁과 방 청소, 심부름 등 대통령의 시중을 들었지요. 내실의 세면기가 막혔을 때도 제가 뚫었어요."

―대통령의 말벗이 돼줬나요?

"관저 안에 함께 지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이 거의 없어요. 이분은 차갑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정(情)이 없어요. 웬만하면 인터폰으로 다 했어요. 내실에는 아무도 못 들어갔어요. 나갈 때도 문을 잠급니다. 이 때문에 관저의 전등을 LED로 모두 바꿨는데 내실만 그냥 뒀어요. 딱 한 번 경호실 직원을 내실로 부른 것은 형광등을 갈기 위해서였죠. 천장이 높아 사다리를 받치고 해야 하는데 제 다리가 떨려 못 한다고 하니, 그때 불렀습니다."

―남에게 감춰야 할 게 있었습니까?

"청소를 해보면 알지만 전혀 그런 게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속을 안 내보이고 싶은 거죠. 사람과 대면하거나 말씀하는 걸 싫어해요. 이분은 티슈를 다 쓰면 방문 앞 복도에 빈 갑을 내놓아요. 롤휴지가 떨어졌을 때는 그게 어디에 비치돼 있는 걸 알고는 직접 가져다 써요. 아침 식사는 냉장고에 윌, 덴마크 우유, 뮤즐리, 깨죽을 넣어두면 본인이 알아서 전자레인지에 데워먹겠다고 해요."

―청와대 관저에 누가 왔는지는 다 아시겠군요?

"알지요. 당초 현관에 슬리퍼를 여섯 켤레 놓아뒀는데 얼마 뒤에 제가 치워버렸어요. 오는 손님이 없었고, 특히 유리문 안으로는 손님이 안 들어왔습니다. 딱 한 명의 예외는 경락을 만져주는 '기(氣)치료 할머니'였지요. 매트가 깔린 한실에서 받아야 했으니까요. 다른 손님들은 미용실이나 사무실에서 만났지요."

―최순실은 내실 출입을 하지 않았습니까?

"최순실도 유리문 안으로 들어간 적이 없어요. 대통령과 같이 식사했다는 말도 다 엉터리입니다. 대통령은 늘 혼자 식사를 하세요."

―최순실이 관저에 와서 무얼 했나요?

"2014년부터 주말마다 거의 들어왔어요. 사무실에서 3인방을 모아놓고 회의 같은 걸 했어요. 박 전 대통령은 가끔 참석했어요. 이들 외에는 사람 만나는 걸 워낙 싫어했으니까요. '왜 이런 분이 대통령이 됐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만나야 하는데 딱 한 사람(최순실)만 만나니, 소통을 모른다는 지적은 맞아요."

―최순실과 3인방의 국정 농단은 사실이었군요.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에 대해 언급하는 걸 들은 적이 있습니까?

"일 터지고 나서 '그렇게까지 한 줄 몰랐다'고 했어요. 제가 겪어본 결과, 대통령이 거짓말을 할 사람은 아닌 것으로 봅니다. 돈 욕심을 부리지는 않았을 거예요. 자식이 있나, 퇴임하면 연금만 한 달에 1200만원 나오는데 왜 그러겠어요."

―최순실은 어떤 사람 같았습니까?

"요즘 말로 '갑질'한다고 그러나요. 청와대 양식 조리장 한상훈씨가 '최순실이 김밥을 싸달라'고 했다는 말은 맞아요. 성격이 포악해 보였어요. 대통령은 다른 면에서는 꼼꼼한 분인데 왜 저런 사람과 얽혔을까 싶었습니다. 대통령은 여성스럽고 세상 물정에 대해 너무 몰라요. 자기 손으로 양말짝 하나 안 사봤을 겁니다."

―박 전 대통령은 매일 관저에 있었습니까?

"외부 일정이나 수석비서관 회의가 안 잡혀 있으면 안 나갑니다. 종일 내실에만 있습니다. 언제 대통령이 인터폰으로 부를지 모르니··· 제가 쉬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못 쉬었어요. 세월호 사건 때 '7시간 행적'이 어떠니 온갖 말들이 있었지만, 그냥 평소처럼 내실에 계셨던 겁니다."

―그날 김기춘 비서실장이 대통령께 했다는 서면보고는 어떻게 전달됐습니까?

"별채의 경호원이 받아서 인터폰으로 대통령께 연락합니다. 관저 내 전달은 제가 하지요. 내실 문밖에 탁자가 있습니다. 거기에 두고 '서류 갖다 놨습니다' 하고 말하지요."

―박 전 대통령은 내실에서도 늘 올림머리를 하고 있었습니까?

"외부 일정이 없으면 머리 손질이나 화장을 안 합니다. 내실에서는 머리를 뒤로 묶고 두건을 쓰고 있어요. 허구한 날 앉아 계시니 다리가 부어 고무줄 없는 양말을 신고요."

―세월호 사건 당일 아침에 머리 손질을 받고는 오후에 머리를 흐트러지게 보이기 위해 미용사를 불러들였다고 했는데?

"그날은 외부 일정이 없어 아침에 미용사가 안 왔습니다. 오후에 재난본부에 나가기 위해 미용사를 불렀어요. 대통령이 기자회견 해서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면 되는데 그런 걸 하지 않아요."

―평소 TV 드라마를 즐겨본다고 하더군요.

"그건 사실이 아닙니다. 보통 오후 3시쯤 인터폰으로 '청소 좀 해야겠네요'라고 연락이 오면 들어갑니다. 한 시간 반쯤 청소하는 동안 대통령은 비켜주지 않고 노트북이 놓인 책상 앞에 그대로 앉아 있어요. 뭘 하고 있는지 저는 모르지요. TV를 보고 있던 적은 없었어요. 침대에도 눕지 않고. 책상에서 꼬박 조는 모습은 딱 한 번 봤어요."

―청와대 조리장 한상훈씨가 그렇게 증언했는데?

"그 사람은 관저에 들어온 적 없어요. 한씨가 내게 '대통령께선 하루 종일 뭘 하시느냐?'고 묻기에, '나야 잘 모르지. 식당에서 혼자 식사하실 때는 TV를 보시더라'고 말한 것을 그렇게 왜곡한 겁니다. 식사를 혼자 하면서 중국드라마는 자주 보는 것 같았어요. 하지만 내실에서 TV를 보는 것 같지는 않았어요. 아침에 신문을 문 앞에 갖다 놓으면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고요."

―미용 시술과 피로제 주사를 맞기 위해 외부 의사들을 불러들인 것은 맞지요?

"몸이 약해요.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소화가 안 돼요. 제가 답답한 것은 주치의가 있는데, 왜 들어와서는 안 되는 사람들을 쓰는지. 그만큼 꼼꼼하고 빈틈없는 분이 왜 그런 바보짓을 했을까 싶어요."

―해외 순방 때 큰 거울이 달린 화장대를 들고 갔다고 하더군요.

"거짓말이에요. 삼성동에서 써왔던 110V 옛날 스탠드는 꼭 들고 갔어요. 무슨 용도인지 모르겠지요. 요즘은 110V 전구가 귀해서 수소문해서 몇 상자를 구해야 했어요."

―탄핵 결정이 난 뒤 박 전 대통령은 어떠했습니까?

"탄핵 다음 날 새벽에 경호실에서 '내실에 불이 안 켜져 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연락 왔어요. 살짝 가보니 라디오 소리가 들려 안심했어요. 식사는 꼬박꼬박 다 하셨어요."

―박 전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탄핵이 기각될 걸로 믿었다고 하더군요.

"판결 이틀 전에야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걸 느꼈던 것 같습니다. 탄핵 결정이 나오자마자 나가라고 하니, 세상이 참 박정해요. 삼성동 자택의 보일러가 망가져 있었어요. 대통령이 거처하는 2층의 보일러만 겨우 손보고 이틀 뒤 들어가신 겁니다."

―삼성동까지 따라가셨지요?

"당장 식사를 해줄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안 가겠다면 인간의 도리가 아니지요. 그날 밤 11시쯤 내 짐보따리를 챙겨 뒤따라 들어갔어요. 그분은 오리털 점퍼를 입은 채 '추워요'라고 했어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내색하지 않고 편안하게 대해줬어요. 제 방에는 보일러가 작동 안 돼 매트와 전기장판으로 버텼어요. 다음 날 난로를 더 구입해 틀었지만 너무 추웠어요. 저는 사흘 동안 코피를 쏟았어요."

―박 전 대통령은 본인이 구속될 것을 예감하던가요?

"알았던 것 같습니다. 대통령이 영장 심사를 가기 이틀 전인 3월 28일 저녁에 대통령이 제 방에 노크를 했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통상 인터폰으로 '좀 올라오세요'라고 했으니까요. 이분이 급여 봉투를 내밀었습니다. 제 급여일이 4월 5일인데, 미리 주는 걸 보고 '각오하셨구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슨 말을 나눴습니까?

 

"제가 '대통령님 주위 사람들을 경계하십시오. 그리고 이제는 마음을 내려놓으시고 편히 지내시라'고 했지요. 그분이 '예'하며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못 배운 나보다 훨씬 더 불행한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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