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북한이 14일 발사한 탄도미사일은 비행 궤적으로 미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일 수 있다는 일본측 분석이 나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이 주목된다.

일본 이나다 도모미(稻田朋美) 방위상은 이날 북한이 발사한 탄도 미사일이 고도 2000km 이상까지 치솟았다고 밝혔다.

닛케이 신문과 교도 통신 등에 따르면 이나다 방위상은 북한이 이날 새벽 쏜 탄도 미사일과 관련해 방위성에서 기자들을 만나 "미사일이 2000km 넘는 고도에서 날아간 것으로 보인다. 신형일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나다 방위상은 일반적인 미사일 각도보다 높은 궤도로 쏘는 방식인 '로프티드 궤도(lofted trajectory)'일 공산이 농후하다고 지적하면서 북한이 미사일 고도가 2000km 이상에 달한 것은 처음이라고 확인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언론은 미사일의 고도가 2000km를 웃돌았다면 북한이 개발해온 미국 본토에 도달하는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과 연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북한 미사일의 최고고도가 2천㎞를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북한이 작년 6월 성공적으로 발사한 무수단미사일의 최고고도는 약 1천400㎞였다.

북한이 이날 쏜 미사일의 비행 거리는 700여㎞로 파악됐다. 평안북도 구성 일대에서 발사된 미사일은 동쪽으로 날아 일본 방공식별구역(JADIZ)을 침범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사일 비행 거리와 고도로 미뤄 북한이 이번에도 발사각을 최대한 끌어올린 고각 발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

고각 발사로 쏜 미사일의 고도가 2천㎞를 넘었다면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가 상당히 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미사일은 최소한의 엔진 추력으로 최대한의 사거리를 내기 위해 보통 30∼45도의 각도로 발사된다.

장영근 한국항공대 교수는 "북한이 이번에 발사한 탄도미사일의 비행 궤적만 보면 정상 각도로 발사할 경우 사거리가 5천∼6천㎞는 나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5천500㎞를 넘으면 ICBM으로 분류된다. 북한이 이번에 쏜 미사일이 ICBM일 수 있다는 얘기다.

장 교수는 "최고고도가 2천㎞를 넘었다면 장거리미사일일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미사일은 KN-08과 KN-14 등 ICBM이거나 그에 준하는 굉장히 긴 사거리의 미사일일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 탄도미사일의 사거리가 5천∼6천㎞라면 미국 알래스카주(州)가 사정권에 들어간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 태평양사령부가 있는 하와이는 북한에서 약 7천500㎞ 떨어져 있다.

북한이 보유한 ICBM으로는 KN-08과 KN-14가 꼽히지만, 아직 한 번도 시험발사를 한 적이 없다. 북한은 지난달 15일 김일성 생일 기념 열병식에서 외형이 러시아의 '토폴-M'과 유사한 신형 ICBM도 공개했다.

 
북한이 이번에 쏜 탄도미사일이 이들 ICBM일 경우 북한은 오는 15일 공식 매체를 통해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갖췄다며 대대적으로 선전할 가능성이 크다.

ICBM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장거리전략폭격기와 함께 3대 핵투발 수단에 속한다. 북한은 장거리전략폭격기는 없지만, 작년 8월 SLBM 시험발사에는 성공했다.

북한이 ICBM 실전 운용으로 미국 본토에 대한 핵공격 능력을 갖출 경우 한미동맹의 근본이 흔들릴 수 있다고 군사전문가들은 우려하고 있다.

유사시 북한이 미국 주요 도시에 대해 핵공격 위협을 하면 미국이 한국에 확장억제력을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이 올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북한은 문재인 정부 출범 닷새 만에 첫 번째 탄도미사일 도발을 감행함으로써 핵 무력 고도화 계획을 접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발신하는 동시에 한·미 신행정부와 본격적인 협상에 앞서 협상력을 극대화하려는 포석도 깔렸다는 분석이다.

북한이 ICBM을 실전 운용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국내에서 미국의 확장억제력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는 등 급속한 동맹 이탈(디커플링·decoupling)이 현실화할 수 있다.

북한은 ICBM으로 미국 본토 타격 능력을 갖추는 한편, 신형 탄도미사일 개발과 기존 미사일 성능개량으로 주한미군뿐 아니라 유사시 한반도에 전개될 미군 증원전력 타격 능력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태평양사령부는 이날 북한 미사일 발사의 초기 분석 결과를 토대로 미국 본토를 사정권에 두는 ICBM은 아닌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에 쏜 미사일이 ICBM으로 드러날 경우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대북 접근법도 중대 전환점을 맞을 수 있다. 새로운 대북정책을 준비 중인 문재인 정부에도 쉽지 않은 도전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