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 "탄핵은 모두에게 고통의 역사였고 사상 최대 국가 위기였다"

지난 3월 10일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결정문을 읽었던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이 퇴임 후 2개월여 만인 18일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나와 당시 상황에 대해 이같이 회고했다.

이날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초빙된 이씨는 18일 오전 서울 성북구 고려대 CJ법학관에서 열린 고대 법학전문대학원과 미국 UC얼바인 로스쿨의 공동학술대회에서 ‘한국의 헌법재판과 민주주의의 발전’이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탄핵심판 당시 ‘헤어롤’이 꼽혀 있어 화제가 됐던 헤어스타일보다 짧게 머리카락을 자른 이 교수는 검은색 정장의 단정한 차림으로 첫 공식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 교수는 이날 헌법재판소가 한국 민주주의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을 중심으로 발표에 나섰다. 그는 “한국 국민들은 과거 오랫동안 권위주의 체제를 경험했고, 이를 무너뜨리고 기본권을 보장받는 민주국가 건설을 염원했다”며 “헌법 재판은 국민의 자유와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창안된 제도”라고 1988년 헌재 창설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재소자와 재외국민에 선거권을 주지 않았던 선거법 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 호주제 위헌 결정,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등 사회적, 정치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쳤던 결정들을 나열하며 “헌재는 전세계적으로도 짧은 시간 내에 헌법 제도를 정착시켰다는 평을 받는다”고 말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탄핵) 사건이 접수된 이후 92일 동안 모든 다른 사건의 심리는 중단하고 오직 탄핵 사건 심판에만 집중했다”며 “헌재는 모든 증거 기록을 검토하고, 증인의 증언을 듣고 그 결과 대통령의 직무집행 행위가 헌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생각해 재판관 전원 일치로 파면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파면 결정은)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필요성과 함께 헌법 질서를 수호하기 위해 내린 결정”이라며 “탄핵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남용되면 안 되기 때문에 그러한 측면까지 신중히 고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92일 간 고뇌 끝에 내린 결정에 대부분의 국민은 승복을 했고, 새 정부가 출범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았다”며 “큰 혼란이나 유혈 사태 없이 빠르게 국정 공백이 평화적으로 수습됐다”고 밝혔다.

이 전 권한대행은 그러면서 “파면 결정은 우리에게는 매우 아프고 힘든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속담에 ' 비가 온 다음에 땅이 굳는다'는 말이 있다”며 “이것이 한국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가 한 걸음 도약한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 전 권한대행은 “헌재가 국민의 기본권을 확고히 보장하고, 그 발전을 공고히 발전시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했다고 믿는다”며 “저도 그 헌재에서 6년간 재판관으로 근무한 것을 자랑스럽고 보람있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 권한대행은 탄핵 심판 직후 퇴임한 뒤 4월부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차기 대법원장 하마평에 오르고 있다는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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