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명수 창업경영아카데미 대표
어제 밤. 혼자 식당을 찾았지요. 옆자리에 모녀로 여겨지는 고등학생 쯤 되는 여학생과 중년 여인이 함께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엄마는 줄곧 그 학생을 바라보며 웃음을 짓고 있었고, 그 학생은 내내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엄마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나올 듯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그 학생의 마음과 그 엄마의 마음이 저의 가슴 밑바닥을 건드렸습니다. 그 모습이 어찌 그리 아름답던지요.

건강한 딸을 바라보는 그 여인의 시선은 너무나도 따뜻했습니다. 갑자기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따님이세요?.”

“이뿌네요.”“모습이 너무너무 좋아요.”

모녀의 잔잔한 모습에서 문득 금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아내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왠일이야? 왜 무슨 용건 있어.?”

“아니, 그냥. 고마워서...”

“왜~~~”

“애들, 우리 애들......감사하자.”

눈물이 나왔습니다. 아내에게 들킬까봐 얼른 끊고는 아들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응, 왜?”

“아니, 그냥. 저녁은 먹었어? 어디야?”

안도와 감사함. 그리고 저 가슴 밑바닥에서 부터 올라오는 무언지 모를 분노.이 역설적인 느낌이 살아있는 자의 슬픔이란 걸까요? 그리고 사무실에 들어 와 이 분노를, 이 슬픔을, 이 안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詩를 썼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원망과 탄식을, 그리고 그 여리디 여린 그 마음들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마지막 외침을 아! 어찌 외면 할 수 있으리오?

 4월,

4월......

4월을 누가

잔인한 달이라 했는가?봄이 열리고

세포가 춤추고

혈관이 요동치는

4월에

 

바다가 열리고,

바다가 춤추는 그곳

꼬옥 맞잡은

조막만한 손에서

우리는 우리의 따스한 마음을 보았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애타는

그들의 외침에서 우리는

파랗게 움트는

진초록의 연잎을 보았네.

 

살아서 보자,

살아서 보자

그리워 그리워

못내 곁을 떠나지 못한

연분홍 꽃잎에서 우리는

우리의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을 보았네.

 

아파서, 아파서

너무너무 아파서

우리의 꽃잎들이 하늘하늘

우리의 마음으로

마음으로

짓 내려 올 때

땅을 적시는 푸르름의 온기가

올라오는 것을

우리는 보았네.

 

엄마, 사랑해요.

사랑해요.여리디 여린 여린 마음에

절절한 애절함을 품은 그

한마디에서

우리는 우리의 소중함을 보았네, 보았네.

 

한 잎, 한 잎, 한 잎, 한 잎

 

거봐요, 거봐요

내민 손 부끄러움에

차마 고개 못 드는

우리에게 누가

4월은

잔인하다 했는가?

 

잔인하다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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