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검찰이 납작 엎드린 모양새다. 청와대의 개혁 드라이브에 '반발과 저항'의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14년 전 노무현정부 출범 당시 강금실 법무장관을 앞세운 검찰개혁 시도에 검찰청별, 연수원 기수별, 직급별로 '사발통문'을 돌려가며 조직적 반발에 나섰던 모습과는 딴판이다.

19일 윤석열 신임 서울중앙지검장 등에 대한 파격 인사가 발표되자 검찰 내부에서 동요 조짐이 나타났다. 사상 초유의 검찰 '빅2(서울중앙지검장·법무부 검찰국장)'에 대한 동시 감찰에 이어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법무부 대신 직접 검찰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이날 오후 검찰 내부 통신망(이프로스)에는 이번 인사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는 일선 검찰지청장의 글과 이를 지지하는 댓글들이 올라왔다.

이완규 인천지검 부천지청장(56·사법연수원 23기)은 내부 통신망에 '(검찰) 인사와 관련한 궁금한 점'이라는 제목으로 6문장의 글을 올렸다. 그는 검찰 내 최고 법 이론가로 꼽힌다. 이 지청장은 "오늘 인사와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다"고 말문을 열고 "검찰청법 제34조 제1항에 의하면 검사의 보직은 법무부 장관이 제청해 대통령이 한다. 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하도록 돼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인사에서 제청은 누가 했는지, 장관이 공석이니 대행인 차관이 했는지, 언제 했는지(궁금하다)"라고 물었다. 또 "검찰총장의 의견을 듣도록 돼 있는데 총장이 공석이니 대행인 대검 차장이 의견을 냈는지, 인사와 관련해 어떻게 절차가 진행됐는지(궁금하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날 여권 고위 관계자는 "전체적으로 검찰이 아주 조용하다. 집단적인 반발 움직임이 있을 수 있어서 우리도 주시하고 있는데, 아직 사발통문 같은 것도 없는 듯하다"며 "2003년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말했다.

20일 매경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에 시도했던 검찰개혁은 '인사권'을 앞세운 거였다. 문 대통령도 인사 카드를 꺼내들었다. '윤석열 승진 기용'은 그 위 선배 검사들에 대한 대대적 물갈이를 예고한 것"이라고 전했다.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이용해 인적 쇄신에 나섰다는 점에서 2003년과 2017년의 검찰개혁은 같은 맥락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차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인사권 행사에 아주 적합한 '명분'을 미리 확보했다는 점이다. '돈봉투 만찬' 사건을 '관행'으로 넘기지 않고 정면에 꺼내 들었다. 법무부와 검찰 조직 내부의 부적절한 행태가 절묘한 시점에 노출됐고, 청와대는 이를 놓치지 않았다. 검사들의 잘못된 행태에 상응한 조치를 취한다는 명분이 파격적인 인사로 연결되면서 2003년처럼 조직적 반발과 저항이 꿈틀댈 여지를 주지 않았다.

또 지난해 끊이지 않았던 각종 법조비리와 '우병우 사단' 논란, 국정농단 수사에서 나타난 검찰의 문제점 등 개혁의 명분이 워낙 많이 축적돼온 터라 검찰 내부에서도 '저항의 동력'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돈봉투 만찬 때문에 검찰은 지금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태가 돼버렸다. 정부로선 검찰개혁을 밀어붙일 수 있는 최적의 여건이 조성된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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