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경찰은 수사지휘권 중 수사개시권을 검찰과 나눠 갖되, 수사종결권은 검찰에 그대로 둬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검찰 개혁 방침은 이젠 주지의 사실이 됐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당시 공약으로 내세웠고, 다른 야권 후보들도 공통적으로 내세운 약속이 검찰 개혁이다.

문재인정부가 예고대로 '고강도' 검찰개혁안을 꺼내 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칼자루를 쥔 조국 신임 민정수석의 과거 논문에는 수사권의 상당 부분을 검찰에 그대로 둬야 한다는 주장이 담겨 눈길을 끈다. 이는 경찰이 바라는 검찰의 수사지휘권 완전 삭제와는 거리가 멀어 강한 검찰개혁을 주장하는 이들 사이에 염려 목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조국 수석은 "과거와 상황이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말해 논문에서 주장한 부분적 수사구조 조정보다 훨씬 큰 폭의 수사권 조정 가능성을 열어놨다고 24일 매일경제가 보도했다..

이날 매체가 확인한 '현 시기 검찰·경찰 수사권 조정의 원칙과 방향'(2005년 학술지 '서울대 법학' 게재)이라는 논문에서 조 수석은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인식하면서도 "검찰의 수사지휘권과 수사종결권은 상당 부분 유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 수석은 서울대 법대 교수로 2004~2005년 참여정부 시절 대검찰청·경찰청 수사권 조정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이 논문은 당시 자문위원회에서 논의됐던 내용을 중심으로 조 수석이 생각하는 검찰개혁 및 검경 수사권 조정의 방향을 적은 내용이다.

우선 전체적 논문의 맥락은 현재 경찰이 주장하고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로 요약되는 수사권·기소권의 완전 분리와는 온도 차가 커 보인다. 수사권 조정이라기보다는 '구조조정'에 가까운 것이다. 조 수석은 논문에서 "중요 범죄와 비(非)중요 범죄를 구분해 다수를 차지하는 비중요 범죄의 경우 경찰에 수사 개시를 맡기고, 검찰은 수사 종결 과정에서 보강 수사를 요구하는 방식으로 수사지휘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쉽게 말해 민생범죄 등 가벼운 범죄는 경찰이 검찰 지휘 없이 수사를 시작하되 이마저도 검찰이 확인해 종결 여부를 결정짓고 중요 범죄는 수사 개시권과 종결권 모두 검찰이 갖도록 하라는 것이다. 중요 범죄는 내란, 외환, 국기 공안, 살인, 국보범, 4급 이상 공무원 범죄 등으로 규정했다.

조 수석이 이런 주장을 한 배경에는 경찰에 대한 불신이 녹아 있다. 논문에서 조 교수는 "경찰의 자기 혁신 노력에도 불구하고 수사 인력의 자질과 역량을 높이는 작업은 부족하다"며 "간부들의 부정한 청탁이나 사건 개입을 방지하는 장치도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 논문은 10여 년 전 것인 데다 지금은 당시엔 없었던 중요한 변수가 있다. 문 대통령의 선거 공약이자 현재 검찰개혁 관련 최대 이슈로 떠오른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다. 당시에도 공수처 얘기는 나왔지만 조 수석은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공수처 문제를 다루지 않았고 "공수처 신설이 위헌이 아니다"고 간단히 언급했을 뿐이다. 매일경제는 조 수석에게 메시지를 보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과거와 다른 입장 변화가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조 수석은 "공수처 설립과 결합되어야 하기에 10년 전 그 글의 입장은 일정 부분 변화되어야 한다"고 답장을 보냈다.

경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최악의 시나리오'로 공수처만 설립되고 수사권 조정엔 아무런 변화가 없는 상황을 꼽고 있다. 그러나 조 수석이 "공수처 설립과 결합"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때 조 수석은 일단 공수처 설립과 수사·기소 분리 양쪽 모두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과거엔 공수처 설립 전제 없이 가벼운 범죄는 경찰이 자율적으로 수사하고 중대 범죄는 검찰이 수사 전권을 갖는 구조를 생각했는데 이젠 달라졌다는 것이다. 공수처가 고위공직자 비리 등 중대 범죄를 전담할 경우 굳이 검찰에 수사 개시 및 종결권 등 수사지휘권을 남겨두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함축한 것으로 보인다.

매체는 아직까지 문 대통령이 구체적인 검찰개혁 관련 공약 실현 방안을 제시하지 않은 만큼 여러 가지 가능성을 열어놓은 반응이라는 해석도 있다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민정수석 시절 검찰개혁과 수사권 조정에 관한 모든 사항을 검토했던 사람이 바로 대통령"이라며 "결국 대통령의 생각이 과거에 비해 얼마만큼 발전해 있는지에 따라 최종 방향이 결정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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