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박근혜 전 대통령이 2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2차 공판을 마치고 구치소로 가는 호송차로 향하고 있다.
[김홍배 기자]"나중에…",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박근혜(65) 전 대통령이 본인의 두 번째 공판에서 직접 입을 열었다. 6시간 재판 과정중 증거조사 의견을 묻는 재판장의 질문에 겨우 꺼낸 대답은 총 19자가 전부였다.

박 전 대통령은 25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린 본인의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뇌물 등 혐의 2차 공판에서 재판장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 23일 법정에 나올 때처럼 수의 대신 남색 재킷을 입고 플라스틱 집게 핀으로 고정한 '올림머리'를 유지했다. 그는 법정에 들어서서 기립해 있던 이상철 변호사(58·사법연수원 14기), 유영하 변호사(55·24기) 등과 웃으며 인사를 주고받았다. 오후 공판을 위해 법정에 들어올 때는 재판부를 향해 처음 목례도 했다.

재판은 오전 10시에 시작돼서 약 1시간50분의 점심시간, 15분간의 휴정 시간을 거쳐 오후 5시47분께 끝났다. 실제 재판이 열린 시간은 약 6시간 정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첫 재판보다 한결 여유롭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두 번째 재판에 임했다. 반면 검찰과 박 전 대통령 측 변호인은 사사건건 부딪치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박 전 대통령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눈을 지그시 감고 검찰의 증거조사 설명을 들었다. 허리가 아픈 듯 때때로 몸을 앞뒤로 흔들기도 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은 불리한 증언 나오면 손동작 써가며 반박하는 모습을 보였다.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박 전 대통령은 피고인석에 설치된 모니터를 통해 검찰이 제시하는 기록을 꼼꼼히 살펴봤다. 그 다음에는 변호인인 유영하(55·24기) 변호사와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눈 뒤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박 전 대통령은 앞서 지난 23일 열린 1차 공판에서 피고인석에 앉은 뒤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정면만을 응시하는 다소 경직된 모습을 보인 바 있다.

그러나 이날 재판에서는 하품하면서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거나 팔짱을 끼는 등 다소 여유를 되찾은 모습을 보였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재판이 끝난 뒤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묻는 재판부 질문에 "나중에…"라며 말끝을 흐렸다.

점심 식사를 마친 오후 2시10분부터 재판이 다시 시작됐다. 박 전 대통령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재판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다가 약 1시간15분이 지난 오후 3시25분에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변호인은 "10분 정도라도 잠시 휴정을 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통상 2시간 진행하고 15분 정도 휴정하는데, 피고인은 휴식시간이 필요하면 변호인을 통해서 얘기하라"라며 요청을 받아들였다.

15분간의 휴식시간이 지난 뒤, 재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잘 쉬었는가. 재판이 원래 좀 지루하고 힘들다"라며 "처음이라 더 그럴 것 같은데, 휴식이 필요하면 변호인을 통해 언제든 요청하면 재판에 지장이 없는 범위 내에서 휴정하겠다"고 말을 건넸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오전과 같이 오후에도 검찰은 박 전 대통령의 40년 지기 최순실(61)씨가 미르·케이스포츠 재단 의혹을 받아왔던 재판 기록을 증거로 설명했다.

K스포츠재단 설립과 관련해 불리한 증언들이 이어지자 검지를 좌우로 흔들며 '아니다'는 의사를 표시했고, 평소 연설이나 회의 때 단호함을 강조하면 나오는 특유의 손동작을 써가며 유 변호사에게 무언가 설명하는 모습도 종종 포착됐다. 그러나 재판장이 오전·오후 한 차례씩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나중에"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드리겠다"고 각각 말한 게 이날 발언의 전부였다.

박 전 대통령은 뻐근한 몸을 풀 듯 앉은 자리에서 허리를 앞으로 굽혔다가 다시 뒤로 쭉 피고는 했다. 오전보다 훨씬 긴장이 풀린 듯 옆에 앉은 유 변호사와 얘기를 나누다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검찰에서는 구치소 방문조사 때 미르·K스포츠재단 모금 관련 부분을 담당했던 한웅재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 부장검사(47·28기)가 공격을 지휘했다. 이에 맞서 변호인들은 절차 등을 거론하며 검찰 측 증거조사가 부적절하다고 이의를 신청했다. 이 때문에 본격적인 서류증거조사가 시작되기까지 50여 분간 지루한 공방이 이어졌다.

이 변호사는 "형사소송법상 검사 및 변호인이 공소사실 관련 주장이나 입증 계획이 끝나야 증거조사에 들어간다"며 "아직 절차가 완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바로 증거조사부터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주장했다. 유 변호사는 "재판은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기본 전제"라고 항의했다.

이에 한 부장검사는 "탄핵심판에 관여한 변호사가 법정에 있고 당시 재단 출연금에 대해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안다"며 '의도적 시간 끌기'임을 지적했다. 재판부도 유 변호사가 검찰이 제시한 증인들의 진술조서 내용과 개인 비리 혐의 등을 자세히 언급하며 반박하자 "기록을 다 파악하고 계시네요?"라고 의구심을 보였고 방청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오후 재판이 끝난 뒤 재판장은 박 전 대통령에게 오전과 같이 증거조사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박 전 대통령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자세한 건 추후에 말씀을 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재판부는 오는 5월29일 세 번째 재판을 열고 유·무죄 판단 심리에 속도를 붙일 예정이다. 특히 세 번째 재판서부터는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함께 재판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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