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내게 마이클 플린(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대한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7일(현지시간) '핵폭탄급' 성명에 워싱턴 정가는 물론 전 미국 사회가 술렁이고 있다. 이 성명은 다음 날인 8일 열리는 상원 정보위 청문회를 앞둔 시점에 나왔다는 점뿐만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을 '사법방해'죄로 반드시 잡고야 말겠다는 코미 전 국장의 단호한 의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동안 미국 언론들은 코미 측근들의 말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코미에게 플린 전 보좌관의 '러시아 내통의혹' 수사 중단을 요구했으며, 코미가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나눈 대화를 기록한 메모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었다. 하지만 코미가 이를 직접 사실로 인정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통령 등 공직자가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 사사로이 개입하고 중단을 요구하는 등의 '사법방해' 행위는 매우 위중한 범죄이다.CNN은 코미가 무려 7페이지에 걸쳐 작심하고 트럼프의 사법방해 행위를 상세하게 밝힌 성명에 대해 "코미가 트럼프에게 긴 칼을 휘둘렀다"고 표현했다.

코미의 성명에 따르면, 그가 트럼프와 개인적으로 만난 것은 대통령 당선인 시절을 포함해 총 9번이다. 코미는 지난 1월 6일 뉴욕 트럼프 타워에서 당선인 신분이었던 트럼프를 만난 자리에서 "당신은 러시아 관련 수사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해줬다. 당시만 해도 코미는 트럼프가 측근들의 러시아 내통 의혹과는 무관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트럼프는 앞서 "코미가 나는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세번이나 말했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 사실로 확인된 셈이다.

코미는 "대화 내용을 정확하게 남기기 위해 트럼프 타워에서 나오는 즉시 자동차 안에서 랩탑으로 기록했으며, 이후에도 트럼프와 대화를 하고 나면 곧바로 기록했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그러면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개인적으로 2차례 만났으며, 대화를 기록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이후 트럼프가 자신뿐만 아니라 플린에 대한 수사에까지 개입하려하고, 자신의 무죄를 공개적으로 밝히라고 압박했으며,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는 점이다.

트럼프는 취임 후인 1월 27일 점심때쯤 코미에게 전화를 걸어 백악관에서 저녁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저녁 자리에서 트럼프는 코미에게 "FBI 국장으로 계속 일하고 싶은가"라고 물었다. 코미는 성명에서 "앞서 두번이나 내게 FBI 국장으로 계속 일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왜 또 저런 말을 하나 이상했다"며 "하지만 트럼프에게 그럴 생각이라고 말해줬다"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트럼프는 "당신 자리를 원하는 사람이 많다. 당신이 그만두고 나가기를 원해도 이해한다"고 답했다. 코미는 성명에서 트럼프가 이런 말을 꺼낸 의도가 FBI에 대해 "어떤 후원관계(patronage relationship)를 만드려는 것"이라고 본능적으로 느꼈고 "그래서 독립적인 FBI 지위에 대해 매우 우려하게 됐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2월 14일 코미를 다시 백악관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날은 대통령에게 공식적으로 대테러 업무에 대해 브리핑을 하는 날이었다. 문제는 브리핑 이후였다. 트럼프는 코미만 남고 배석했던 제프 세션스 법무장관,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 등에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요구했다.

문이 닫히고 단 둘이 남자, 트럼프는 코미에게 "마이클 플린에 대해 말하고 싶다. 나는 당신이 이 문제(플린의 러시아 내통의혹)를 끝내고 플린을 그냥 보내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당신이 그를 풀어주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플린은 하루 전 사임한 상태였다.

트럼프는 계속해서 측근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정보가 언론에 흘러들어가는데 대해 계속 불만을 나타냈다. 코미는 성명에서 "대통령이 내게 플린이 지난해 12월 주미 러시아와 대사와 나눴던 대화에 대한 수사를 그만두라고 요구한데 대해선 이해가 갔다. 하지만 러시아 및 트럼프 캠프 연관성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수사에 대해 대통령이 이야기하는게 이해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지난 3월 30일 트럼프는 코미에게 또 전화를 걸어 "수사 때문에 (내) 정치력이 상처를 받고 있다"며 "내게 드리워진 이 먹구름을 거둬내기 위해 무엇을 할 수있겠냐"고 물었다. 노골적인 수사 압력이었다. 이에 대해 코미는 "여러가지 이유로, 무엇보다 (잘못을)바로잡고 바꾸는게 (FBI)의무이기 때문에" 대통령이 원하는대로 할 수는 없었다고 성명에 밝혔다.

트럼프는 또 당시 언론들이 보도했던 모스크바에서의 난잡한 섹스 파티 의혹을 부인했다. 언론들은 러시아 정부가 트럼프가 과거에 벌였던 섹스 파티 정보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트럼프에 대한 약점으로 잡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코미에게 자신은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성매매 여성들과 난잡한 파티를 벌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코미는 "우리가 당신을 개인적으로 수사하고 있다는 식으로 들릴 수있으니 신중히 생각하고 말하라"고 요청했다고 성명에서 밝혔다.

이 때 트럼프는 "나는 충성이 필요하다. 충성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코미는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충성에 대한 강박을 가지고 있으며, FBI가 공개적으로 자신의 무죄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4월 11일 코미에게 전화를 걸어 "언제 내가 수사 대상이 아니라고 (공개적으로)말할 계획이냐"고 다그쳐 물었다. 이에 대해 코미는 "법무부 보스(법무장관)에게 전했는데 아직 답을 못받았다"는 말로 즉답을 피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먹구름을 거둬내라"는 식의 표현으로 수사 중단을 압박했다고 코미는 성명에서 밝혔다.

트럼프는 이날 전화통화에서 "나는 당신에 대해 매우 충성스럽다(royal)"며 "우리가 그걸 가지고 있다는 걸 당신도 알지 않냐"고 말했다. 코미는 "나는 그 말에 응답하지 않았고, 트럼프에게 그게 무슨 의미냐고 되묻지도 않았다"며 "그게 트럼프 대통령과의 마지막 대화였다"고 밝혔다.

마지막 대화를 한지 약 한달 뒤인 5월 9일, 트럼프 대통령은 러시아 내통 의혹수사를 중단하기는 커녕 더 확대하고 있던 코미를 FBI 국장직에서 전격 해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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