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청와대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카드를 내려놓은 분위기다. 야당의 반대에 막혀 청문 대상자 '전원 살리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 후보자에 대한 운명을 국회에 오롯이 맡기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미정상회담·G20 정상회의 등을 언급하면서 강 후보자 보고서 채택의 급박함을 역설했다. 그러면서 그는 국회의 동의가 없어도 임명을 강행할 뜻을 내비쳤다. 문 대통령은 “저는 국민 뜻에 따르겠다”라며 “야당도 국민 판단을 존중해 주시기리 바란다”고 말했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의 경우, 현재로선 국회의 동의를 얻기 어려운 상태다. 김 후보자가 국회 본회의 표결을 통과하려면 최소 150석이 필요하다. 민주당 120석에 정의당 6석을 합쳐도 24석이 부족해 국민의당(40석)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문 대통령이 강경화 후보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할 경우, 김이수 후보자의 국회 인준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김이수 후보자는 본회의가 열리는 22일이나 27일께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할 가능성이 있다.

이 같은 현실적인 난관에 봉착한 데다 문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 등의 임명에 "국회의 뜻을 반드시 존중해야 한다"고 못을 박은 만큼, 대통령에게 임면권이 귀속된 장관 후보자들과 김이수 후보자를 분리 대응하는 쪽으로 방침을 굳힌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는 현재 자유한국당 등의 반대로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을 못 하고 있다. 진보 이념 편향성이나 농지법 위반, 부동산 투기 의혹 등이 문제가 되고 있다.

문 대통령이 15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밝혔듯 장관 후보자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참고용'일 뿐이고, 인사권자인 대통령이 '국정 공백 해소'와 '국민의 지지' 등을 명분으로 임명을 밀어붙이더라도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

현재 야당이 청문회를 열기도 전에 각종 의혹과 추문 등으로 문제 삼고 있는 김상곤 사회부총리 후보자나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등도 이런 김상조·강경화 식의 '임명 강행' 수순으로 가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일각에선 현 정부와 개인적 인연이 없는 강 후보자를 무리수를 두어가며 호위하는 것은 결국 김상곤·안경환·조대엽 후보자 등 후에 인사청문회를 거칠 진짜 '공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전초전 성격이란 말도 나오고 있다.

반면 헌재소장 후보자는 국회 청문특위에서 보고서 채택에 합의하지 못할 경우, 이낙연 국무총리처럼 국회 본회의에서 임명동의 표결로 가야 한다. 재적 의원 과반수 참석에 과반 이상 찬성을 필요로 한다. 김이수 후보자는 본회의가 열리는 22일이나 27일께 정세균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할 가능성이 높다.

이날 조선일보는 야당들은 문 대통령의 장관들 임명 강행이 이어지자 김이수 후보자 인준동의안 부결을 공공연히 거론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우택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15일 언론 인터뷰에서 "헌재소장 후보자의 인준동의안이 본회의에 직권상정 될 경우, 당 차원에서 표결에 참여해 부결시킬 생각"이라고 밝혔다. 현재 김 후보자에 대해 한국당뿐 아니라 국민의당 등에서도 부정적 기류가 많은 가운데, 표 대결시 '부결'의 승산이 있다는 얘기다.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나 박지원 전 대표도 최근 "강경화 후보자를 그대로 임명할 경우 김이수 후보자의 인준 표결을 장담하지 못한다"며 김이수 후보자 낙마를 예고하고 있다.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청와대가 김상조 위원장이나 강경화 후보자 등의 임명 강행 결정을 내리면서, 김이수 후보자 인준의 연계성을 따져보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강경화+a 구하기와 김이수 버리기'로 요약되는 방식을 택한 것은, 우선 김이수 후보자 낙마가 정권 차원에선 그리 치명적이지 않다는 계산일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정부 내 대통령의 참모를 뽑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김 후보자는 현재 헌법재판관으로서 어차피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맡고 있고, 헌법재판관 임기가 1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태다. 지금 '소장' 타이틀을 달지 못하게 되더라도 개인적 타격도 크지는 않을 것이란 분석이다. 헌법재판소 차원에서 보더라도, 이정미 전 헌재소장 권한대행 체제에서도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을 내리는 등 핵심 기능 운영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다. 박 전 대통령 파면 이후 헌재에 큰 현안은 많지 않다.

문제는 새 정부가 내놓은 11조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나 정부조직법 문제다. 야당은 인사 문제와 이런 추경이나 조직법 문제를 명시적으로 연계시키진 않고 있다. 그러나 야권이 정치 협상의 속성상 대여 투쟁이 강경해지면서 쉽게 합의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 내건 '일자리 추경'이나 '새 정부 출발'이 한없이 지연될 수도 있다.

이 경우 문 대통령이나 여당은 또 거꾸로 '야당이 민생·일자리 문제를 발목잡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할 명분을 만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당장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 심판론'을 불 지필 수 있다는 얘기다. '강경화 구하기'가 문재인 대통령과 그 참모들이 짠 고도의 정치적 전략과 포석의 첫 단추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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