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다른 분야도 아닌 법무부 장관으로는 부적절하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69)를 둘러싼 여러 논란과 의혹들이 본인의 해명 기자회견에도 불구하고 잦아들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검찰조직을 관리·감독하고 법무행정을 총괄하는 법무부의 수장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여론이다.

그런만큼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느냐는 의문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인수위 없이 출범한 탓에 밀도있는 검증이 어려운 사정이 있었다는 점을 참작해도 최근 언론에 등장하는 안 후보자 논란은 일반 국민의 정서로는 쉽사리 수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상대방 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혼인신고한 것은 공소시효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마땅히 형법상 처벌대상이었다는 것이다.

안 후보자는 그동안 자신의 저서와 칼럼에서 드러난 왜곡된 성관념 논란과 음주운전 고백, 자녀의 복수국적 문제 등이 불거지자 "청문회에서 밝히겠다"며 소극적으로 대처해왔다. 하지만 아들의 퇴학무마와 혼인무효 경력 등 연일 의혹이 확산되자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몰래 혼인신고'를 한 행위를 인정하면서 "젊은 시절의 잘못으로 평생 반성하고 사죄해야 마땅함을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안 후보자는 사죄를 하면서도 "이혼을 한 것이 국정을 수행하는데 결정적인 장애가 될 정도의 도덕적인 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며 "검찰 개혁과 법무부의 탈검찰화 의무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호소했다. 인사청문회에서 판단을 받겠다며 스스로 물러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안 후보자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법무부장관으로서의 자질에 대한 의구심은 커지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는 점은 안 후보자 이혼경력이 아니다. 도장을 위조해 몰래 혼인신고를 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혼여성의 도장을 위조해 허위 혼인신고를 할 경우 형법상 사인 등의 위조·부정사용, 공정증서원본 등의 부실기재 및 동행사죄 혐의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취업을 목적으로 허위 혼인신고를 한 부부에게 공정증서원본부실기재와 부실기재공정증서원본행사 등 혐의로 유죄를 인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당사자 사이에 비록 법률상의 부부라는 신분관계를 설정할 의사는 있었다고 인정되는 경우라도 그것이 단지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해 참다운 부부관계의 설정을 바라는 효과의사가 없을 때에는 그 혼인은 민법 제815조 제1호의 규정에 따라 그 효력이 없다고 해석하여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안 후보자는 "당시는 형사처벌 받지 않았고 절차도 진행되지 않았다"며 "만약 형사문제에서 제재를 받았다면 법무부장관으로 흠결이라고 본다"고 했다. 후보자 스스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력이 있다면 법무부장관으로서 부적격하다고 밝히고 있다.

안 후보자의 이같은 주장과는 달리 법조계에선 다른 분야도 아닌 법무부 장관으로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 소재 한 대학의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른 분야라면 몰라도 법무부장관이라면 결국 모든 국민에 대해서 준법을 대표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하는데 그러기엔 사안들이 심각하다"며 "준법의 표상이 돼야할 분이 오히려 국민들에게 법을 지켜야 한다고 요구할 수 있냐는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김한규 전 서울변호사회장은 "만일 안 후보자가 형사처벌을 받았으면 공무원이 되지 못했고 서울대 교수 임용도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법무부장관은 법집행을 총괄 책임져야 하는 수장이고 시대적 사명인 '검찰 개혁'을 추진해야하는 지위에 있기 때문에 후보자 본인이 사퇴하고 정부도 지명 철회해야 한다"고 밝혔다.

靑, '논란' 알고도 안 거른 이유는

논란은 이 뿐만이 아니다.

안 후보자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혼인무효 판결을 받은 사실을 청와대에 이미 알렸다고 이야기하면서 더욱 커지는 모양새다. 안 후보자는 "(관련 의혹을 민정수석실 검증 과정에서) 대부분 해명했고 2006년 국가인권위원장 취임 전 사전검증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해명했다"고 말했다.

안 후보자의 말 대로라면 청와대는 법무부 장관의 과거 위법 사실을 사전에 인지하고도 인사를 그대로 밀어붙인 셈이 된다. 이 문제가 공개됐을 때 여론이 매우 부정적으로 반응할 것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에서 청와대로서는 상당한 위험 요인을 안고 도박에 가까운 지명을 강행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안 후보자의 해명을 들어보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지를 봐야 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결국 청와대는 어찌 됐든 청문회를 거쳐 안 후보자에게 검증과 해명의 기회를 주고 국민 여론을 최종 임명의 판단 기준으로 삼으려 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비난여론을 예상하기 어렵지 않았음을 생각할 때 청와대가 사전 검증 과정에서 단호하게 인사권자인 대통령에게 '부적격' 의견을 제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일한 여권의 한 관계자는 "인사에 문제가 있으면 '브레이크'를 거는 게 민정수석실의 역할인데 지금은 '노(No)'라고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필요하다면 대통령에게 '이 후보자는 안 된다'는 직언을 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논란과 에너지 소모를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논란은 단순히 안 후보자 개인 차원을 넘어 인사수석실과 민정수석실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의 인사검증 시스템과 기준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이 밝힌 '5대 인사원칙'에 해당하는 사항을 사전에 공개하고는 있지만 그 뒤에 제기되는 의혹들이 '정도가 사소하다'는 이유로 넘기기에는 가볍지만은 않은 것들이다.

더욱이 안 후보자 논란은 여권의 열성적 지지층 사이에서도 용인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는 탓에 '검증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쉽게 가라앉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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