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지막 사법시험이 치러진 21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 모임 회원이 사법시험 존치법안 통과를 촉구하고 있다.
[신소희 기자]‘흙수저들의 희망의 사다리’로 ‘개천의 용’을 배출하며 숱한 성공신화를 빚어낸 사법시험이 막을 내리게 됐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없어지는 사법시험 제2차 시험이 21일 연세대 신촌캠퍼스에서 실시됐다. 24일까지 나흘간이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 '사법고시'는 1950년 고등고시 사법과가 출발이다. 고등고시 체제로 16번 치렀고 1963년부터는 지금의 사법시험으로 전환됐다. 사법시험만 따지면 70만8276명이 문을 두드렸고, 그 가운데 2.9%인 2만718명이 문턱을 넘어 법조인의 꿈을 이뤘다.

초창기 합격 인원은 적었다. 고등고시 사법과 1회는 16명, 사시 1회는 41명이 합격했다. 합격 인원을 정해둔 시험이 아니라 평균 60점을 넘고 과락(科落)이 없어야 합격하는 시험이었기 때문이다. 합격 인원은 1981년 23회 때 300명을 넘어섰고 2001년부터 '1000명 시대'를 맞았다가 2007년 로스쿨 도입과 사시 점진적 폐지 결정으로 순차적으로 줄어들었다. 1952년 고(故) 이태영 변호사가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합격할 때만 해도 드물던 여성 합격자 비율은 2010년부터 40% 안팎을 기록하고 있다.

22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해 1차 시험 합격자 중 2차 또는 3차 시험에 불합격한 200명이 이번 2차 시험 응시 대상이다. 법무부에 따르면 이 가운데 196명이 원서를 냈으며, 시험 첫날인 이날 결시생 10명을 뺀 186명이 응시했다. 이 가운데 50여명이 합격증을 받게 된다. 사시 폐지를 규정한 변호사시험법에 따라 올해는 1차 시험이 치러지지 않았다.

사법시험 제도는 인생역전 드라마를 꿈꾸며 고시촌을 전전하는 장수생들을 ‘고시낭인’으로 이끈다는 부작용이 지적되기도 했다. 그러나 학력이나 출신지 등 배경에 상관없이 오로지 갈고 닦은 실력만으로 승부해 합격ㆍ불합격을 가리고, 공정 경쟁을 통해 인재를 배출하는 순기능도 톡톡히 해냈다. 역대 사법시험 합격자들은 판사, 검사, 변호사, 헌법재판관, 사내변호사, 정치인 등 다양한 직역에서 법률전문가로 활동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 대통령도 2명이나 배출됐다.

이런 역사적 배경 때문에 사법시험 존치 주장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사법시험 존치를 위한 고시생모임’은 마지막 2차 시험이 치러진 이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법시험은 55년간 한 번도 공정성 시비가 없었을 정도로 공정사회 상징과도 같은 제도이며 국민 85%가 사법시험 존치에 찬성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법률전문가가 부족했던 고도성장기 이후 사법시험이 역사적 소명을 다한 만큼, 이제는 로스쿨을 새로운 법조인 양성 체제로 안정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문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사법시험 폐지와 로스쿨 일원화 공약을 내걸어 부활은 어려워 보인다. 정형근(60ㆍ사법연수원 24기) 경희대 로스쿨 교수는 “사법시험의 공정성을 로스쿨에서도 이어받을 수 있도록 입시제도와 학사관리를 엄정하게 해야 한다”면서 “다양한 전공자들이 법조인을 지망할 수 있도록 문호를 넓힐 제도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쨌건 ‘개천의 용’을 배출하며 온갖 화제를 뿌린 '苦試'가 54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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