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검찰이 한창 진행 중인 한국항공우주(KAI) 경영진의 횡령·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은 애초 경찰이 범죄 혐의를 훨씬 먼저 인지해 수사를 벌였던 사안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경찰은 검찰 요청에 따라 사건을 방위산업비리 합동수사단으로 이첩하는 바람에 결국 수사를 마무리짓지 못했으며, 검찰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뒤 수사를 진전시키지 못한 채 마무리했다.

약 2년 반전에 경찰이 먼저 착수해 의욕적으로 파헤쳤던 KAI 비리 의혹이 검찰 손에 넘어가고 나서 '유야무야'된 셈이다. 검찰이 과연 진상 규명 의지가 있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1일 뉴시스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지난 2014년 12월 말 KAI 경영진이 연루된 공금 횡령과 비자금 조성 의혹 혐의를 포착하고 관련 수사를 벌였다. 경남지방경찰청에서 진행했다.

당시 경찰은 KAI 경영진이 항공기 부품을 해외로 수출하면서 받은 대금을 원화로 바꾸면서 적용한 환율을 조작하는 수법으로 수십억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구체적으로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공금으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이를 다시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도 잡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범죄 혐의를 적발한 뒤 곧장 KAI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에 나섰으며, 2015년 1월에는 참고인들 진술까지 확보했다. 경찰은 비자금 조성 과정에 KAI 최고위급 경영진이 개입했다는 진술도 확보했다.

경찰은 이어 2015년 2월 말 KAI 경영진과 법인의 계좌 추적을 위해 검찰에 영장을 신청했으며, 검찰도 이를 받아들여 영장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은 사건 초기 경찰이 이 수사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경찰은 그러나 이 사건을 마무리 짓지 못한 채 기록 일체를 같은 해 3월2일 당시 대검찰청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에 이첩했다. 이 사건을 합동수사단에 넘기라는 검사의 수사지휘가 내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은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고도 별다른 수사 진전을 보지 못했다. 사건을 넘겨받은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의 이후 수사결과 발표에서도 KAI 관련 부분은 제외됐다.

검찰은 정권이 바뀌고 최근 들어서야 KAI 임직원을 소환하는 등 조사를 재개한 상태다. 종전 수사에 대해 검찰은 감사원으로부터 참고자료를 넘겨 받고 광범위한 수사에 착수했었다고 발표해 그 이전에 경찰 수사가 상당히 깊숙이 진행됐던 점을 사실상 감추기도 했다.

또 사건을 이첩받은 뒤 핵심 피의자인 KAI 직원 S씨가 도주하는 바람에 수사를 진척하지 못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단계에서 범죄 혐의가 아주 구체적으로 드러났던 만큼 검찰의 행보는 여러모로 석연찮다는 지적이 나온다. S씨 도주와 별개로 관련자 처벌이 가능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검찰이 사실상 이 사건을 덮으려 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나올 수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는 "범죄의 성격상 달아난 S씨는 해당 사건의 주범이라고 보기 곤란하고 그런 이유로 수사를 못했다는 설명은 납득하기 힘들다"며 "계좌 추적만 해봐도 범죄 연루자를 얼마든지 추려낼 수 있는 사안인데 검찰 해명이 궁색하다"고 말했다. 

당시 KAI 수사를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사정기관 관계자는 "당시 검찰이 대대적인 방위사업 비리수사를 벌인다는 명목으로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것 같다"며 "그런데도 정작 합동수사단의 수사 결과 발표에서 아예 제외된 것도 이상하고, 지금와서 경찰이 수사했던 사실을 숨기는 것도 이상한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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