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미국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이 북핵 해법을 위해 주한미군 철수 등을 내걸고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 정부에 조언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키신저 전 장관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 등에게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상황에 대해 미국이 중국과 사전에 합의하면 북핵 문제 해결에 더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다”며 주한미군 철수 등을 중국에 제시할 협상 카드로 제안했다. 

앞서 제이 레프코위츠 전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도 7월 29일 NYT 기고문에서 "한반도 정책에 급격한 변화가 필요하다"며 "미국이 오랫동안 지지해왔던 '하나의 한반도' 정책 포기를 고려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북한 문제 해결과 관련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라며 "중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미국의 목표가 더 이상 한반도 통일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통일을 추구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통해 통일 이후 북한이라는 완충지대가 사라질 수 있다는 중국의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정권 붕괴 이후 주한미군 철수를 약속해 중국의 불안을 줄여야 한다는 키신저 전 장관의 의도와 같은 맥락이다. 역시 중국과의 협상카드의 일환으로 한국이 배제된 채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되는 시나리오다.

“서울을 지키기 위해 LA를 희생할 수는 없다”는 미국 전문가들 사이의 담론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북한이 핵 미사일로 미국 주요 도시를 공격할 수 있다고 위협한다면, 미국의 안보전략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한국을 제치고 미국과 협상한다는 이른바 ‘통미봉남(通美封南)’을 노골화하고 있다.

북한은 “조선반도(한반도) 핵 문제는 철저히 조·미(북·미) 사이에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주장했다. 북한의 의도는 명확하다. 핵·미사일을 손에 쥐고 미국과 동등한 위치에서 담판을 짓겠다는 것이다. 미·북 평화협정이 체결되면서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 약화로 이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문제는 미국과 중국이 한반도 문제를 놓고 '빅딜'에 나선다면 북한 문제 해결과 통일 등을 결정하는 주도권을 한국이 아닌 미국과 중국에 내주게 된다는 것이다. 일종의 '코리아 패싱'이다. 이는 박근혜정부 말기 탄핵 정국으로 인해 북한 핵문제를 놓고 코리아 패싱 논란이 일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다.

한국 정부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작동 원리에 의해 코리아 패싱이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의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는 문재인정부의 '운전대론'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이 근본적으로 달라져야 하는 이유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