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국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데카르트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는 서구의 근대 합리주의적 세계관은 정신과 물질을 둘로 나누는 이원론적 세계관이다.

그리고 이러한 이원론적 세계관은 뉴턴으로 대변되는 근대 자연과학의 발달로 우주를 아무런 정신이 끼어들지 않는 정교한 기계장치로 보는 기계론적 자연관으로 연결된다.

이러한 이원론에서는 단순한 기계 장치에 불과한 자연은 인간이 언제든지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객체에 불과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끝없이 이윤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자연에서 좀 더 많은 이익을 캐내고자 자연을 착취하고, 그 결과 수많은 환경 파괴와 공해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또한 이러한 이원론에서는 나와 타인과의 관계는 주체와 객체라는 별다른 관계이다.

그런데 자본주의의 욕망이 탐욕의 이빨을 드러내면 타인 역시 자연과 마찬가지로 착취할 수 있는 객체로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 결과 천민자본주의화 하고 있는 오늘의 자본주의에서는 가진 자가 덜 가진 자의 것도 마저 빼앗아 ‘1%의 부자와 99%의 빈자’라는 사회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세상을 꼭 이렇게만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를 대체할 세계관은 없는 것인가? 홀로그램으로 영상을 기록한 필름의 일부를 잘라내어 여기에 레이저 광선을 비추면 영상의 일부분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영상의 전부가 나타난다.

또한 프랙탈 도형의 일부분을 확대하면 그 속에 전체의 모습이 들어 있고, 그중에서 또 일부분을 확대해보면 여전히 그 속에는 또 전체의 모습이 들어있다.

즉 홀로그램이나 프랙탈에서 부분이란 전체가 나누어진 개별적 존재가 아니라, 그 부분 속에 전체가 또 들어있는 것이다. 불교에서도 일즉다 다즉일(一卽多 多卽一)이라고 하여 하나 속에 전체가 들어있고, 전체 속에 하나가 들어있다고 한다.

그리고 심층생태학에서도 세계를 분리된 존재의 단순 집합으로 보지 않고, 서로가 연결되어 있는 상호의존적인 연결망으로 보며, 가이아(Gaia) 이론을 제창한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지구를 가이아라는 하나의 유기체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세상을 보는 또 다른 눈을 발견할 수 있다. 즉 부분은 전체를 함유하고 세상은 그물처럼 이어져 타자(他者)는 나와 상관없는 별개의 존재가 아니라 나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일원론적 세계관이다.

일원론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착취하여도 되는 객체가 아니며, 타인도 탐욕의 대상으로서 객체가 아니라 나와 연결된 나의 일부분인 것이다.

이렇듯 세상은 다 나와 그물처럼 연결되어 있는 나의 일부분인데, 세상을 욕망의 객체로서 착취만 한다면 결국 그 피해는 돌고 돌아서 나에게 돌아올 것 아닌가?

탐욕이 일상화되고 있는 오늘날, 문명의 위기까지 거론되고 있는 오늘날, 이 오늘날에 우리는 세계를 바라보는 눈, 패러다임을 바꾸어야 한다. 이원론에서 일원론으로! 우리 모두는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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