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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톡】전두환, ‘이방원의 난’ 학습했나
심일보 기자  |  jakys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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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2  10:5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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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일보 대기자]성공한 쿠테타는 학습되는가

목슴을 건 쿠테타를 그들 세력은 혁명이라 부른다. 그러나 그것이 혁명인지 쿠테타인지는 역사가 판단한다. 필명 ‘추월’이 쓴 ‘이방원-제 1,2차 왕자의 난을 통해 전두환 쿠테타와 무엇이 비슷한지를 조명했다.

우리나라 역사상 성공한 쿠데타는 꽤 된다. 그 성공한 쿠데타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은 상대적으로 전력이 약하다고 생각되는 쪽이 불시의 기습으로 인해 성공했고, 성공이후의 전개과정이 엇 비슷하다.

그 중 우리나라 역사상 전개과정이 가장 닯은 두 쿠데타가 있다. 바로 조선건국 직후 '제1차 왕자의 난'과 600년이 지난 후 대한민국 '전두환 일당의 신군부에 의한 쿠데타'다. 이 두 쿠데타를 비교해 보면서 제1차 왕자의 난을 자세히 살펴보자.

먼저 이 두 쿠데타의 주인공인 이방원과 전두환은 둘 다 한 나라의 최고 권력자가 되리라고는 처음부터 생각하지 못했다. 이방원은 이성계와 정도전이 위화도회군 이후 역성혁명을 계획할 때부터 직접 참여했기에 어렴풋이 왕을 꿈꾸었을 지는 모르지만 방원 위로 4명의 형이 있었기에 엄두를 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다 생각지도 않게 장형인 이방우가 세자는 싫다며 낙향하고 그 뒤 1년만에 죽는다. 이에 이방원은 왕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이방원 위로는 3명의 형, 아래로는 두 동생의 친모인 계비 강씨, 그리고 무엇보다도 넘기 힘든 당시의 거의 모든 군권과 실권을 가진 정도전이 버티고 있었다

전두환은 박정희의 총애를 받아 보안사령관에 올랐지만 그 당시까지도 최고권력자는 꿈도 꾸지 못했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시퍼렇게 살아있었다. 여권에는 차지철 김재규 김종필 등 쟁쟁한 인물들이 버티고 있었고, 야권에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있었다.

그런데 경천동지할 10ㆍ26이 터져 김재규에 의해 박정희왼 차지철이 동시에 사라져 버린다. 10ㆍ26사태는 당시 대통령시해범인 중앙정보부장 김재규는 수사권을 가진 보안사령관 전두환에게 느닷없는 기회를 가져다 주었다.

이방원은 방석이 세자가 되고도 6년 동안은 숨 죽이고 살아야 했다. 방원도 어느 정도 사병을 가지고 있었고, 현존 왕의 친아들이자 개국공신이라는 명분은 있었다. 그러나 당시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정도전 일파가 마음만 먹으면 이방원을 역모로 몰아 쉽게 죽일 수도 있었다. 정도전에게는 그럴 만한 충분한 힘이 있었다.

그러나 정도전은 이방원을 너무 경시했다. 이방원의 야망이 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기가 방원을 살려두어도 충분히 제어할 수 있으리라 자신만만했다. 그래도 한 때 제자였고, 자기를 친삼촌 처럼 따랐던 현존 왕의 친아들인 이방원의 목숨까지 빼앗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10ㆍ26이후 군권은 명목적으로 최규하 대통령권한대행과 계엄사령관 정승화에게 있었다. 당시까지만 해도 최규화와 정승화는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충분히 제어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럴 만한 힘도 있었다.

군권을 장악한 정도전은 명나라의 심한 간섭과 자신을 압송하라는 명의 요구에 화가 나 요동정벌을 주장한다. 태조 이성계로부터 요동정벌을 허락받은 정도전은 그 명목으로 사병을 혁파하고 군권을 장악해 나가려 한다.

정도전의 요동정벌 추진은 여러 의미가 있었지만 왕자들의 사병, 특히 이방원의 사병을 혁파하여 그들의 손발을 잘라 놓으려는 의미가 컸다.

이에 이방원은 배수진을 치고 죽기살기로 정도전 일파를 불시에 기습하여 반격을 가한다. 이방원을 경시하여 별 대비를 하지 않았던 정도전은 이방원의 기습 한 방에 살해됨으로써 그의 꿈은 멀리 날아가 버린다.

전두환도 당시 병력으로 보면 정승화 계엄사령관과 게임이 안되었다. 정승화는 계엄사령관으로서 즉시 동원할 수 있는 장태완 수경사사령관과 정병주 공수특전단사령관이 정승화와 같은 편이었다.

전두환의 월권이 심해지자 정승화는 전두환을 보안사령관직에서 해임하고 동해안경비사령부 사령관으로 발령할 준비를 마치고 발표만 남겨놓고 있었다.

이 정보를 입수한 전두환과 신군부측이 발표 전날 기습적으로 선수를 쳤다. 바로 12ㆍ12 쿠데타다.

쿠데타에 성공하여 정도전과 이복동생들인 방번 방석까지 살해한 이방원은 실권을 장악했으나 당장 왕이 되지는 않는다. 둘째 형 이방과를 허수아비 왕으로 내세우니 그가 정종이다. 이방원은 세제가 되어 실권을 잡고 뒤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전두환도 12ㆍ12쿠데타에 성공했지만 당장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앉지는 않는다. 최규하를 임시대통령으로 만들어 놓고, 그 또한 실권을 잡고 최규하를 뒤에서 조정한다.

우리나라 역사상 성공한 대부분의 쿠데타는 이처럼 상대적으로 더 힘을 많이 가진 정적과 비교도 안되는 작은 병력으로 단숨에 기습하여 일거에 성공시킨다. 수양대군의 계유정란과 박정희의 5ㆍ16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쿠데타에 성공한 이방원과 전두환에게도 마지막으로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이방원은 자기와 성정이 비슷하고, 왕에 대한 야망이 있으며, 사병도 엇비슷하게 보유하고 있는 넷째 형 이방간과 백성들의 여론이었다. 전두환에게는 당시 대통령 후보로 이름을 날리고 있던 김종필 김영삼 김대중과 국민의 여론이었다.

왕의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이방원은 어쩔 수 없이 친형 이방간과 전투를 치룬다. 그리고 승리한다. 제2차 왕자의 난이었다. 그리고 모든 권력을 손에 쥐고 드디어 왕위에 오르니 그가 태종이다.

전두환 일당은 5ㆍ17 쿠데타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을 제거하고 5ㆍ18광주항쟁을 야기시킨다. 그리고 광주항쟁을 무자비하게 진압하고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오르니 제5공화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전두환은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된다.

이 두 쿠데타의 전개과정이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전두환 일당이 600년전 이방원의 쿠데타를 면밀히 연구하고 검토하여 벤치마킹한 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그 만큼 이방원의 쿠데타와 왕위 쟁탈은 600년이 지난 후에도 벤치마킹할 만큼 철두철미한 계획아래 진행된 것이다.

제1차 왕자의 난 당시 태조 이성계는 병석에 있었다. 이성계는 이방원의 쿠데타에 분노했지만 이미 병권을 빼앗겨 어쩔 수 없었다. 이성계는 방석과 방번을 살려준다는 이방원의 약속을 믿고 쿠데타를 용인한다. 그러나 이방원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 이방원은 방석과 방번을 함께 살해했다.

이 때 방석의 나이 17세였다. 후에 세종의 여섯째 아들 금성대군이 방석의 후사를 이었으나 금성대군이 세조에 반기를 들었다가 실패하고, 32세의 나이에 처형되자 방석의 후사는 완전히 끊기고 말았다.

태조 이성계는 방원의 약속과 달리 이방석과 무안군 이방번, 그리고 사위 흥안군 이제가 죽임을 당하자 이에 분노하고 충격을 받아 모든 일에 흥미를 잃고 지내다 왕자의 난 한달 뒤에 이방과에게 왕위를 물려주니 그가 곧 정종이다.

이제 태조 이성계는 상왕으로 칭하게 된다. 이방원은 장자승계의 법칙을 따르기 위해 난을 일으켰다는 명분으로 쿠데타를 정당화시키려 한다. 그래서 이미 자신이 가진거나 마찬가지인 세자 자리를 굳이 사양하고 야망이 없는 둘째 형인 이방과에게 넘겨주었다.

이방원의 이러한 행위는 자신은 야심이 없다는 것을 신료와 백성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였다. 고려시대에 17살의 나이로 문과에 급제하기도 한 이방원답게 머리를 잘 썼고, 기다릴 줄도 알았다.

이방원은 왕에 대한 별 야망없이 착하기만 형 이방과에게 차기 제왕의 자리를 양보함으로써 아비를 치고 아우들을 살해한 주동자로서의 책임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나려 했다.

그러나 이방원은 왕에 대한 야망에서는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이방원은 얼마든지 훗날을 기약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이런 과감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방원은 정종이 후사가 없다는 이유로 스스로 세제가 된다. 그리고 2년후 정종이 바늘방석에서 스스로 내려와 세제 이방원에게 왕위를 전위하니 그가 바로 그 유명한 세종의 친아버지인 조선의 3대왕 태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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