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 지난해 10월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국무부, 재무부에서 30년간 북한 경제 분석을 한 뒤 2014년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 전문가패널 위원으로 공직생활을 마무리한 윌리엄 뉴컴은 당시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뜻밖에도 “역시 그들과 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북 제재의 전설’로 남아 있는 2005년 방코델타아시아(BDA) 규제의 입안자이다.

그는 “제재 중에도 공식·비공식 채널이 계속 있어야 하고, 외교적 해법 가능성이 있는지 계속 탐색해야 한다”며 “여러 가지를 합의해 주는 것은 현명하지 않지만 그들 얘기를 계속 들어 볼 필요가 있으며 정례 채널을 유지하는 것이 신뢰를 쌓는 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후 1년이 지난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김정은의 6차 핵실험을 제재하기 위해 9월11일 미국 주도로 유엔 안보리(UNSC) 제재 2375호가 의결되었다. 미국은 김정은의 수소폭탄급 핵실험에 대해 사상 최고도의 제재를 가할 것이라고 공언했으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가 경향신문 칼럼에서 지적했다시피 ‘태산명동 서일필’이었다.

이번 대북제재는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에 대해 내려진 UNSC 1718호 이래 9번째로 내려진 제재이다. 미국은 북한이 핵 도발을 할 때마다 반복해서 ‘제재와 압박’으로 북한 독재자가 핵을 폐기하도록 압박하였으나 참담하게 실패하였다.

대북제재는 오히려 북한 독재자에게 생존에 대한 위기감을 불러일으켜 더 강력한 핵을 개발해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해주었고, 북한주민에게 김정은이 이야기하는 핵 개발의 정당성을 수긍하게 해주었다. 북·미 간에 핵개발과 제재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동안 북한은 벌써 60여개의 핵탄두를 보유하게 되었고 미국 뉴욕에 도달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발사하는 데 성공하였다. 10년 넘게 계속된 대북제재 레짐(regime)은 애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한을 사실상(de facto) 핵 국가로 만들어 주는 재앙적 결과를 초래하면서 파산했다.

그렇다면은 왜 대북제재는 실패하는걸까?

임 교수는 칼럼에서 먼저, 지정학적으로 북한과 중국은 ‘입술과 이빨의 관계’(脣亡齒寒)이기 때문이다. 북한이라는 입술이 사라지면 중국은 21세기의 단일 패권국가인 미국과 완충지대 없이 바로 대치해야 한다. 이러한 지정학적 건축(architecture)은 중국이 G2로 부상하고, 시진핑이 신형대국을 선언하고, 이에 맞서 미국은 동아시아로 군사력을 이동시키면서 더욱 견고해졌다.

시진핑이 김정은의 핵 개발을 반대하면서도 북한체제의 붕괴나 정권교체를 초래할 수 있는 수준의 제재를 반대하는 것은 ‘입술국가’인 북한의 지정학적 가치 때문이다. 더구나 시진핑이 김정은을 버리면 항상 북한이라는 ‘입술’을 훔치려 했던 러시아의 푸틴이 중국의 대체재 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대북제재를 작동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중국과 러시아가 경쟁적으로 유엔제재를 우회해서 북한을 지원하는 한 대북제재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둘째, 북한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무역의존도를 갖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대북제재가 북한경제를 옥죄는 효과는 개방경제 국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다. 더구나 북한은 공무역보다 압록강과 두만강변에서 이루어지는 밀무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공식적 제재의 효과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에 비공식적인 ‘장마당’이 가계소득의 70~90%를 점유할 정도로 시장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북한경제가 3% 내외의 경제성장 궤도로 진입하였기 때문에 ‘고난의 행군’ 시기와 비교하면 비핵화를 위한 경제제재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권은 파산한 대북제재 레짐을 대체할 대안들이 백가쟁명식으로 쏟아지고 있다. 트럼프는 평양을 ‘화염과 분노’에 휩싸이게 하겠다는 트윗을 날렸고, 그의 참모들과 의원들은 예방전쟁과 선제공격을 거론했다. 한국의 강경론자들은 전술핵 재배치와 김정은 참수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코리아 아마겟돈'의 위험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대북 선제 공격론이 거론되는 상황에서 아마도 북한은 한미 양국의 선제 공격이 임박했다며 군사적 긴장을 최고조로 끌어올릴 것이다.

가장 우려되는 현실적인 시나리오는 북한이 핵미사일을 '경보 즉시 발사(launch on warning)'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잃기 전에 쏜다"는 핵 교리에 따라서 말이다. 이에 맞서 한미 양국도 신속한 선제 공격 태세를 갖추려고 할 것이다. 그 결과는 상시적인 핵전쟁의 두려움이 될 것이다.

휴전선을 맞대고 있는 한국의 운명은 미국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미국 본토에는 화염이 없거나 극히 제한적이겠지만, 한국은 곳곳이 화염에 휩싸이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버섯구름이 피어오를 가능성을 수반하면서 말이다.

그렇다면 방법이 없는 것일까?

앞서 언급한 윌리엄 뉴컴의 말처럼 “그들과 대화”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 희망의 근거는 우리 국민 안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반전반핵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지고 넓혀서 평화 의지가 전쟁 의지를 압도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국민적인 열망을 실현할 수 있는 실력과 의지를 갖춘 정치 리더십을 만들어야 한다.

평화는 요란한 실천을 통해 천천히 오지만, 전쟁은 순간의 오판에 의해 순식간에 모든 것을 집어삼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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