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SBS-TV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MB저격수’로 유명한 ‘시사인’ 주진우 기자를 만나 이명박 전 대통령 취재에 돌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BBK 주가조작 사건'이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주 기자는 지난 14일 페이스북에 ‘그알’ 제작진과 만나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그는 “이명박을 취재하겠다고 찾아온 첫번째 언론”이라고 소개했다. '그알’ 팀도현재 2002년 BBK 관련 투자자문회사인 ‘옵셔널벤처스’ 상장 폐지로 피해를 본 소액주주들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다고 방송을 내보냈다 .

이러한 가운데 지난 15일 미주 한인 매체인 선데이저널이 ‘10년 만에 재 점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제하의 기사로 ‘김경준, BBK계좌에서 이명박에 50억 지불’ 내용을 소개했다.

선데이저널은  2007년 9월2일 처음으로 BBK 의혹 사건을 보도한 매체이기도 하다.

매체에 따르면 정동영 후보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2007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 이명박, 박근혜 후보 누가 나와도 어려운 게임이 예상됐다. BBK 사건은 한나라당 내부 경쟁자였던 박근혜 후보는 물론이고, 민주당도 사활을 걸고 달려들었다. 이명박 후보 측은 죽기살기로 이를 방어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재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제기한 50억 송금 의혹이나 국내 주간지에서 얘기한 에리카 김 관련 내용들은 모두 매체에 이미 보도했던 내용들이 재탕 삼탕 되는 것에 불과하다. 2007년 대선 전 신재민 전 조선일보 기자, 김효재 전 조선일보 기자, 박계동 전 의원 등 이명박 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이 본지에 찾아와 ‘대선 때까지만 봐 달라’며 읍소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매체는 "검찰이 사건 수사에 나섰으나 당선이 유력했던 후보를 건드릴 리 만무했고, 오히려 면죄부만 줬다. 대선 후 특검까지 실시됐으나 역시 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 때 BBK 사건을 무마했던 인사들은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을 차지했다. 결국 이명박 캠프 측은 이 사건의 최종 결과를 대선 이후로 미루는데 성공했다. 하지만 진실은 영원히 감출 수 없는 법. 결국 정권이 교체되고 한국 정치권 언저리에서는 이 사건과 관련된 진실게임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결자해지 차원에서 BBK사건의 진실과 거짓 사이를 다시 한번 짚어 본다"고 말했다.

시사플러스에서 사안의 중요성을 감안, 매체 전문을 게재했다.

[‘10년 만에 재 점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사전문]

1. BBK 사건이란

2001년 김경준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투자자문회사 BBK가 투자자들로부터 받은 투자금을 횡령해 옵셔널벤처스라는 코스닥 상장기업의 주가를 조작하는 데 이용한다. 이에 앞서 금융감독원은 김경준이 BBK의 자금을 유용하고 투자보고서를 조작한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한다. 설 곳이 없어진 김경준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으로 인한 수익금 등을 자신의 해외 계좌로 송금한 뒤 2001년 12월 미국으로 도주한다.

이보다 1년 전인 2000년 이명박은 LK-e뱅크라는 회사를 창업해 김경준과 공동운영했다. LK-e뱅크는 김경준이 제안하고 이명박이 함께 추진한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구상(e-Bank Korea)의 일부였다. e-Bank Korea라는 인터넷 종합 금융서비스 사이트 아래서 이미 김경준이 설립해 운영하고 있던 BBK가 투자자문업을 맡고, 새로 설립한 EBK증권중개가 증권회사 기능을, 그리고 그곳에서 사용할 금융시스템 개발 및 제공은 LKe가 담당하기로 했다. 이명박은 이 구상에 따라 2001년 2월에는 김경준과 함께 EBK증권중개를 설립했다.

그러나 앞서 썼던 것과 같이 2001년 4월 3일 금감원이 김경준의 BBK 자금 유용 및 투자보고서 조작 사실을 적발해 BBK의 투자자문업 허가를 취소했다. 이후 김경준에게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된 이명박은 4월 6일 EBK증권중개의 증권업 허가 신청을 철회하고 2001년 6월 8일에는 주주총회를 열어 EBK증권중개의 법인 청산을 의결한다. 김경준과 갈라선 것이다.

김경준의 사기사건이 문제가 됐던 것은 2004년 5월 김경준이 이곳 미국 연방 마샬에 의해서 전격체포되면서부터다. 한인사회에서 많은 물의를 일으켰던 그가 마샬에 체포된 사실을 본지가 처음 보도했고, 이후 후속보도가 계속되면서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퍼져갔다. 당시 연방 마샬은 김경준씨가 자기 사금고인 MAF펀드를 이용하여 한국을 국제적인 돈세탁 장소로 악용한 신종 금융범죄로 보고 김씨를 체포했다. 법적 서류에 따르면 김경준씨는 회사 공금 384억원(약 3400만 달러)을 횡령하고 미국으로 도주했으며 이로 인하여 일반 주가조작과는 달리 옵셔널벤처스 투자자들은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손실을 입었다.

BBK 사건은 이명박과는 떼려야 땔 수 없었다. 김경준과 함께 인터넷 기반 금융 서비스 사이트 구축을 위해 일정 기간 동업을 했고, 그 금융 서비스 그룹에 주가조작에 투자금 및 법인계좌가 이용된 BBK가 속해 있었으니 주가조작 사건에도 연루됐을 것이란 의혹이 따라다닌 것이다. 거기에 아예 BBK의 실소유주가 이명박이라는 의혹까지 덧붙여졌다. 이명박이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있던 자동차 부품 회사 다스가 BBK에게 190억 원을 투자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의혹은 더욱 짙어졌다.
본지 보도로 시작된 이 사건은 2007년 대선 과정에서 가장 큰 이슈로 떠올랐다. 당시 본국의 한 언론은 BBK 사건을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썼다.

<선데이저널>은 지난 2004년 김경준 씨가 자신의 LA 자택에서 체포된 후부터 지금까지 60여차례가 넘는 관련 보도를 해왔다. 특히 BBK 문제와 관련해 거의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던 국내언론들은 이 후보의 대선 출마로 각종 검증을 시작하며 BBK와 관련 <선데이저널> 기사를 많이 참고해왔다.

결국 2007년 12월 대선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 당시 미국에 수감돼 있던 김경준은 ‘BBK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라는 취지의 폭탄선언을 한다. 이후 4년동안 엎치락 뒤치락 재판 끝에 끝내 대선을 1개월 앞둔 2017년 11월 한국으로 송환돼 검찰 수사를 받은 김경준은 검찰과 언론에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임을 입증하는 이면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최근 본국에서 이명박이 50억원에 김경준에게 매각하기로 했다는 내용의 이면계약서다. 이미 10년 전에 본지가 보도한 바로 그 계약서다. 어쨌든 이 계약서가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태풍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당시 본지가 처음 보도했던 내용부터 대선 판에서 이명박 캠프가 이를 어떻게 막으려 했는지 다시 살펴볼 필요는 있다.

 
2. BBK 의혹의 시작

‘BBK’란 김 씨가 속한 파트너 구성에서 이니셜을 따온 것이다. 즉, BBK는 김경준의 친구인 Bobby Oh(오영석), 김 씨의 부인 Bora Lee Kim(이보라) 그리고 KyungJoon(김경준) 자신 등 3명의 최초 창업 이사들의 영문 이름의 이니셜을 딴 미국식 회사이름이다. 그러나 BBK는 주주 구성, 이사 구성, 운용 행위자로 볼 때 실질적으로 김경준 1인 회사였다. BBK 사건이 처음 점화된 것은 2004년 5월 본지가 이명박 – 김경준 – 에리카 김이 연루된 사건을 특종 보도하면서부터다. 2004년 5월3일 본지는 연방 마샬에 김경준 씨가 체포된 사실을 처음 전했다.

김경준 씨의 전격 체포로 말미암아 국내외 정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자칫 정현준-진승현-이용호 등 굵직굵직한 ‘증권가 게이트’와 관련 ‘김경준 게이트’가 이들 게이트와 연장 선상에서 핵폭탄으로 터져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말로만 떠돌던 ‘이명박 서울시장 연루설’이 슬슬 언론 쪽에서 흘러나오며 ‘김경준 씨’가 본국으로 송환될 경우 여기저기로 불똥이 튈 전망이다. 이번 연방 마샬에 전격 체포된 김경준 씨 사건의 가장 관심거리는 김경준 씨의 투자유치와 관련한 거액의 공금 횡령과 외화도피라는 충격적 사실도 사실이거니와 김 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 변호사와 이명박 씨와의 묘한(?) 관계가 핵심의 의혹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의 거물 정치인이자 현재 서울 시장을 지내고 있는 이명박 시장은 이번 김경준 씨 사건으로 가장 큰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으며 ‘김경준 씨와의 사기 공모’ 등으로 피해자들로부터 피소를 당한 사실이 부각되면서 자칫 정치적 위기에 몰려 있다. 이번 사건의 등장배경인 의 사기극은 코스닥 역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엽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듯 싶다.
김 씨는 주가조작, 유령회사 투자, 외화유출 등 각종비리를 총망라한 사기극을 벌였으며, ‘이명박’이라는 거물 정치인이 주요 메뉴로 등장하는 등 세인들의 이목과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경준 씨는 한국 검찰 뿐만 아니라 ‘위조여권 등 서류조작 혐의’ 등이 드러나 만큼 미국 실정법마저 저촉한 상태라 ‘처벌’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김경준의 누나 에리카 김이 범상치 않은 관계란 사실도 본지가 처음 제기했다.

이명박 씨와 에리카 김 변호사가 처음으로 만난 시점은 지난 1994년 초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나성 한인교회의 신앙간증을 하러 왔던 이명박 씨는 평소 친분이 있었던 한인 L모 씨의 주선으로 또 다른 한인 여성 변호사인 K모 씨와 함께 만나게 되었고, 몇 번 같이 교회도 가고 식사를 하면서 관심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당시 한인 사회에서는 똑똑하고 준수한 미모, 그리고 화려한 학력으로 에리카 김 변호사를 향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었던 터라 두 사람의 만남은 이 때부터 심심치 않은 화제거리가 되었었다. 뒤이어 두 사람에 관한 갖가지 이상한 소문이 나 돌면서 ‘모종의 관계’설 까지 제기 되는 등 지난 94년 당시 나성 장안에 화제가 되었고, 잊을 만 하면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단골소재가 되어 버렸다.

지난 94년 LA방문 시 모 한인 측근의 집에 초대를 받은 이명박 씨는 실제로 에리카 김 변호사와 누가 보더라도 도에 지나친 춤을 추다가 이명박 씨의 부인으로부터 ‘뭐 하는 짓거리냐’는 질타를 당했다는 일화는 알게 모르게 널리 퍼진 이야기다.
당시 에리카 김 변호사는 모 신경내과 의사와 결혼한 유부녀였기에 두 사람에 관한 소문은 걷잡을 수 없이 이상하게 퍼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무튼 다소 억측성 주장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소위 오비이락(烏飛梨落)일까. 이 때부터 에리카 김 변호사는 자주 한국을 왕래하면서 자연스럽게 이명박 씨와 접촉하는 일이 늘었고, 잘 나가는 이 씨의 배려 덕분인지 느닷없이 한국에서 명성을 얻으며 속칭 ‘뜨기’ 시작했던 것이다.

본지 보도 이후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 갔다. 일단 당시 MBC 시사프로그램 ‘신강균의 사실은’이 본지에 취재 협조 요청을 해와, 본지의 도움을 받아 이 사실을 보도했다. 본국 월간지 ‘신동아’ 역시 2004년 7월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다.

3. 이명박과 다스, 의혹의 확산

BBK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연루설 중 또 다른 중요 포인트는 바로 이 전 대통령의 형 이상은 씨의 다스다. 다스는 2007년 당시 공식적으로는 이명박 대통령의 형인 이상은 씨와 처남인 김재정 씨가 운영하는 회사였다. 그러나 다스의 자본금에 이명박의 차명 보유 의혹이 불거졌던 도곡동 땅을 매각해 포스코개발로부터 받은 자금이 들어갔기 때문에 다스의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냐는 의혹이 존재했다. 이 문제의 회사 다스가 2000년 140억 원을 김경준이 운영하는 투자자문회사 BBK에 투자한다. BBK라는 회사의 지분을 사들인 것은 아니고 투자자문사인 BBK에 자금을 운용해달라고 190억 원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이 190억 원이 실제로는 단순한 투자금이 아니고 자금세탁을 통해 EBK와 LKe, 그리고 BBK의 자본금 또는 운영자금으로 쓰였다는 것이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의 또 다른 축이었다.

다스가 김경준 그리고 김씨 부인 이보라에게 LA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도 본지 보도를 통해서 처음 알려진 것이다. 이 보도는 김경준과 다스 사이에 투자 사실을 처음 드러내면서 결국 두 회사 모두 이명박이란 연결고리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냈다.

LA 민사법원에 접수된 기록에 따르면 “당시 경북 경주에 주소지를 둔 대부기공이 김경준 씨의 잘못된 권유로 투자해 1,580만 달러 규모(한화 140억원)의 투자 손실을 보았다며 전액을 배상하라”고 지난해 4월 김 씨와 김 씨의 부인 이보라 씨 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던 것.
문제는 소송을 진행하는 회사 대표가 이명박 서울 시장과 형제 관계라 주목 받고 있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DAS 사 이상은 대표가 과연 ‘동생 이명박 씨의 권유로 투자했는지 아니면 김경준 씨의 권유로 투자했는지’의 양쪽 가능성 중 그 진실에 촉각이 곤두세워지고 있다. 그 사실여부가 이번 민사소송 재판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일단 피해자 측은 ‘BBK 투자자문사’를 운영했던 김경준 씨가 지난 2000년 경주에 위치한 DAS 사를 직접 방문해 “독자적으로 개발한 투자 모델이 있다. 투자가들이 연 35∼40%의 수익을 올리고 있다”며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소장에서 지적하고 있다.

이명박이 이 사건에 깊숙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은 후에 청와대 총무비서관에 임명된 김백준 씨도 연루된 것이 뒷받침해준다.

김백준 씨는 이명박 씨가 서울 시장 선거에 나섰을 당시 선거캠프를 이끌었고, 시장 당선 후 경제특보에 임명하는 등 ‘경제통’인 측근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모두 고려대 상대 출신으로 1년 선후배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이 다른 한 건으로 진행될 ‘e BANK사’가 원고로 등장하는 민사소송이 곧 파일링되면서 그 소송과 관련 김백준 씨가 전면에 나설 것으로 보여진다. 눈길을 끄는 것은 김백준 씨의 처남인 L 씨가 하나은행 고위직에 재직 중이라는 점인데 이번 사기극에 하나은행 또한 5억원에 피해를 입었던 것으로 알려져 이들 처남매부 지간의 모종의 딜이 있을 것이라는 가설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다. 이명박 씨의 대리인 격인 김백준 씨는 이명박 시장이 e-bank를 설립할 당시 친히 영입한 인사로 알려져 이 같은 가설 또한 설득력을 얻고 있으며, 이 같이 얽히고 섥힌 관계를 비쳐볼 때 ‘하나은행의 e BANK투자건’도 깊숙이 간여한 인물로 관측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하나은행 측은 ‘e BANK투자’에 5억원의 손실을 보자 이번 사건의 주인공 김경준 씨를 비롯 이명박, 김백준 씨에게도 피해보상 소송을 제기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경준 씨가 도주하는 바람에 모든 굴레를 이명박 시장이 떠안은 것으로 내다 보인다. 이명박 시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유명세(?)를 탄 S사는 심텍 사로 이미 소송을 제기해 ‘50억원의 투자금을 전액환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4. MB 개입의 증거들

최근 본국에서 BBK 사건이 재점화하게 된 발단이 된 것은 일단 당시 BBK 피해자들이 끊임없이 피해를 호소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공 김경준 씨가 만기 출소해 LA로 돌아와서 여론전을 펼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이 제기한 김경준이 이명박에게 보냈다는 송금 영수증이 공개되면서 언론의 관심이 모아졌다.

젊은 이명박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은 12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검찰 수사기록에 LKe뱅크가 2001년 2월 28일 이명박 후보의 계좌에 49억9천999만5천만 원을 입금한 것으로 돼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BBK 수사팀은 대검찰청 대변인실을 통해 “당시 49억 원의 계좌거래가 있었다는 점이 여러 차례 보도되는 등 수사보고의 계좌 송금기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라며 “당시 수사팀은 관련 계좌를 철저히 추적해 49억 원이 BBK 주식 매입대금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언론에도 밝혔다”고 해명했다. 김경준씨가 BBK 주식거래를 한 것처럼 거짓 이면계약서를 위조했고, 이 사실이 대법원 확정판결로 밝혀져 처벌을 받았다고 수사팀은 설명했다. 수사팀은 이 돈이 이 전 대통령이 보유한 LKe뱅크 주식을 매각한 것으로 당시 수사에서 확인됐다고 덧붙였다.

일단 양측의 주장을 보면 김경협 의원의 말이 거짓이다. 본인은 2001년 2월28일 영수증을 새로운 증거로 내놓은 것처럼 말하지만 본지의 2007년 10월 14일 보도를 보면 이미 이 영수증이 정확하게 공개되어 있다.

실제 본보가 연방법원 자료실에서 입수한 서류에 따르면 한국외환은행의 BBK계좌의 거래 관계에서 지난 2001년 2월 28일자로 4,999,995천원(약50억원)이 이명박 시장 계좌로 지출된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7월 한나라당 예비후보들의 검증 청문회에서 이 50억원이 문제가 되자 이명박 후보 측은 “김경준씨 측이 조작해 짜깁기한 것” 이라고 일축했었다.
그러나 본보의 취재결과 이번 자료가 김 씨측이 제시한 자료가 아니라 이 후보의 형인 이상은씨가 대표로 있는 (주)다스 측이 미국법원에 제출한 법적 자료라는 점에서 이 후보측이 그 동안 주장해온 ‘김씨측의 짜집기’라는 주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셈이었다.

본지가 입수한 미국법원의 (주)다스 관련 서류(사진 참조) 344페이지에 따르면 BBK는 지난 2001년 2월 23일 한국외환은행에 계좌를 개설했다.

개설 당시 잔고는 10원이었으나, 그 해 2월 28일 80억원의 돈이 #010JSD1015168 수표로 입금이 되면서, 그날 50억원(정확한 액수는 4,999,995,000원)은 ‘이명박’에게 지불되었으며, 나머지 30억원(정확한 액수는 2,923,299,992원)은 ‘김경준’에게 지불되어 잔고가 다시 10원이 되었다.

그러자 다시 2001년 3월 2일자에 지난번 2월28일에 입금했던 #010JSD1015168 수표로 20억원(정확한 액수는 2,076,710,008원)이 입금되었으며, 그 날자(3월2일)로 ‘김경준’에게 20억원이 지불되어 잔고가 다시 10원이 됐다. 그로부터 10일후인 3월 12일에 동원증권에서 37억원이 입금되었으나, 그날자로 ‘김경준’에게 37억원이 지불되었으며 잔고는 다시 10원이 됐다. 이렇게 ‘김경준’은 불과 5개월동안에 BBK계좌에서 약 100억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여간 김씨가 귀국하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 BBK의 계좌에서 2001년 2월 28일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지불된 ‘50억원의 실체가 밝혀질 것으로 보여지며 그 결과에 따라 진실 공방전의 종지부가 가려지게 된다. 이런 의혹 제기에 대해 지난 9월 20일 이명박후보 진영의 진수희의원은 이 같은 보도에 대해 ‘전혀 사실이 아니며 시기적으로 일치하지 않다’라고 말하며 ‘BBK가 돈은 보냈다는 2001년 2월에는 이명박후보가 서울시장이 아니었는데도 이명박(시장)이라고 기재한 것은 김경준씨의 조작이다’라고 강하게 반론을 제기했다.

2007년 검찰과 특검도 본지 보도에 나온 서류를 입수해 수사 과정에서 참고를 했다. 하지만 검찰은 다스가 만들어서 냈던 이 서류도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결국 검찰이 이 서류를 가지고 있었다는 말은 팩트지만, 이 서류를 가지고도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5. MB 측의 총력 방어

본인이 LK-E 뱅크 설립에 관여했다는 동영상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결국 이명박 후보에게 면죄부를 줬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최재경 검사나 김홍일 검사 등은 이명박 정부에서 승승장구했다. 압도적인 지지율을 기록하던 대선 후보를 검찰이 제대로 수사할리 만무했다.

마찬가지로 이 사건 무마에 동원된 캠프 인사들도 요직에 앉았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캠프 측에서는 총 3명이 본지 발행인에게 와서 BBK 사건 무마를 시도했다. 그들이 바로 이명박 정부에서 요직에 앉았던 신재민 전 문화부 차관, 김효재 전 정무수석, 박계동 의원(전 국회 사무총장) 등이다. 특히 대선 전 박계동은 “DJ측과 친분이 두터운 미주 LA한인신문인 <선데이저널>의 전 발행인인 연훈씨가 이러한 BBK공작을 주도하고 있다”며 “연훈 씨가 미국으로 도피한 후 미주 한인주간신문 <선데이저널>을 인수해 BBK공작을 주도해왔으며, <선데이저널>을 통해 60여 차례에 걸쳐 이명박 후보를 음해하는 보도를 일삼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결국 박씨는 대선 전 본지 발행인을 만나 사과를 하기도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결국 2007년 대선에서 압도적 표차로 정동영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이 됐다. 대선 직후 이 사건에 대한 특검이 실시됐으나 특검 역시 이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리 없었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했던 인물이 현재 문무일 검찰총장과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다.

세상은 정말로 아이러니한 이유는 그 당시 이명박에게 면죄부를 줬던 당사자들이 다시 이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 과연 결말이 나올지 궁금하기 만하다.

결국 10년동안 권력에 의해 묻혀있었던 BBK진실이 수면위로 어떤 날개를 달고 부상할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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