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20세기 중반 미국에 성혁명을 불러온 전 세계적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가 27일(현지시간)로스앤젤레스의 자택에서 노환으로 타계했다고 플레이보이 엔터프라이즈가 밝혔다. 향년 91세.

 헤프너는 1953년 자신의 자택 부엌에서 플레이보이지를 처음 만들었다. 엄격한 성도덕이 강요되던 당시 사회적 금기를 깨고 첫선을 보인 플레이보이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 전성기 때에는 한 달에 700만 부를 발행하는 등 세계 최대 성인용 남성 잡지로 자리잡으면서 헤프너를 갑부 반열에 오르게 했다. 또 그가 만든 플레이보이의 토끼머리 모양 로고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로고 중 하나가 됐다.

 그의 장남 쿠퍼 헤프너는 이날 성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그리워 할 것"이라며 "아버지는 의사 표현과 성적 자유를 지지한 언론과 문화의 개척자로서 예외적이자 강력한 삶을 살았다"고 말했다.
 많은 논란을 부르며 말썽도 많았던 플레이보이는 누드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았다. 헤프너는 플레이보이를 바탕으로 플레이보이 클럽을 창립, 카지노와 나이트클럽을 아우르는 오락 제국을 건설했다.

 그는 또 자신이 만든 플레이보이 클럽의 수많은 모델들과 데이트를 즐기고 결혼까지 하는 등 쾌락주의적 삶을 누린 것으로도 유명하다. 말년에는 자신의 호화 주택에서 플레이보이 모델들을 동원한 파티를 개최해 언론에 숱하게 거론되기도 했다.

 5년 전인 2012년에는 자신보다 60살이나 더 어린 크리스탈 해리스와 3번째 결혼을 하기도 했다.

헤프너는 1926년 4월9일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엄격한 감리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1953년 미국의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를 내세워 플레이보이를 창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정면으로 도전에 나섰다.

 플레이보이는 과감한 누드 사진들의 게재는 물론 깔끔하고 세련된 기사 작성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 노먼 메일러, 킹슬리 에이미스, 레이 브래드버리 등이 세련된 글로 플레이보이의 성공을 일구었다.

 그는 플레이보이 창간 이후 여성단체들로부터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전락시켰다는 비난을 평생 받았지만 스스로는 성혁명의 대부라고 자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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