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가수 고(故) 김광석의 부인 서해순씨가 남편의 유산인 음반 저작권을 놓고 시댁과의 법정싸움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던 데에는 딸 김서연양의 존재가 결정적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고 30일 뉴시스가 보도했다.

재판부가 김씨 모친 및 친형의 상속권을 인정하지 않고 서씨쪽 손을 들어준 핵심 근거는 김씨의 부친이 사망한 뒤로 저작권을 서연양에게 양도하기로 한 점, 서씨는 이러한 권리를 상속받으려 하지 않은 의사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둔 서씨가 '경황이 없어서' 딸의 죽음을 알리지 못한 게 아니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딸의 사망 사실을 법원은 물론 자신의 변호사에게도 알리지 않았을 것이란 의혹이 제기되기도 한다. 이는 서씨 반대편에서 주장하는 '소송 사기'와 같은 맥락이다.

매체가 지난주 입수한 법원 판결문에 따르면 1심부터 3심까지 '지적재산권(음악저작물) 등 확인' 소송에서 원고 측인 김씨의 모친 이달지씨와 친형 김광복씨는 모두 패소하고 피고인 측인 서씨와 딸 서연양이 내리 승소했다. 

양측 분쟁은 1996년 1월 김광석씨의 사망으로 불거진다. 김광석의 부친 김수영씨는 아들 사망 전 음반에 관한 로얄티를 킹레코드사로부터 지급받은 계약을 근거로 음악저작물에 대한 모든 권리를 양도받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서씨는 남편의 상속인으로서 딸과 함께 저작권을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며 '로얄티 지급 금지 가처분 및 로얄티 청구권 확인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서씨의 소송은 1996년 6월 시아버지와 4개 조항이 담긴 '합의문'을 작성하면서 일단락됐다.

두 사람은 '김광석 다시부르기 Ⅰ·Ⅱ', '김광석 제3집·제4집' 등 4개 음반에 대한 판권 등 모든 권리를 김수영씨가 양도받은 것으로 인정하되, 김씨가 사망하면 기존 권리는 서씨의 딸이자 김씨의 손녀인 서연양에게 양도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아버지 김씨가 2004년 10월 사망한 후 합의는 깨졌다. 김씨가 생전에 4개 음반 저작권을 부인 이씨와 아들 광복씨에게 넘기기로 유언(유증)을 남겼고 이를 근거로 이씨와 광복씨는 서씨를 상대로 '지적재산권(음악저작물) 등 확인'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1심과 항소심, 상고심의 판결을 가른 건 김수영씨가 손녀딸에게 판권 등을 양도한 행위가 서씨의 강압에 의한 '사인증여(死因贈與)'에 해당하는지, 유언과 사인증여 중 어느 쪽이 더 우선인지에 대한 판단이었다. 사인증여란 증여자가 생전에 무상으로 재산의 수여를 약속하고 증여자의 사망으로 인해 그 약속의 효력이 발생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1심 판결문을 살펴보면 사인증여 성립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되는 '합의문'에 대한 재판부의 해석이 드러난다.
 
재판부는 합의문 취지에 대해 "4개 음반에 관한 판권 및 기타 모든 권리에 대한 정당한 권리가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서씨는 이러한 권리에 대해 상속권을 주장하지 않고, 김수영씨의 생전에는 김수영씨에게 권리를 귀속시키고 대신 김씨의 사후에는 이를 서연양에게 귀속시키기로 하는 취지로 해석된다"고 판시했다.

2심 재판부도 판결의 중요한 근거로 합의문을 인용하면서 서씨 대신 서연양의 권리에 무게를 둔 해석을 내놓았다.

"김수영의 생전에는 망인(김수영)에게 권리를 귀속시키되, 대신 망인의 사후에는 이를 피고 김서연에게 귀속시키기로 하고 피고 서해순은 이 음반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기로 서로 양보해 권리귀속관계를 정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다." 수영씨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은 서연양이 우선한다는 내용이 판결문에 명시됐다.

법원이 합의문의 성격에 대해 무상증여가 아닌 계약으로 인정하면서 서연양의 존재를 '인정'한 점도 간과할 수 없다.

판결문에는 서씨와 시아버지간 합의가 대가성을 전제로 한 '계약'에 해당해 무상으로 증여하는 사인증여라고 볼 수 없다면서 시아버지의 계약 당사자로 서연양을 지목했다.  

서씨와 시아버지 간 합의는 사인증여로써 두 개 이상의 유언이 객관적으로 저촉되면 유언자의 최후의 의사를 존중해 전의 유언은 철회하기에 사인증여계약 역시 취소된 것이라는 원고 측 주장도 재판부는 '서연양의 존재'를 이유로 배척했다.

판결문은 "사인증여는 수증자와의 의사의 합치가 있어야 하는 '계약'이라는 점에서 단독행위인 유증과 구별되므로 증여자(김수영)의 사망을 조건으로 하는 권리를 취득한 수증자(김서연)의 이익을 증여자의 일방적 의사(유언)로 해할 수는 없다"며 서연양의 상속권리를 인정했다.  

만약 시아버지 사후에 계약 상대방인 서연양이 사망한 사실이 밝혀졌다면 수증자가 사라진 상황이기 때문에 상속권을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는 대목이다. 서씨가 딸 사망 사실을 알리지 않고 2008년 1월 미국 하와이로 출국한 뒤 사망신고를 위해 귀국한 시점도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2008년 6월이다.

 
서씨의 새로운 음반 제작에 대해 저작인접권을 제한하는 판결도 내려진 바 있다.

서씨가 시아버지와 합의 없이 4개 음반의 일부 음원이 들어간 새로운 음반을 제작한 것에 대해 2심에서는 원고측 저작인접권을 침해한 것으로 인정, 원고측 이씨와 광복씨에게 각각 14분의 3, 14분의 2씩 지분을 보유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 다만 대법원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파기환송하고 서씨의 권리를 인정해주는 상반된 판결을 내려 법조계 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는 사실을 반증했다.

전반적으로 서씨와 시댁 간 '김광석 저작권 소송' 판결문을 살펴보면 재판부는 한결같이 서씨와 시아버지간 합의가 사인증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내고 시댁 측 주장을 기각했다.

서씨의 합의는 사인증여로써 유언에 의해 취소될 수 있다는 원고측 주장은 사인증여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에 옳고 그름을 따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 합의가 서씨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라는 원고 측 주장도 증거가 없어 인정되지 않았다. 시댁인 원고 측이 패소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다.

물론 서씨가 서연양과 함께 공동피고인이라 소송과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는 없다는 반론도 있지만 당시 서연양의 죽음이 제때 외부로 알려졌다면 유기치사 의혹과 함께 상속권이 박탈당할 가능성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있다. 김씨 친가쪽에서는 서연양의 사망을 알았다면 조정이나 합의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서연양의 죽음을 알리는 게 재판에서 서씨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고 해도 이를 두고 서씨가 서연양을 살해했다거나 죽음을 일부러 방치했을 것이라는 추정은 비약이거나 논리적으로 성립이 안 된다는 지적이 많다. 딸이 재판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존재였다면 오히려 서씨에게 범행 동기를 찾기 어렵다. 서연양이 급성폐렴으로 병사하지 않고 누군가에 의해 고의로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을 적어도 판결문에서는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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