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올해 실시한 시사저널 연중기획 ‘2017 누가 한국을 움직이는가’ 전문가 조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위에 문재인 대통령이 뽑혔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1위는 여전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지난해 ‘전체 영향력 인물’ 1위 박 전 대통령의 올해 순위는 공동 21위. 반면 이 부회장은 지난해 ‘전체 영향력’ 5위에서 올해 4위로 오히려 한 계단 상승했다. ‘영향력 있는 경제인 및 경제관료’ 부문에선 변함없이 1위다. 그래서 뭇사람들은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그만큼 삼성그룹이 대한민국을 넘어 글로벌기업으로 성장했다는 뜻이 되지만, 국민들의 시각은 삼성을 정치권력도 어찌할 수 없었던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본다. 과연 삼성의 힘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이러한 가운데 삼성전자의 가파른 실적성장과 주가상승이 이재용 부회장 재판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삼성그룹을 포함한 국내 재벌기업에서 총수일가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29일 세계적 권위의 격월 경영잡지 하버드비지니스리뷰(HBR)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유죄 판결의 배경과 전망을 소개하는 글이 실렸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최한수 연구원이 ‘삼성 이재용의 유죄판결, 한국의 기업이 어떻게 바뀌고 있나’라는 제목의 글. 이 글은 경향신문이 2일 인용 보도하기도 했다.

기고 글에서 최 연구원은 “뇌물, 횡령 등 이 부회장의 5가지 혐의는 서로 관련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결국 삼성 경영권 승계라는 데 초점이 모아진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 부회장의 유죄 판결이 ‘삼성 공화국’의 관전자들을 놀라게 한 것은 더 이상 대마불옥(大馬不獄)은 없다는 신호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삼성에 좋은 것이 나라에도 좋다’고 여기던 국민정서가 달라진 요인으로 2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탄핵시킨 5개월 간의 촛불시위고 또 다른 하나는 삼성과 재벌이 만드는 낙수효과를 회의하는 시각이 점점 커지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 연구원은 2017년 상반기 30대 재벌의 순이익은 한 해 전보다 48% 포인트 늘었지만 이들 기업이 고용한 사람은 같은 기간 0.4% 포인트 줄었다는 통계를 제시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삼성의 이익이 꼭 나라의 이익과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믿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부회장의 판결을 과거 2차례 사면받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때와 비교하며 “문재인 대통령이 유죄 판결을 받은 재벌을 사면하지 않겠다고 공약했고 사법부도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과거 고위 화이트칼라 범죄자에 대한 유죄 판결 252건을 조사한 결과를 거론하며 “과거 법원은 엄격한 판결이 경제에 시스템 리스크를 가져올 지 모른다고 걱정했지만 삼성이 이 부회장이 없는 상황에서도 기록적인 순이익을 달성하면서 법원은 이 부회장을 엄벌에 처하는 걸 꺼릴 이유가 없었다”고 했다.

최 연구원은 “이 부회장이 지난 2월 구속된 이후 놀랍게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30% 포인트 급증했다”는 점을 거론했다. 이런 시장의 반응을 두고 “지배주주가 대상인 형사사건이 시장가치와 관련해 그룹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은 지배주주의 공백으로 불확실성이 커질 수도 있지만 동시에 지배주주가 더 이상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연구원은 삼성이 이 부회장 사건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잘 나가는’ 이유로 “삼성 미래전략실이 해체되면서 삼성전자 등 개별 계열사가 좀 더 자율성을 갖게 됐고 유죄 판결이 이 부회장으로부터 독립성을 갖도록 해줬다”고 썼다.

그는 “불확실성은 상당히 남아 있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삼성과 이 부회장은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점점 ‘삼성공화국’에 작별을 고해야 할 때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봤다. 최 연구원은 “삼성이 큰 고통을 감내해야 하듯 한국인들도 삼성에 좋은 것이 나라에 늘 좋은 것은 아니라는 걸 인정하고 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설령 그 변화가 단기적으로 나라 경제에 손해가 된다 해도 말이다. 이건 도전적인 일이지만 피할 수 없는 것이기도 하다”고 마무리했다.

과연 2라운드에 접어든 이재용 재판, 최 연구원의 지적처럼 유죄판결이 나올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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