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일보 대기자]당신의 명절은 어떠한가? 여전히 전통적인 명절 보내기를 고수하는가, 아니면 다른 것을 얻는가? 이제는 선택의 문제다. 명절은 이미 그렇게 되어버렸다. 명절의 형식과 의미보다 중요한 건 결국 사람이다.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장이 한 언론에 기고한 글 중 한 대목이다.

천안에 사는 직장인 김송이(35·여) 씨는 연달아 잡힌 제사 일정으로 추석 연휴를 꼬박 부엌에 앉아 보내는 중이다. 제사 음식을 만들면서 뒤따라 나오는 청소, 설거지 등 잔일을 하다보면 연휴가 연휴같지 않다는 게 이 씨의 설명이다. 그는 “조상을 섬겨야 한다는 전통을 거스르자는 건 아니지만 요리를 하다보면 ‘언제까지 이걸 해야하나’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면서 “솔직히 말해, 이젠 누구를 위한 과정인지 모르겠다”고 했다.

10일 간의 긴 황금 연휴 중 제사 지낼 때가 가장 많은 ‘추석’이 지나고 5일, 제사에 대한 이 같은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게 새나오고 있다. 특히 김씨와 같이 명분보단 실리를 선호하는 20~30대 사이에선 “간소화할 때도 됐다”는 말도 거리낌없이 나온다.

명절은 전통적 의미도 있지만 가족과 친척이 오랜만에 모인다는 의미도 크다. 하지만 명절 대신 여행을 선택하는 이가 매년 증가한다는 건 생각해볼 문제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명절에 해외로 떠나는 걸까?

김 소장은 이유가 몇 가지 있다고 한다. 명절은 대개 3~4일의 연휴인데, 토요일, 일요일이 앞뒤로 끼어 있을 때 연차휴가를 1~2일 붙이면 금세 9일짜리 휴가가 만들어진다. 한국 직장인의 평균 연차휴가가 15일이다. 하지만 그중 8일 정도만 쓴다. 절반만 쓰고 나머지는 못 쓰는 거다. 그 8일도 한 번에 몰아서 쓰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분명 잘 쉬어야 일도 잘 한다고 알려졌고, 창조와 혁신이 더 중요해진 비즈니스 환경에서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통한 재충전이자 새로운 경험을 쌓고 시야를 넓히는 것은 수많은 CEO가 장려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막상 직장에서 여행을 위해 장기휴가 내는 건 꽤 눈치 보이는 일이다. 그래서 찾아낸 묘수가 바로 명절 연휴. 명절을 희생해 여행을 가는 것이다.

 
직장 상사의 눈치는 보이지만 부모님이나 친척 눈치는 상대적으로 덜 보이는 것이다. 연간 노동시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2위인 한국은 여전히 노동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하위권인 국가다. 휴가에 대한 태도가 여전히 후진적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명절을 가족과 보내는 대신 여행을 떠나게 하는데 일등공신은 한국의 직장문화일지 모른다.

그리고 최근 명절에 대한 의미도 많이 퇴색됐다. 명절의 차례나 제사는 전체의 10% 남짓 되는 양반들만의 유교적 제례였다. 그것이 훗날 전 국민의 전통문화처럼 확산된 것이다. 온 가족이 다 같이 모여 기름진 음식 차려서 차례 지내고 먹고 돌아오는 관성적인 행사가 됐다. 오죽하면 ‘조상 덕 본 사람들은 돈 잘 벌어서 명절 때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 못 본 이들이 교통체증 시달리며 고향 가서 차례음식 마련하다 부부싸움하며 갈등 겪는다’는 자조 섞인 우스갯소리까지 나오겠는가.

특히 2030들은 취업과 진학, 결혼, 출산 등 현실적 고민이 많은 시기지만 명절 때 만난 친척들은 이들에 대한 배려 없는 오지랖으로 충고를 늘어놓기 일쑤다. 그래서 명절을 기피하는 2030이 많기도 하다. 이렇게 명절에 흥미를 잃어가는 이가 늘어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제사라는 문화이자 전통은 큰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한 전문가는 “현재의 상당수 20~30대가 눈에 보이는 실리 없는 제사 문화를 꺼려하는 게 사실”이라며 “지금 상황으로는 이르면 5년, 10년 내에 제사 자체가 사라지거나 극도로 간소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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