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대한민국 문학계의 거목인 고은
[김승혜 기자]"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네. 그리고 나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그 치매의 소실이 나의 내일일 것이네. 나는 무엇이네! 무엇이 나라네! 나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네. 시는 먼저 내 신체이네. 그 다음이 가엾은 혼인지 뭔지일 것이네."

1958년 시인 생활을 시작해 내년이면 시(詩)력 60년인 시인 고은의 삶과 생각, 시 세계를 탐색할 수 있는 책이 출간됐다. 소설가이자 시인 김형수와 고은이 작년봄부터 네 차례에 걸쳐 나눈 대화를 묶은 대담집 '고은 깊은 곳'(아시아) 중 한 대화 내용이다.

고은 시인은 ‘노벨문학상 단골 후보자’다. 한국 문인 중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1순위는 단연 고은 시인일 것이다. 올해도 어김없이 노벨문학상 수상 발표일이 다가오면서 언론과 문단계는 또 다시 고은의 시 세계를 집중 조명하고 있다.

올해 노벨문학상을 발표하는 5일, 언론은 “노벨문학상 후보 고은 시인, 오늘 수상 쾌거 이룰까?” “발표 앞둔 노벨문학상, 고은 시인 이번엔?”등의 제목은 물론이고 “노벨문학상 D-1, 케냐 시옹오·한국 고은 등 ‘경합’” “노벨문학상에 고은 시인 배당 4위…‘하루키 바짝 추격’”등의 경마식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고은 시인이 실제 후보에 올랐는지 여부를 아는 언론사는 없다. 이날 <미디어오늘>은 "스웨덴 한림원은 후보자를 공개하지 않는다. 각국 문학단체의 추천 후보 숫자만 공개한다. 수상자도 전화 통보 전까지 비밀이 유지된다. ‘4위’는 영국의 도박사이트 ‘래드브록스’에서의 순위다."라고 전했다.

그러나 고은은 자신의 60년 시세계를 한 마디로 단정짓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말한다.

그는 “시인생활 60년을 내일모레로 앞두고 있는데 내 시의 여생도 무어라고 정의할 수 없는 것처럼 내 시의 몇십 년 역정을 한 마디로 단정하는 일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네. 누구는 무어라 하고 누구는 무어라 할 것이네. 그것들의 합산으로 하나의 애매몽롱한 공약수는 가정할 수 있을 터이지.”

그 삶과 시의 깊은 곳을 김형수 시인과 함께 들여다봤다.

식민지와 전쟁을 겪고 원점에서 다시 시작되는 고은의 삶과 시는 자살 시도, 출가, 민주화운동, 한국대표시인, 그리고 '삶이 곧 시'라는 깨달음에 이른다.

고은 시인은 "언어와 문학이 겪는 위기와 시련에 대해 앞으로도 몇 번의 시련을 받을 것이지만 실컷 희미해지다가 다시 소생할 것"이라고 말한다.

김형수 시인은 "고은 시가 금세기 문명이 새 길을 찾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 시대의 상식 속에 '시인 고은'이 있습니다. 마치 천 개의 장에 비친 달처럼 선생님은 많은 기억들 속에 국민시인의 모습으로, 혹은 저항시인, 또 파계승의 모습으로 들어 있지만, 그 모두에 관통되는 모습 또한 있을 게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강에 비친 달이 아니라 원본으로서의 '달'을 보고 싶어 하는 것입니다."(김형수)

"나는 나의 말이고 나의 글이네. 그리고 나의 말과 글을 잃어버리는 그 치매의 소실이 나의 내일일 것이네. 나는 무엇이네! 무엇이 나라네! 나에게서 시를 빼앗으면 나는 뱀 허물이고 거미줄에 걸린 죽은 풍뎅이 껍질이지. 내 묘비에는 내 이름 대신 '시'라는 한 자만 새겨질 것이네. 시는 먼저 내 신체이네. 그 다음이 가엾은 혼인지 뭔지일 것이네."(고은)

 "저는 골수의 문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사회과학의 식민지가 되기를 자처하듯이 조급한 관념적인 흐름에 말려 들어간 한 사람으로서 여러 가지 돌아보아지는 일들이 많습니다. 그 미숙함은 지금에 와서 많이 부끄럽지만 한편으로는 영원히 놓치지 말아야 할 치열성의 한 발로였던 측면도 버릴 수 없습니다. 이제 이 단체의 미래를 이끌어갈 새로운 주역들에게도 한 말씀 해주셨으면 합니다."(김형수)
 
 "없네. 지금은 21세기라는 것, 이전보다 훨씬 복잡사회라는 것들을 깨달을수록 이 시대의 아이는 이 시대의 울음을 울어야 한다고 생각해. 단 하나를 지적하고 싶네. 언어에의 책임 말이네. 이게 무척 어렵다네. 언어는 늘 위험하다네."(고은) -'한국작가회의 40주년 회고담' 중에서-

김형수 시인은 "이 대담이 한낱 명사의 한담(閑談)이 아니라 고은 특유의 현란한 상상력과 아포리즘이 가득한 '말의 춤'을 선보이는 구변(口辯)문학의 향연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란다"고 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오늘 오후 8시(한국시간) 발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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