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법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은 자유의 몸으로 풀려났을 때 증거인멸 가능성과 재판 지연 등으로 인해 현재 진행중인 재판이 원활하게 돌아가지 않을 개연성이 크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또한 향후 심리가 상당히 많이 남은 상황에서 재판에 나올 증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 구속을 유지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이날 박 전 대통령에게 추가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형사소송법에는 '피고인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염려가 있는 때에 구속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박 전 대통령이 석방될 경우 결정적인 증거를 없애거나, 부하로 거느렸던 주요 증인들에 대해 압력과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충분하다는 뜻이다. 지난 3월 법원이 박 전 대통령에게 구속영장을 발부할 때도 ‘증거인멸 염려’가 구속 사유에 포함됐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은 17일부터 새로운 영장이 적용돼 오는 2018년 4월17일 0시까지 구속 상태가 유지된다. 1심의 최대 구속기간은 6개월이다.

법원의 이번 결정은 박 전 대통령이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을 경우 향후 불출석할 수 있고 증인 회유 가능성이 있다는 검찰 측 주장을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공소사실이 18가지로 방대하고 아직 심리해야 할 부분이 많은 상황에서 전직 대통령으로서 향후 재판에 소환될 증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으로 분석된다.

박 전 대통령이 풀려나면 증인들이 증언을 번복하거나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검찰의 우려다. 박근혜정부 당시 재직했던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 등이 재판의 주요 증인인 만큼 증언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해석이다.

실제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린 정호성(48)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은 지난 9월 증인으로 나와 "오랫동안 모신 대통령께서 재판을 받는 참담한 자리"라면서 "심적 고통을 감당할 수 없다"며 증언 거부권을 행사했다.

박 전 대통령 재판은 삼성 뇌물수수 혐의를 시작으로 롯데·SK그룹 제3자뇌물 관련 혐의 등을 심리하고 현재 이른바 '블랙리스트'로 불리는 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및 인사조치 등과 관련해 진행하고 있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 혐의 심리는 아직 본격 시작도 하지 않았고, 이미 진행된 다른 혐의 역시 증인 신문이 모두 완료되지 않았다.

현재 남아 있는 증인들만 300여명으로 파악된다. 변호인이 이중 검찰 진술조서를 동의해 증인이 일부 철회돼도 그 수는 상당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미 11월 중순까지 신문이 예정돼 있다. 검찰이 95명의 진술조서 증거 신청을 철회했지만, 지난 6개월여간 주 4회 재판을 진행한 결과 이날까지 75명의 증인을 신문했다.

박 전 대통령이 건강 등의 이유로 재판에 나오지 않을 경우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점도 감안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박 전 대통령은 지난 7월 발가락 부상을 호소하며 세차례 재판에 불출석한 바 있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왼발 네번째 발가락을 문지방에 부딪쳐 통증이 심하다며 재판에 나오지 않았고, 재판부는 "불출석 사유로 보기 부족하다"며 출석을 요구했다.

박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 탄핵심판 사건에도 나가지 않았고,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 등 다른 국정농단 사건에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법원의 구인장 발부에도 끝내 거부해 신문이 불발됐다.

검찰은 "헌법과 법률을 존중하지 않는 박 전 대통령의 태도에 비춰 재판에 불출석할 가능성이 있어 정상적인 재판 진행을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국정농단 사건의 피고인들과의 형평성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과 공소사실이 같은 피고인들은 자신의 형사재판은 마무리됐지만 박 전 대통령 사건과 함께 결론을 내기 위해 선고가 연기되며 추가 영장이 발부됐다.

차은택(48)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김종(56) 전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 정 전 비서관은 다른 혐의로 추가 기소돼 구속영장이 새롭게 발부됐다. 다만 장시호(38)씨는 국정농단 사건으로 구속된 피고인 중 기간이 만료돼 처음으로 지난 6월 석방됐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불구속 상태가 되면 전직 대통령으로서 간접적으로나 우회적으로 향후 증인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며 "사건의 중요성과 사회적 혼란 등을 고려해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면 추가 영장을 발부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1심 선고 연내 가능성 커

한편 박근혜 전 대통령이 계속 구속 상태에 놓이게 되면서 1심 재판이 연말 안에 마무리될 가능성이 커졌다.

박 전 대통령은 당초 오는 16일 자정 구속기간이 만료돼 17일 석방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새로운 구속 영장을 발부하면서 박 전 대통령은 계속 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는다.

추가 구속 영장 기한은 기존 영장과 같이 2개월로, 2회에 한해 2개월씩 연장할 수 있다. 이에 박 전 대통령은 최대 다음해 4월16일 자정까지 구치소 생활을 이어가게 됐다.

이에 따라 검찰은 당초 계획한 대로 재판을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검찰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영장을 추가로 요청하면서, 석방시 재판이 장기화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 심판에 단 한 번도 출석하지 않았고, 피고인 출석 의무가 있는 형사재판에서도 건강상의 이유로 수차례 불출석한 바 있기 때문이다.

또 박 전 대통령이 다른 국정농단 재판에서 증인으로 소환된 경우에도 수차례 구인장까지 발부됐지만 끝내 불응한 점을 언급하며, 박 전 대통령이 자유의 몸이 될 경우 재판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러나 법원이 구속 영장이 추가로 발부해 종전처럼 주 3~4회 재판이 열릴 경우, 검찰은 올해 안에 1심 재판을 마무리하고자 총력을 기울일 계획이다.

현재 검찰이 신청한 증인은 30명가량이다. 한 주에 약 6명씩 증인을 부른다면 다음달 중순까지 검찰측 신청 증인 신문을 마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에 오는 12월 초까지 변호인 측이 신청한 증인 신문과 양측 프레젠테이션(PT), 피고인 신문 등을 마치면 연말 내 선고도 가능하다는 전망이다.

검찰 관계자는 "증인 신문을 최대한 빨리 마치려고 노력 중이다"라며 "다만 변호인 측에서 신청하는 증인에 따라 재판 마무리 시기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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