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 박근혜 대통령 5촌 살인사건은 지난 2011년 9월에 발생한 고 박용수·박용철씨의 사망사건. 애초 경찰 수사결과, 이 사건은 두 사촌간의 돈 문제로 살인이 벌어졌고 살인범은 자살한 것으로 정리됐다.

이 사건은 2011년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1년 9월 6일 오전 5시30분쯤 북한산국립공원 수유분소 옆에서 한 남자가 잔인하게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얼굴과 배에서 피가 흘렀고, 창자가 도로에 쏟아져 있었다. 후에 밝혀진 이 남성의 정체는 박용철씨라는 이름의 49세 남성이었다. 사건 현장에서 3㎞ 정도 떨어진 북한산 용암문 옆. 나뭇가지에 또 다른 사내가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사내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숨진 박용철씨의 차 열쇠와 유서 등이 나왔다. 바지와 끼고 있던 장갑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박용철씨의 혈흔이었다. 시체 옆에 놓인 가방에는 약병, 회칼, 손전등, 우편물 등이 담겨 있었다.

이 사내의 이름은 박용수(당시 51세). 경찰은 박용수씨가 박용철씨를 죽인 후 자살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고 수사에 들어갔다. 박용철 씨와 박용수씨는 사촌지간이었다. 이 사건이 충격적이었던 것은 두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둘째 형 박무희 씨의 손자 즉, 당시 여당 유력 대선 주자였던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는 오촌 관계였다.

하지만 이 사건에 대해 강력하게 의문을 표시했던 인물이 있었는데 박근령 전 육영재단 이사장의 남편인 신동욱 씨였다. 당시 신 씨는 박용철 씨가 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 남매 간 송사의 핵심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하며 단순 자살 사건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박용철 씨는 2007년 벌어진 육영재단 폭력 강탈 사건으로 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바 있다.

또 신 씨가 주장하는 중국 칭다오 납치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인물이기도 했다. 신 씨에 따르면 박용철 씨는 2010년 “박지만이 중국에서 신동욱을 죽이라고 했고 녹취록을 가지고 있다”라는 말을 했다. 박 씨의 증언을 바탕으로 박지만 회장을 고소했던 신씨는, 오히려 무고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구속되는 신세가 됐다.

신 씨는 2011년 9월26일 재판에서 자기 쪽 증인으로 박용철씨를 신청해놓았던 터라 그의 사망 시점이 석연치 않다고 주장한다. 신 씨는 이와 관련 “나에게 증언하기로 하고 바로 죽었다. 용철씨의 죽음은 용철씨나 나 두 사람 모두 걱정하던 바였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신씨측 변호인이었던 법무법인 동래의 조성래 변호사는 “신씨에게 용철씨는 살인 교사 건과 관련해 무고 혐의를 벗겨줄 유일한 증인이었다. 지난 9월 말 열린 재판에서 신씨와 용철씨가 주고받은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는데, 녹취 내용을 증명하기 위해서 용철씨를 증인으로 요청해 증인 신문을 준비 중이었다. 가장 중요한 증인이 사망했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매우 난감한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용철씨가 살해된 이번 사건에 대해 신씨측은 계속 강한 의혹을 제기했었다. 용수씨가 용철씨를 살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신씨측의 주장이었다. 오히려 이런 의혹에 대해 강북경찰서 측은 “(그쪽에서) 궁금한 게 있으면 우리에게 공식적으로 요청했을 텐데 그런 적이 없다.

박용수씨는 육영재단과 아무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서 사주를 받아 살인을 저지를 이유가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오히려 경찰이 나서서 사건을 변호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박 씨 피살 사건 이후, 조성래 변호사는 신 교수의 재판 내용에 살인 사건도 포함해달라고 요청했지만 재판부는 “본 재판과 관련성이 없다”라며 거절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몰라도 박 씨는 공판출석을 앞두고 살해됐고, 결국 신 씨의 주장을 입증해줄만한 인물은 사라졌다.

신 씨는 명예훼손으로 인해 실형을 선고받았고, 오는 대선 전까지는 출소가 불가능해졌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가장 이득을 본 사람은 유력 대선후보였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타살 흔적 발견됐으나 자살로 결론

경찰 수사 결과에도 불구하고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는 한 둘이 아니었다. 국과수 조사 결과 사건 현장에서 수거된 한 담배꽁초에서는 박용철ㆍ박용수가 아닌 다른 남성 DNA가 검출되기도 했다. 박용철씨의 휴대전화기도 사라졌다. 사라진 박씨의 휴대전화에 관심이 모이는 까닭은 박씨의 발언 때문이다.

박씨는 2010년 9월1일 재판에서 자신의 휴대전화에 사건 관련 녹음파일이 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이런 모든 정황은 타살을 의심케 했고, 그 배후로 박지만 EG회장이 거론됐다. 박 회장은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한 일부 기자들을 고소했다. 하지만 고소당한 기자들은 모두 무죄가 났다. 그렇다고 해서 박지만 회장이 이를 사주했다는 증거도 드러나지 않았다.

사건을 수사한 서울 강북경찰서는 지난해 10월 ‘박용수씨의 원한에 의한 계획된 범행’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박용수씨가 △범행 도구를 사건 한 달 전에 사두고 미리 테이프를 감아놓는 등 범행을 준비한 점 △유서를 미리 작성해둔 점 △범행 당일 자신보다 덩치가 큰 박용철씨를 만취시키고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점(부검 결과 박용철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19%, 박용수씨는 0.05%였다) △평상시 주변 사람들에게 박용철씨를 술 먹고 혼내주겠다는 말을 했던 점 등을 근거로 들었다. 사건을 담당했던 강북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사건 당사자가 모두 숨져 추정할 수밖에 없지만, 박용수씨가 10년 전 이혼하고 혼자 살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졌다.

아파트를 팔고, 원룸에서 살았다. 죽기 전에는 여관에서 생활했는데, 그 원인이 박용철씨에게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돈을 빌려가 놓고 안 돌려주고 후배들이 보는 앞에서 무시했다는 주변 사람 증언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 주진우 시사인 기자가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사건과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으로 들어서며 취재진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주진우 기자 "박근혜 5촌 살인사건 현장에 제3자 있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5촌 살인사건' 관련 의혹을 제기한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16일 참고인 신분으로 경찰에 출석했다.

주 기자는 이날 오후 1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서울청사에 도착해 기자들과 만나 "이번 사건은 살인을 조직적으로 저지르고 교사한 사건"이라며 "이 살인을 은폐한 것은 공권력"이라고 말했다.

검은색 후드티와 운동화를 신고 나타난 주 기자는 "설사약을 먹고 자살하거나 땅에 묻지 말고 바다에 화장해달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는 것을 본 적이 있냐"고 반문하며 "(박 전 대통령의 5촌 조카인) 박용수씨나 박용철씨 모두 자살하거나 죽을 이유가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어 그는 "박용철씨 살해 현장에 제3자 있었고 다른 목격자도 있었다. 경찰이 수사를 하지도 않고 자살사건이라고 종결했다"며 "경찰이 일차적으로 이 사건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주 기자는 의혹을 뒷받침할만한 새로운 자료가 있냐는 질문에 "당시 수사에서도 증거와 증인이 많았다"며 "경찰이 더 많은 자료를 갖고 있겠지만 추가적인 증인과 증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경찰은 살인사건을 수사하지 않고 저에 대한 구속영장만 신청했다"며 "누가 경찰 수사의 물꼬를 돌려 저를 향하게 했는지에 대한 부분도 수사가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당 사건은 경찰이 수사도 못할만큼 큰 압력이 밀고 들어와서 진실을 덮어버렸다"며 "지금이라고 재수사 기회를 얻어 진실이 밝혀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 기자는 2012년 12월초 '박근혜 후보 5촌 조카 살인사건의 새로운 의혹들' 제목의 기사를 통해 해당 사건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을 제기한 인물이다.

그는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이명박 가카. 월요일 오후는 당신 생각을 잠시 꺼두려 한다. ‬5촌 살인사건 관련해 조사받으러 경찰에 간다"며 "박근혜 가카. 누가 살인자고, 누가 살인을 지시했는지, 누가 수사를 막았는지 꼭 밝혀야겠다. 살인사건으로 이득을 본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라고 글을 남겼다.

경찰은 주 기자를 상대로 그동안의 취재 기록과 숨진 박용철씨 차남 박모씨의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의혹 제기 경위를 조사할 예정이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