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 정부 비판 성향의 문화예술인 및 단체의 지원을 배제한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들의 항소심 재판이 17일 본격화했다.

이날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판사 조영철)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재판에 참석한 '왕실장'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1심 때보다 훨씬 노쇠한 모습을 보였다.

옅은 하늘색 환자복 차림으로 법정에 온 김 전 실장은 재판부가 나이, 주소 등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절차를 진행하자 작은 목소리로 이름과 생년월일 등을 말했다.

특히 주소가 바뀐 것과 관련해서는 "제가 여기(구치소)에 있는 동안 내자(內子·아내를 이르는 말)가 노인 요양시설로 주소를 옮겼다"라고 힘없이 말하며 "재판부에도 이를 알린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김 전 실장은 곧바로 자리에 앉으려 했으나, 재판부는 "직업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김 전 실장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직업은 없다"라고 답했다.

김 전 실장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눈을 감고만 있었다. 1심 때와 달리 변호인에게 귓속말을 건네지는 않았다.

반면 박근혜(65) 전 대통령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朴의 여자' 조윤선(51)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구속돼 있었던 1심 때보다는 혈색이 좋아진 모습이었다.

조 전 장관은 이날 오전 1심에서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석방된 후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법원에 온 조 전 장관은 대체로 수수한 모습이었다.

조 전 장관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항소심 재판에도 끝까지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짧게 말한 뒤 서둘러 법정에 왔다. 법정에 앉아서는 변호인을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인사를 건넬 뿐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조 전 장관은 재판이 열리는 중에도 인정신문 절차 외에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책상 앞에 놓인 서류를 쳐다보거나, 재판부의 설명을 귀 기울여 들을 뿐이었다.

한편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항소심 첫 공판에서 "1심이 일부 혐의에 대해 무죄로 판단한 것은 법리를 오해하고, 사실을 오인한 위법이 있다"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특검팀은 1심이 조 전 장관의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 혐의를 무죄로 판결한 것과 관련해 "1심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과 정관주 전 문체부 1차관의 혐의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그들의 상사인 조 전 장관의 공모 관계는 부정했다"라며 "블랙리스트는 장기간에 걸쳐 조직적으로 이뤄진 범행으로 이같은 1심 판단은 수긍할 수 없다"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1심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순실(61)씨가 블랙리스트 사건의 공범이 아니라고 본 것과 관련해서도 "블랙리스트는 박 전 대통령을 조롱·비하하는 정권 비판적 인사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목적으로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함께 고안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이날 특검팀과 변호인의 구체적인 항소이유를 들은 뒤 향후 재판 진행 계획을 짤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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