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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이야기】옛날 '왕들의 성생활' 어땠을까?
김승혜 기자  |  shki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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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1.11  16:4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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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황후화’ 스틸컷 캡쳐
[김승혜 기자]옛날 왕들의 성생활은 어땠을까?

동양에서 군주제가 유지되던 시절 왕이나 황제의 인간적 욕망을 다루는 문제는 중요했다. 특히 색욕은 나라의 존망이 직결된 문제였다. 수많은 신하는 왕의 색욕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가에 골머리를 앓았다. 조선시대 왕의 침실 역시 국가 차원에서 관리됐다.

과거 우리나라의 왕이나 중국의 황제들은 절대권력자였다. 이들은 좋은 집에서 살며 진수성찬을 즐기고 예쁜 후궁들을 거느렸다. 왕이나 황제들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인 식욕과 색욕 그리고 권력욕을 무한히 행사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사실 몇몇 왕이나 황제의 색욕과 관련한 이야기는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다. 예컨대 진시황의 경우 아방궁에 모은 후궁이 1만 명을 넘었다고 하며 양귀비와의 염문으로 유명한 당 현종 같은 황제는 후궁이 4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최대의 폭군으로 이름 높은 연산군 때 궁궐 기생은 1만 명을 헤아렸다고도 한다.

 안타깝게도(?) 현재 왕과 여인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동침을 치뤘는지 알려주는 사료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왕들의 잠자리 목적의 제 1순위는 ‘왕자 생산’에 있었다. 그래서 숙직 상궁들은 왕이 성관계 도중 과하게 흥분을 했을 경우 “옥체를 생각하시어 그만 하십시오!”라고 소리치며 왕을 제지하곤 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왕들의 성생활'이란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왕의 성생활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무엇보다 왕의 침실을 지상의 황극이라는 생각에서 왕 혼자만 사용하게 함으로써 왕비나 후궁과의 합방이 문제되었다. 즉, 언제 합방할지, 합방은 어떤 식으로 할지 등이 중요한 문제였다. 이것은 결국 조선시대 왕의 성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에 관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조선시대 왕이 왕비나 후궁과 어떻게 합방했는지를 알려면 중국의 ‘주례’라는 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 책은 조선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이 조선 체제의 기본 모델로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주례’에는 황제의 본부인인 황후와 함께 후궁들이 등장하는데, 조선시대 왕도 본부인인 왕비와 함께 후궁이 있었다. ‘주례’에는 중국 황제의 경우 황후 1명을 위시하여 부인(夫人) 3명, 빈(嬪) 9명, 세부(世婦) 27명, 여어(女御) 81명 등 120명의 후궁이 황제의 합방 상대자로 나온다. 황제는 이들 121명의 여성과 어떤 방식으로 합방했을까.

‘여러 비빈이 황제와 합방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다. 황후나 비빈은 달의 형상을 본받는다. 그러므로 달이 점차 차듯 비빈들이 황제와 합방하는 것은 아래 비빈이 먼저이고 위의 비빈이 뒤다. 여어 81명은 매일 밤 9명씩 9일 밤을 황제와 합방한다. 세부 27명은 매일 밤 9명씩 3일 밤을 황제와 합방한다. 빈 9명은 9명이 1일 밤을 황제와 합방한다. 부인 3명은 3명이 1일 밤을 황제와 합방한다. 황후는 혼자 1일 밤을 황제와 합방한다. 이렇게 하면 달이 보름 만에 다 차듯 한 바퀴를 돌게 된다.’ (‘주례’)

이것은 ‘주례’ 주석의 대가로 알려진 정현(鄭玄)이 주석한 내용이다. 이에 의하면 중국 황제는 황후를 제외한 후궁들과는 집단적으로 합방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여어·세부·빈과는 9명씩 합방하고 부인과는 3명씩 합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의 황제는 후궁들과의 집단 합방뿐만 아니라 환관들과의 동성애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는 그만큼 중국의 성문화가 개방적이었음을 보여준다.

이에 비해 조선의 왕은 후궁들과 집단 합방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주례’에서는 황제가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밤 황후나 후궁들과 합방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조선의 왕은 매일 밤 합방하지도 않았다. 이것은 중국에 비해 조선시대의 성 윤리가 매우 엄격하였다는 의미다. 또한 ‘주례’에서는 황후나 후궁들이 황제의 침실로 와서 합방하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조선시대 왕은 꼭 그런 것은 아니었다. 예컨대 왕이 왕비나 후궁의 침실로 찾아가 합방하는 것이 일반적 상황이었다. 이는 아마도 조선시대 왕과 후궁 사이에 집단 합방이 없었기에 그랬을 것으로 짐작된다. 왕이 어느 후궁에게 갈지는 순전히 왕의 마음에 달려 있었다.

그렇다면 조선보다 더욱 강력한 권력을 누렸던 중국은 어땠을까?

진시황은 약 1만 명에 달하는 후궁을 거느렸고, 당나라 현종이 거느렸던 후궁과 궁녀를 합치면 무려 4만 명에 달한다는 사료가 있다고 한다. 또한 중국의 경우는 황제의 성생활에 대한 규범이 ‘주례’라는 책에 규정되어 있다.

중국은 왕비나 후궁이 왕의 침실로 찾아와 합방하는 일도 없지 않았다. 이런 경우는 보통 왕비나 후궁에게 아들이 들어설 것 같은 길일에 제조상궁이 왕에게 합방을 권유한다고 한다. 또는 왕이 미리 점찍어둔 궁녀나 기생을 왕의 침실로 은밀히 불러 합방하는 일도 있었다. 왕의 부름을 받은 궁녀나 기생은 새 옷에 분단장을 하고 왕의 침실로 들어간다고 한다.

한편 이 자료에선 황제가 하루도 쉬지 않고 부인들과 합방을 하도록 되어 있는데, 규정에 담겨 있는 황제의 잠자리 일정을 보니 혀를 내두르게 된다. 한마디로 '만수무강'하기 힘든 노동이었다고 말해도 될 듯 싶다.

•01-09일: 81명의 어처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10-12일: 27명의 세부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13일: 구빈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4일: 삼부인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5일: 황후 혼자서 황제와 동침
•16일: 황후 혼자서 황제와 동침
•17일: 삼부인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8일: 귀빈들이 돌아가며 황제와 동침
•19-21일: 27명의 세부들이 매일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22-30일: 81명의 어처들이 매일 밤 9명씩 1개조가 되어 합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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