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국정농단이라 표현하지 말라."

'비선실세' 최순실씨는 한마디로 안하무인이었다.

최씨는 1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1부(부장판사 조의연)의 심리로 진행된 고영태씨의 9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국정농단 사태의 책임을 고씨와 그 주변 인사들에 떠넘겼다. 또 최씨는 재판 내내 예민하게 반응하며 큰 목소리로 자신을 변호하기 바빴다.

재판부가 "물어보는 내용을 끝까지 듣고 답하라", "잘 생각하고 말씀하라"고 그를 제지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고씨의 변호인은 우선 "증인은 여태까지 추천한 사람들에게 선물이나 대가를 받은 적이 없다고 했는데, 김모씨(인천본부세관장) 말고 누구를 추천했느냐"고 최씨에게 물었다.

최씨는 "그런 건 말씀드릴 수 없다"고 말을 잘랐고, 변호인은 "증언을 거부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에 최씨는 "저는 공소사실에 관해서만 얘기하려고 나왔다. 의혹 제기를 하지 말라"고 불쾌해 했다.

뇌물수수 등 다른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최씨는 자기방어에 급급했다. 그는 "세관장 김씨말고 청와대에 누구를 추천했나"라는 고씨의 변호인단인 김용민 변호사의 질문에 "말씀드릴 수 없다. 저는 공소사실에 관해서만 얘기하러 나왔다"며 "의혹 제기를 하지 말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씨 변호인이 "김씨를 인천본부세관장에 추천한 게 혹시 딸 정유라의 말 관련해 도움받으려 한 건 아니냐"고 묻자 "또 시작이시네. 말도 안 된다. 이런 거 관련해서는 증언하기 싫다. 딸 부분은 묻지 말라"고 따졌다.

고씨 변호인은 최씨가 지난해 9월 독일에 있으면서 류상영 전 더블루K 부장과 주고받은 문자 메시지들을 제시하며 "류씨가 국정농단과 관련해 진행되는 일들을 증인에게 보고하는 모양새인데 맞느냐"고도 물었다.

그러자 최씨는 "국정농단이라고 표현하지 말라. 변호사님이 고씨를 얼마나 잘 아는지 모르겠지만 국정농단이라고 말하지 말라. 저도 당한 사람"이라고 화를 냈다.

최씨는 고씨 변호인이 "표현을 달리할 게 없으니 그렇게 이해하시라"고 하자 "그렇게 이해하기 싫다"고 맞받았다.

고씨 변호인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25일 최씨에게 연설문을 유출한 사실을 인정하며 대국민 사과를 한 즈음 최씨와 류씨가 수차례 통화한 사실도 거론하며 "대책을 논의하려고 통화한 게 아니냐"고 물었다.

최씨는 이에 "류상영이 그런 '급'이 됩니까. 대국민 사과에 관여할 '급'이 되느냐고요"라고 비웃은 뒤 "재판장님, 이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으니 광범위한 정치적 질문은 안 받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씨 변호인이 "어쨌든 중요한 순간에 류씨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류씨를 특별히 신뢰했나"라고 묻자 최씨는 "배신자들이 하도 많아서 저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변호인이 비슷한 취지의 질문을 계속 던지자 "건강이 좋지 않으니 한 번에 물어보라"고 짜증을 내기도 했다.

고씨 변호인 측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자 검찰도 나서 "최씨 말도 일리 있는 부분이 있다. 변호인 질문이 주신문의 범위를 상당히 벗어난다"고 최씨를 두둔했다.

이날 최씨는 박 전 대통령과의 인연을 묻는 변호인 질문엔 "개인적인 문제라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이 사건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 진술을 거부한다"고 입을 닫았다.

변호인단뿐 아니라 검사에게도 껄렁한 태도를 보였다. 조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는지 등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절차에도 최씨는 "마이크가 잘 안 들린다",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히겠다"며 재판 절차와 관계없는 말을 했다.

최씨는 두 시간 동안 이어진 증인신문이 마무리되자 "한마디 하겠다"며 발언 기회를 얻었다. 그는 "딸의 출전과 체류 목적으로 독일에 갔는데 제가 없는 한 달 사이에 고영태 등이 기획해 제가 국정농단으로 몰렸다"며 "제가 몸이 아프고, 선고를 앞두고 있는 데도 증언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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