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정치판에는 '의리맨'이 존재한다. 많은 이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그림자라고 불렸던 장세동 전 국가안전기획부장을 먼저 손꼽는다. 장세동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르면 3분 안에 출두하고 메모지와 펜을 휴대하며 항상 메모를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역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어도 어른이 구속되는 것은 막겠다"며 전 전 대통령과의 의리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전두환 정권이 끝나고 노태우 정권 등장 이후 모두들 전두환전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을 때도 끝까지 의리를 지켰다.

고  김동영 전 정무장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대통령에 오르는 걸 보지 못하고 지난 1991년 8월 19일 숙환인 암으로 오랜 투병 끝에 55세를 일기로 생을 마쳤지만 언론은 그를 ‘의리와 뚝심의 정치인’으로 애도했다.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과 정치 노선을 함께하며 유신과 제5공화국 초기의 탄압과 회유에 굴하지 않았다. 지난 1984년 정치규제에서 풀린 이후 김 전 대통령의 오른팔로 정치의 전면(前面)에서 활약했다. 특히 지난 1988년 11월 자신의 병이 말기암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를 내색하지 않고 김 전 대통령을 도와 5공(共) 청산과 3당 통합 작업을 마무리했다.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입이 무거웠던 권노갑 국민의당 상임고문은  당내 불만 세력을 다독이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권노갑  상임고문은 "자서전이나 인터뷰를 통해 알려진 그의 작은 바람은 훗날 자신의 묘비에 "김대중 대통령의 영원한 비서실장 권노갑르로만 새겨달라" 했을 정도로 충성심을 대내외에 선언한 인물이다.

그렇다면 왜 박근혜 전 대통령 옆에는 '의리맨'이 없는 것일까.

박근혜(65) 전 대통령 재판이 27일 오전 10시부터 열린다. 박 전 대통령이 예상대로 나오지 않으면 다시 연기되거나 궐석재판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하루 앞으로 다가온 이번 박 전 대통령 재판은 89차 공판기일로 42일 만에 잡혔다.

박 전 대통령은 그 42일 동안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혹여 사람이 싫은 것은 아닐까?

26일 월간조선은 최순실 게이트’ 파문 이후 측근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한 말은 "모른다" 였다. 박 전 대통령과의 관계에서 선긋기를 시도한 것이라고 전했다.

매체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의 오랜 측근인 이른바 '문고리 3인방(정호성 전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안봉근 전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재만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도 선긋기를 시도했다. 특히 안봉근, 이재만 전 비서관은 국가정보원 특별활동비(특활비)를 받은 혐의로 검찰에 체포, 구속된 상태서 조사를 받으면서 박 전 대통령의 지시로 특활비를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들은 박 대통령이 지난 1998년 정계 입문 때부터 줄곧 의원실 보좌관으로 보필해 온 최측근들이다.

많은 사람은 이들이 검찰에서 박 전 대통령 이름을 댄 것을 손가락질한다. 법 집행 차원에서 보면 검찰 수사에 협조한 것일 수도 있지만 20년 가까이 모신 ‘주군’에게 모든 책임을 덮어씌우는 듯한 진술을 한 것을 두고 정치, 더 나아가 사람 사는 게 도대체 뭐냐는 지적이 나오는 것이다.

안봉근, 이재만 이 두 전직 비서관은 탄핵 심판 당시 증언을 부탁했지만 재판에 나타나지도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채명성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 주변 인물들에게 도움을 받았냐는 질문에 "그게 참 세상 인심이 무섭더라. 문고리 측근들에게 변호인들이 증언 좀 해달라고 부탁했는데 끝내 나타나지 않더라. 정치권도 마찬가지고"라며 씁쓸해했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이었던 도태우 변호사와 인터뷰를 하면서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혹시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등 친박을 넘어 진박(진실한 친박)이라고 목소리 높이던 의원, 또는 측근들이 재판에 온 적이 있나요?"

도 변호사는 "본인이 들어간 재판에서는 (최경환, 홍문종, 윤상현 의원은) 보지 못했다"고 했다. 다만 현역 국회의원은 아닌데, 두 분이 박 전 대통령 재판에 빠짐없이 참석했다고 했다.

 한 명은 허원제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대표적인 친박계 인사인 그는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나 1974년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에 서울대 물리학과와 정치학과를 나왔다. 허 전 수석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사회에 눈을 떠 군 복무를 마치고 정치학과로 학사 편입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1978년 <국제신문>을 시작으로 <부산일보> <경향신문>, KBS, SBS 보도국을 거치며 언론인 생활을 한 허 전 수석은 2007년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대통령 경선후보 특보 겸 방송단장으로 정치계에 입문했다.

 이후 그는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방송특보를 역임하고, 2008년 제17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자문위원, 2008년 세계문화콘텐츠포럼 상임공동대표를 맡기도 했다.

2008년 허 전 수석은 한나라당으로 부산 진구갑에 출마해 제1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그는 한나라당 부산시당 윤리위원장과 수석부위원장을 맡았으나 19대 총선에서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이후 2012년 박근혜 대선후보 캠프에서 미디어발전본부장을 역임했고,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과 상임위원을 지냈다. 20대 총선에서 부산진구갑에 출사표를 던져 새누리당 공천을 받았지만 낙선했다.

 또 다른 한 명은 김재수 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다.

농업 분야에서 30년 넘게 공직 생활을 한 농정 전문가인 그는 1977년 21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농림축산식품부에서 농업정책과장과 농산물유통국장, 주미 대사관 농무관, 기획조정실장 등 주요 보직을 거쳤다. 농촌진흥청장과 농식품부 1차관을 지내고 2011년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농수산물 수출 확대와 유통 구조 개선에 기여한 성과를 인정받아 두 번이나 연임에 성공했다.

 2007년 공공기관 임기제가 도입된 이후 최초의 재연임·최장수 CEO란 타이틀을 갖고 있다. 경북 영양군 출신으로 경북고와 경북대 경제학과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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