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정으로 향하는 박근혜 전 대통령
[김민호 기지]지난달 16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동안 꾹꾹 눌러왔던 말들을 격정적으로 토해냈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은 법원이 같은달 13일 검찰의 추가 구속영장 청구를 받아들인 데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혐의 자체를 완전히 부인하며 자신이 '정치보복'을 당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재판부에 대한 믿음이 없다고 말해 향후 재판에 대한 보이콕을 암시했다. 이날 짜맞춘 듯 박 전 대통령 변호인단도 재판부에 일괄 사임계를 제출하며 실력 행사(?)에 들어갔다.

그리고 28일 박 대통령은 전날에 이어 재판 출석을 거부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이날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에 대해 "박근혜 피고인에게 계속 출석하지 않으면 그대로 공판 진행할 수 있고, 그 경우 방어권 행사에 지장이 있을 수 있다며 심사숙고의 기회를 줬는데도 오늘 공판에 나오지 않았다"며 박근혜 당사자 없이 궐석재판을 진행키로 했다.

실제로 이날부터 본격적으로 박 전 대통령의 변론에 들어간 변호인단의 상황도 녹록지 않아졌다.

형사소송법 제318조에 따르면 변호인은 증거 동의에 관한 의견만 낼 수 있을 뿐, 피고인이 출석하지 않은 공판에서 변호인이 어떤 증거를 동의 또는 부동의 하겠다고 밝혀도 효력이 없다. 게다가 박 전 대통령이 국선변호인단의 접견 요청을 계속 거부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변론을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돤 셈이다.

박근혜는 왜 불출석을 택했나?

박 전 대통령의 불출석 이유는 전날인 27일에 이어 이날 재판에도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이는 핑개일 뿐 점점 불리해지고 있는 국면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연장을 결정하면서 검찰이 추가 적용한 SK와 롯데와의 뇌물 공여죄 혐의를 받아들였다. 이는 단순한 혐의 추가의 의미를 넘어 재판부가 그만큼 박 전 대통령에게 제기된 범죄 혐의를 엄중하게 보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가 하면 최근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당일 최초 보고 시점 조작이나 국가위기관리기본지침 수정 의혹 등 박 전 대통령을 더욱 곤궁에 빠지게 만드는 정황들이 계속해서 나오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다.

또한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국정원 상납금 수수 의혹등 더 이상의 재판 출석은 의미가 없다고 판단, '벼랑끝 전술'로 재판거부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작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우병우 전 민정수석과 관련된 의혹 등 박근혜 정권 시절 자행된 적폐들이 추가로 수면 위로 떠오를 가능성도 상당하다. 그렇게 되면 박 전 대통령을 향한 비난 여론은 더욱 비등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어차피 앉아서 죽으나 서서 죽으나 매한가지인 만큼 국면을 어떻게든 뒤흔들 필요성이 있었다는 얘기다.

어쨌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재판 보이콧'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문재인 정부의 적폐청산 움직임에 '정치 보복' 프레임으로 맞대응하고 있는 보수야당 및 보수단체와 공동전선을 구축한 모양새는 됐다.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재판의 본질이 법리적 양상을 벗어나 정치적 문제로 옮겨붙을 수도 있다고 판단했을 지도 모른다.

박 전 대통령 측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번 재판을 법리 다툼이 아닌 정치적 문제로 몰고가겠다는 전략이다. 어차피 재판과정에서 불리한 정황들이 드러난 만큼 법리로 맞서기 보다는 재판의 불공성을 최대한 부각시켜 보수세력의 결집을 시도하고, 그를 바탕으로 판을 크게 뒤흔들어 보겠다는 심산일 것이다.

지난달 17일 오마이뉴스는 이는 2016년 12월 9일 국회 탄핵소추가 결정된 이후 박 전 대통령 측이 일관되게 보여주고 있는, 정형화된 패턴이라고 전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은 그동안 검찰과 특검의 수사 결과는 물론이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 절차와 과정까지 전면 부정해온 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재판부에 대한 불신을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재판의 과정과 결과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함으로써 보수세력의 준동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날(27일) 김세윤 42일만에 열린 박근혜 재판 불출석에 부장판사는 박근혜의 불출석에 대해  "또다시 출석을 거부하면 피고인 없이 공판을 진행할 수 있고 그 경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엄중 경고했다.

이날 서초동 한 변호사는 시사플러스와 통화에서 "'재판 보이콧' 결심이 박 전 대통령 입장에서 소수 친박 결집등 자가당착적 생각도 할 수 도 있겠지만 대다수 국민에게 두 번 버림받는 자충수를 둔 꼴"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인혁당 사건을 자행한 박정희 유신독재정권 당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한 박근혜 전 대통령. 박 전 대통령 눈에는 아직도 사법부가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것으로 보여질 수도 있겠지만 재판 절차를 부정하며 민주주의 질서를 따르지 않겠다는 행태를 어느 국민이 동의할까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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