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배 기자] ‘모래시계’는 1995년 1월 9일부터 1995년 2월 16일까지 방영되었던 24부작 드라마(연출 김종학, 극본 송지나, 출연 최민수·고현정·박상원·이정재). 지역 민영방송은 1998년 1월부터 전국적으로 재방송하였다. 이 드라마의 영향으로 수도권 방송이었던 SBS는 4개 지역 민방(PSB(KNN), 대구방송, 대전방송, 광주방송)을 개국하게 됐다.

한국방송사상 역대 시청률 3위를 기록(64.5% 1995년 2월 16일 방송)한 모래시계는 당시 모래시계가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기 위해 일찍 귀가해 거리가 한산할 정도여서 모래시계를 '귀가시계'라고 부르기도 했다. 홍준표 검사를 포함해 여러 검사의 실화를 모티브로 송지나 작가가 역사적 상상력을 동원해 집필했으며,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실제 필름을 드라마 방영 중간에 삽입하기도 하였다.

최근 ‘모래시계’에 나온 조직폭력배 모델로 알려진 여운환(64) 아름다운컨벤션센터 대표가 확정판결 25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고 있다. 여 씨는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광주지검 검사 시절, 조직폭력배 두목이라며 기소했던 인물이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여 대표가 광주고등법원에 자신의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대한 재심을 최근 광주고등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여 씨는 1991년 당시 호남 최대 폭력조직인 국제피제이파의 두목으로 지목돼 기소됐다. 당시 재판부는 조직폭력 두목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으나, 두목이 아닌 자금책 겸 두목 고문 간부라는 직책으로 유죄를 선고했다. 1994년 대법원은 징역 4년형을 확정했다.

여 씨는 재심청구서에서 “당시 자신을 폭력조직두목으로  지목한 유일한 증거인 사건 관련자 진술이 허위인데다, 94년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해당 진술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게 된 만큼 유·무죄 여부를 다시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검찰은 “국제-PJ파의 두목은 여씨를 비롯한 4명”이라는 조직원의 진술서를 근거로 여 씨를 구속기소했다. 또, 법원은 “여씨를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볼 증거는 없다”면서도 조직원의 진술서 등을 근거로 “여씨가 조직의 자금책이자 고문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에 대해 여 씨는 “당시 조직원의 진술서는 공판 전 증인신문조서를 증거로 인정하는 형사소송법 제221조의2를 근거로 작성됐지만, 1996년 헌법재판소가 해당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면서 “위헌법률을 근거로 진술서의 증거능력이 인정됐고 진술서가 거의 유일한 유죄의 증거였던 만큼 무죄가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증거능력을 인정하는 근거 법률이 위헌결정을 받았다면 재심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면서도 “재심이 무죄판단을 내릴지에 대해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지난 1991년 광주지검 검사로 근무하던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당시 정권 차원에서 진행되던 ‘범죄와의 전쟁’에 발맞춰 호남지역 폭력조직인 국제-PJ파에 대한 대대적인 소탕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여씨는 폭력조직의 두목으로 지목돼 구속 기소됐고, 대법원에서 징역 4년형이 확정됐다.

지난 1995년 홍 대표는 자신의 저서 ‘홍 검사 당신 지금 실수하는 거요’를 통해 이 사건수사 과정을 상세히 기술한 바 있고, 그 내용은 드라마 ‘모래시계’의 모티브가 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홍 대표는 지난 2001년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여 대표에 대해

아래와 같이 말했다.

“그 사람은 나하고 한 아파트 한 동 한 통로에 살았다. 광주시 북구 우산동 현대아파트 105동에 살았다. 나는 55평 전세 4500만 원으로 5층에 살았고, 그 친구는 12층 66평에 자가로 살았다. 그 친구를 알게된 것은 91년 7월 말에 광주에서 건설 폭력배를 수사하고 난 뒤의 일이다. 뒷 베란다에 나와서 11시쯤 담배를 피고 있는데 우리 아파트 앞으로 벤츠가 밀려들어오더라. 문을 여는데 양쪽에서 건장한 청년 둘이 내리고 한 사람에게 90도 절을 하더라. 그래서 한 눈에 '저거 깡패다'라고 생각했다. 관리실에 인터폰으로 연락해 여운환이라는 것을 알아냈고 그래서 그 이튿날 검찰청에 가서 물어보니, 여운환이가 국제 광주 피제이파 최대두목이고, 광주전남지역을 평정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부터 숨바꼭질해서 6개월 뒤에 구속했다. 그때도 재산이 300여억 원이었다. 4년3개월 (징역)살고 난 뒤에 정권 바뀔 무렵 서울에 올라와서 1000억 원대 재산가로 성장했다. 내사착수하고 난 뒤에 91년 9월 추석 이틀 전에 쌍칼을 받았다. 그 칼을 받고 나는 발끈했다. 용서하지 않겠다고. 당시 고통 속에서 수사를 계속했다. 지난 96년에는 깡패들의 협박을 피하기 위해 정치에 입문했다”라고 말했다.

한편 여 대표는 이날 채널A와 인터뷰를 통해 “모래시계 검사라는 걸 만들어서 여기까지 온 것을, 지금에라도 와서 진실이 밝혀져서 사회의 경종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홍 대표가 지난 4월 대선 당시 TV토론에 나와 과거 조직폭력배 수사와 관련해 “집으로 식칼이 배달돼 오고 심지어 아들을 납치하겠다는 협박까지 받았다”는 발언을 한 점도 문제 삼았다. 그는 “완전 날조된 영웅담이다. 그런 위치에 있는 분이 그렇게 혼자 자작해서 (되겠나)”라고 말했다.

하지만 홍준표 대표 측은 “언급할 가치도 없다”며 여 씨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