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성 이어 현대차도..정의선의 선택은?

삼성이 지배구조 개편 수단으로 삼성SDS 상장을 선택하면서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현대자동차 그룹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해 경영권을 넘겨받아야 하는 숙제를 여전히 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부회장이 2일 오전 서울 서초구 헌릉로 현대자동차그룹 본사에서 열린 ‘2014년 시무식’에 참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핵심 계열사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를 비롯해 부품과 철강 관련 계열사, 건설, 금융 등 26개 사업 분야에서 57개 계열사들을 거느리고 있다. 하지만 계열사수에 비해 지배구조는 단촐한 편이다.
'현대모비스-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제철-현대모비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형태가 현대차 그룹의 지배구조의 핵심.

나머지 계열사들은 대부분 손자회사 형태로 그룹에 소속돼 있다. 현대건설, 현대카드, 현대캐피탈 등을 현대차의 자회사로 두는 식이다.

형식상으로는 순환식 출자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있는 현대모비스를 장악하면 나머지 회사들은 자연스럽게 일통되는 형태다.

단순해 보이는 이 순환지배구조에 현대차 그룹의 고민이 있다.

정몽구 현대자동차 그룹 회장의 외아들인 정의선 부회장이 지배구조의 핵심인 모비스의 지분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몽구 회장은 총 9개의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다. 이 가운데는 현대모비스, 현대차, 현대제철 등 지배구조와 관련된 회사들이 포함돼 있어 확실한 오너십을 갖고 있다.

정의선 부회장도 총8개 계열사의 지분을 갖고 있지만 내용은 부친과 조금 다르다. 그가 지분을 가진 회사 중 지배구조에 관련된 곳은 기아차 한 곳 뿐이고, 나머지는 이노션, 현대글로비스 등 그룹 경영권의 핵심이라 하기는 어려운 기업들이다.

현대차 그룹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000년대 초반부터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시민단체와 소액주주 등 여론의 반발 때문에 번번히 물러서야 했다.

같은 고민에 놓여있던 삼성이 이번에 삼성SDS 상장카드를 내놓으며 정면 돌파에 나선 만큼 현대차의 다음 행보도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근 현대차 그룹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작은 움직임들이 하나의 거대한 퍼즐을 맞추는 변화일 수 있다고 분석한다.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확보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돈을 주고 주식을 사는 것이다. 하지만 실탄 확보가 문제다. 지배력 확보의 기준으로 불리는 '5% 지분'을 사들이려면 1조5000억원 가량의 막대한 현금이 동원돼야 한다.

부친인 정몽구 회장이 보유한 지분을 증여받는 방법도 있다. 이 역시 돈문제가 걸림돌이다. 약 2조원 정도로 평가되는 정 회장 소유 현대모비스 주식 전량(6.6%)을 정 부회장이 증여받을 경우 1조원이 넘는 증여세를 내야 한다.

결국 돈문제로 귀결되는 지배구조의 해법을 찾기 위해 현대차 그룹은 물밑에서 분주히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대엔지니어링 물밑 행보 주목

지난 4월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통합해 현대엔지니어링으로 재출범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지분변화가 흥미롭다.

정의선 부회장은 합병전 현대엠코의 지분 25.06%를 갖고 있었고, 현대엔지니어링 주식은 없었다. 합병전 현대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는 현대건설로, 전체 지분의 72.55%를 보유하고 있었다.

현대건설은 합병후에도 38.62%의 지분을 가진 현대엔지니어링의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2,3대 주주는 변화가 생겼다. 지분율 0%였던 정의선 부회장이 11.72%로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고, 정 부회장의 지배를 받는 현대글로비스가 3대 주주로 등장했다.

현대차 그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 부회장과 글로비스는 합병 전 현대엠코의 주식을 보유한 기준 주주 자격으로 주식매수선택권을 부여 받았다"면서 "이를 행사해 합병 후 현대엔지니어링 지분을 배정 받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이번 합병 이후 현대엔지니어링이 후계 구도와 관련해 어떤 역할을 하게 될지 주목하고 있다. 특히 합병 직후 현대엔지니어링이 중간 배당을 통해 정 부회장에게 현금을 손에 쥐어주기로 했다는 점은 눈여겨 볼만한 대목이다.

대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대엔지니어링은 합병직후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결의하고 주주확정 기준일과 주주명부 폐쇄기간 설정공고를 냈다. 기준일은 4월 30일이며, 폐쇄기간은 이달 14일까지 보름간이다. 중간배당은 주주확정 기준일 현재 주주로 등재된 사람만 받을 수 있으며, 주주명부폐쇄 기간 동안에는 주식명의 변경 등 주주명부에 기재된 내용을 바꿀 수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은 매년 20억원 가량을 현금으로 배당해오다 지난해에는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현대엠코 역시 2012년까지 매년 배당을 해오다 지난해에만 배당을 중단했다. 정 부회장이 합병 전 현대엠코로부터 5년간 받은 배당액이 476억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합병 후 받게 될 배당액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엔지니어링도 상장?

한발 더 나아가 현대차 그룹이 삼성의 전례를 따라 현대엔지니어링을 상장시키는 방안을 추진할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상장 후 주식가치가 크게 오르면 보유 지분을 처분해 현대모비스 주식 매입을 위한 실탄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 가운데 가장 높은 값어치를 지닌 현대글로비스의 활용방안이 나올지도 관심사다.

기업평가사이트 등에 따르면 정의선 부회장이 보유중인 계열사 지분은 약 3조8000억원 중 현대글로비스의 가치만 약 2조7000억원에 달한다.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상장회사 인데다 주가가 주당 25만원에 육박하는 만큼 주식을 어떤 식으로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재계 일각에서는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가 합병 가능성도 살펴보고 있다.

현대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을 합병하던 방식을 적용하면 기존주주 자격으로 자연스럽게 현대모비스의 주식을 배정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방식은 여론의 뭇매를 맞아 가로막혔던 과거의 방식과 유사한 것이어서 현실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물류업체와 부품제조사인 두 회사간 시너지를 찾기 어려운데다 규모 차이도 워낙 커 합병 명분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현대차 그룹의 경영권 승계는 현금승부로 결론 날 가능성이 커보인다.

실제로 정 부회장은 최근 현대차 계열 광고회사인 이노션 지분을 매각하는 등 현금 확보에 나서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정 부회장은 보유중이던 지분 40%를 4000억원에 모건스탠리PE와 스탠다드차타드(SC)에 팔기로 했다.

이 거래로 정 부회장은 실탄을 확보하고, 그의 여동생인 정성이 이노션 고문은 경영권을 확보하는 효과를 얻게 됐다.

재계 관계자는 "정의선 부회장이 현대모비스 지분을 사들이기 위해 현금 확보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면서 "산술적으로 아직 1조원이 넘는 자금이 더 필요한 만큼 여러 계열사들 중 현대엔지니어링과 현대글로비스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안이 강구되고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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