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약국 독점지위 악용땐 국민부담 늘어날 것"
약사들 "보건의료 문외한 문형표 복지부장관은 허수아비"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법인약국과 소규모 동네약국들은 애초에 경쟁이 되질 않습니다. 법인약국 설립이 허용되면 돈 없는 동네약국들은 그냥 죽으라는 얘기나 다름없어요."

정부는 지난 13일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제4차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고 의료·고용·지자체 규제 개선에 초점을 맞춘 4차 투자활성화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의 일환으로 법인약국 도입이 재추진 된다. 현행 약사법에 따라 약사 한 명이 약국 한 곳만 운영할 수 있고, 법인 형태의 약국 설립은 할 수 없도록 규정 돼 있다.

하지만 정부는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약국 설립을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을 내년 6월 국회에 제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인약국이 도입되면 약사가 회사를 만들어 여러 개의 프랜차이즈 형태의 기업형 약국 운영이 가능하다.

법인약국 설립 논란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이어졌다. 2002년 법인약국을 금지한 약사법 제20조 규정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직업선택 자유와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이유로 헌법 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약사들의 반발로 도입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정부는 논란의 되고 있는 영리법인 약국과 약사들의 반발을 고려해 법인약국 설립과 운영은 약사면허 소지자만 참여 가능하도록 제한했다.

또 법인약국의 형태로 주식회사가 아닌 사원들이 일정 기준 이상 책임을 지는 '유한책임회사'를 예로 들었다. '유한책임회사'는 회사 주주들이 채권자에 대해 자기 투자액 한도 내에서 법적 책임을 지는 회사를 말한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유한책임회사는 한 가지 예로 설명했을 뿐 법인약국의 형태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며 "법인약국의 형태는 정책의 효과를 높이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가장 적합한 형태를 선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법인약국 도입으로 약국이 대형화됨에 따라 약을 대량 구매하게 돼 약값이 인하되고, 소비자들의 약국 선택 폭이 넓어지는 등 서비스가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법인약국이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경쟁에 나설 경우 기업형 슈퍼마켓(SSM)처럼 동네약국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 동네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들은 '동네 골목까지 진출한 SSM으로 동네 슈퍼마켓들이 하나 둘 없어지는 것과 유사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며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6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약사 김모(46·여)씨는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대형화된 법인 약국들이 생기면 동네약국 폐업은 불 보듯 뻔하다"며 "약국 역시 국민 건강증진과 보호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자본의 논리를 적용하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고 성토했다.

서울 마포구에서 약국을 운영 중인 약사 최모(38)씨는 "보건복지분야에 문외한인 문형표 장관을 임명한 정부의 의도가 무엇인지 드러나고 있다"며 "공공재 성격이 강한 약국을 자본의 논리로만 판단하는 재정전문 복지부 장관은 스스로 물러나는 게 맞다"며 한 숨을 내쉬었다.

동네 약사들과 동거 동락했던 토박이 주민들도 정부 비난에 가세했다.

주부 차순애(55)씨는 "국민의 건강마저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결정한 정부의 일방적 행태가 문제"라며 "정부는 법인약국 도입을 철회하고 동네 약국을 더욱 활성화하고 보호할 장치를 마련해야 된다"고 말했다.

대학생 김영원(24·여)씨는 "법인약국이 생기면 자본에 의한 독점으로 공공재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며 "그 피해가 국민의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우려했다.

약사들은 앞으로 정부와의 일전을 불사할 태세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19일 이사회를 열고 법인약국 도입 반대 결의문을 채택하고 정부에 대해 법인약국 도입을 추진할 경우 대정부 투쟁에 나설 방침이다.

약사회는 성명서를 통해 "의료민영화 일환으로 추진되는 정부의 법인약국 허용정책에 대해 깊이 분노한다"며 "국민건강권 확보를 위해 법인약국 설립을 허용하는 약사법 개정안 저지에 국민과 함께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대자본의 약국시장 장악은 국민건강 훼손과 경제적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사회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켜 거대자본의 투자처 확대 이상의 의미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약사회는 "법인약국 도입은 보건의료서비스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배제하고 궁극적으로는 의료민영화로 가기 위한 포석"이라며 "동네약국 몰락으로 독점적인 지위를 확보한 체인 약국들이 가격조정 등을 통해 국민 부담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법인약국 설립은 법 개정이 필요한 사안인만큼 입법 과정에서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방적 정책 추진으로 국민들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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