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전반에 걸쳐 본격적으로 보폭 넓힐 전망

▲ 눈 감은 이재용 부회장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건강악화로 향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역할에 관심이 모야지고 있다.

12일 삼성그룹은 브리핑을 통해 지난 11일 새벽 저체온 치료에 들어간 이 회장이 13일 오전께 의식을 되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이 회장이 의식 회복 후 후유증을 보이지 않더라도 심폐소생술(CPR)과 스텐트(stent) 삽입 시술까지 받은 상황에서 기존처럼 '출근경영' 등을 이어가기에는 무리가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그동안 이 회장 옆에서 실무적인 부분을 챙겨온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승계와 함께 회사경영 전반에 걸쳐 본격적으로 보폭을 넓힐 것이란 전망이다.

실제로 이 부회장은 올 들어 유독 해외 비즈니스 거래선 및 정재계 인사들과의 만남에 주력하는 등 글로벌 경영에 속도를 붙였다.

올해 그의 행보는 삼성의 '1인자'로의  발걸음이었다.

지난 1월에는 미국 최대 통신회사인 버라이즌의 로웰 매커덤 회장의 초대를 받고 미국에 다녀왔으며, 2월에는 중국 베이징에서 왕양(汪洋) 중국 부총리와 만남을 가졌다. 지난달 9일에는 중국 보아오포럼에 참석해 스마트폰을 이을 차세대 신수종 사업으로 의료와 헬스케어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같은달 26일에는 이건희 회장을 대신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조찬에 참석해 삼성그룹의 '얼굴' 역할을 수행했다.

지난 1일에는 신종균 삼성전자 IM(IT·모바일)부문 사장 등과 함께 2주간의 일정으로 미국을 찾았다. 이 부회장은 이번 출장에서 갤럭시S5 판매 등을 점검하고 시스코, 버라이즌 등 해외 파트너들과 협력 방안을 논의하다 이 회장의 입원 소식을 듣고 서둘러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올 들어 빡빡한 해외일정을 추진하며 글로벌 경영, 인맥관리 등에 속도를 내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이 공식 후계자로써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외신들도 이재용 부회장의 역할에 대해 조명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5세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의 국제적인 얼굴로 애플과 같은 기업들과의 거래를 중재해 왔다"며 "또 삼성은 이 부회장이 글로벌 재계 지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했으며 고객사와 파트너십을 구축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WSJ는 이어 "창업주 일가는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순환 출자를 통해 삼성을 지배하고 있고 이건희 회장과 자녀 3명은 80여개에 이르는 삼성 계열사들을 지배하고 있다"며 "전문가들은 최근 삼성이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확보에 사실상 도움이 될 조치들을 취해 왔다고 분석하고 있고, 이 중에서도 가장 최근 행보는 삼성SDS 상장 추진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WSJ는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SDS의 3대 주주로 지난해 말 기준 1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사실상 삼성그룹의 지주회사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1%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언급했다.

로이터 통신도 이 회장의 건강 소식을 전하면서 결국 이재용 부회장이 회장직을 승계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의 건강악화로 별도의 경영 대책을 세우지 않았으며, 평소처럼 경영에 임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재계 안팎에서는 지난달 17일 귀국 이후 출근 경영을 통해 그룹 사업 재편을 진두지휘해온 이 회장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그룹 경영에 영향이 가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제기해 왔다.

하지만 이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장은 "이 회장이 평소에 직접 경영에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평소 해오던 대로 경영에 임하고 있다"며 "이재용 부회장도 오늘 병원에 있다 업무를 위해 출근, 점심엔 임원들과 오찬을 가질 것"이라고 전했다.

매주 수요일 오전에 진행하는 '수요 사장단회의' 등도 정상적으로 진행할 방침이라고 알렸다.

한편 삼성그룹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해 온 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작업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전망이다.

삼성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빠른 속도로 계열사간 사업 및 지분 조정에 나서고 있다.

제일모직은 패션사업을 에버랜드로 넘겨 소재전문기업으로 재탄생한 뒤 삼성SDI와 합병했다. 삼성종합화학과 삼성석유화학을 합쳐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약했던 화학계열사 정리에도 나섰다.

또 삼성전기, 삼성물산, 삼성중공업이 보유하고 있던 삼성카드 지분은 삼성생명이 매입했고, 삼성전기, 삼성정밀화학, 제일기획, 삼성SDS가 갖고 있던 삼성생명 지분도 처분하면서 금융계열사와 비금융계열사간 불필요한 지분 관계를 정리했다.

지난 8일에는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서현 사장이 모두 지분을 갖고 있는 삼성SDS를 연내 유가증권시장 상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회장의 건강악화를 계기로 금융과 건설 사업부문 조정과 지분정리 등 경영승계를 위한 작업이 한층 빨라질 전망이다. 현재 재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전자·금융 계열사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호텔·건설·중화학, 차녀 이서현 제일기획 사장이 패션·미디어를 맡는 방향으로 정리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저작권자 © 시사플러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