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1987에서 배우 김윤석
[김승혜 기자]'조사관이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 는 그 유명한 표현이 나오는 영화 1987에서 배우 김윤석 씨가 맡은 역할로 당시 대공사건을 총지휘하던 인물은 박처원 치안본부 5치안감이다. 실제로 기자들에게 이같이 말했던 인물은 당시 강민창 치안본부장이다. 영화 속에서 바로 옆에서 지켜보던 김윤석이 열연한 역은 희대의 궤변으로 진실을 숨기려 했던 인물 박처원이다.

박처원 치안감은 1929년 평안남도 진남포에서 출생했다. 해방 후 월남해 1947년 경찰이 되면서 줄곧 대공파트에서만 근무했다. 당시 간첩 수사에서는 상징적 인물로 이름이 통했다.

그에 대해 역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박처원이란 사람은 경찰서장도 안하고, 도경국장도 안하면서 치안본부 2인자까지 올라간 사람이다. 자기가 잡은 간첩이 수백명이다, 수천명이다 그러면서 존재를 과시했다. 그런데 70년대 이후에 잡았다고 하는 것의 상당 부분은 조작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밝혔다.

박처원은 남영동 대공분실을 중심으로 이른바 '박처원 사단'을 형성했지만 결국 영화에서 보듯 그 존재는 박종철군 고문 치사 사건으로 드러나게 된다.

영화에서는 박 치안감이 구속되는 것으로 끝나는데, 사실 법원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다. 당시 판결문 내용은 "피고인들이 경찰에 봉직하면서 명예나 권력을 추구하지 않고 오로지 대공분야에 헌신했고 유죄판결 자체만으로도 그동안 쌓아올린 공로에 치명상을 입게 된 점을 참작, 집행유예를 선고한다"는 내용이다.

이후 대법원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출소했다. 박종철에 대해 단 한 번의 사과도 하지 않았던 박처원은 오히려 ‘고문기술자’ 이근안의 은신도피를 지원했다가 징역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기도 했다. 

그와 함께 주목할 인물이 '고문 기술자' 이근안인데 실제로 박처원과 이근안의 관계는 상사와 부하 ㅛ관계가 아닌 분신이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근안의 이력을 살펴보면 1970년 순경으로 경찰에 입문했다.곧바로 당시 대공분실장이던 박처원의 경호원 역할을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처원의 도움으로 대공업무에서 경력을 쌓았고, 둘의 관계는 평생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이근안 역시 언론에 부각된 것은 김근태 전 의원의 고문 가해자로 지목되면서부터이다.

1985년 김근태 당시 민청련 의장이 경찰 조사를 받을 때, 이근안을 끌어들인 게 박처원으로 박처원 치안감은 '김근태가 입을 열지 않는데 당신이 맡아야겠다'며 이근안에게 고문을 지시했다. 이때 얻은 별명이 지금까지 화자되고 있는 '고문기술자'이다.

김 전 의원의 고문 사건은 오히려 박종철 고문 치사 사건 뒤 이어진 민주화의 흐름 속에 재수사 대상이 됐고 국회가 여소야대로 바뀐 1988년 법원이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기소가 이뤄졌다.

하지만 이근안은 수사망이 좁혀지자 그 무렵 11년에 이르는 도피 행각을 시작했다. 그 도피를 지시한 게 박처원이었다. 박처원 치안감은 이근안이 고소되자 1988년 12월 24일, 이씨를 불러 도피를 지시한 것이다.

이후 박 치안감은 카지노업자로부터 10억 원을 챙겨 이중 일부를 이씨 등  '박처원 사단' 고문 경찰에게 건네왔다. 이러한 사실은 이근안이 1999년 자수하면서 드러났다.

역사의 죄값(?)으로 박 치안감은 이미 10년 전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근안 역시 허름한 다세대 주택 지하방에서 암에 걸린 부인은  요양병원에 보내고 홀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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