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송월 북한 삼지연관현악단장을 비롯한 북한예술단 사전점검단이 22일 오후 1박2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경기 파주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통해 북으로 돌아가고 있다.
[김승혜 기자]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이 인솔한 북한 예술단 사전점검단이 1박 2일간의 방남 일정을 마치고 22일 오후 늦게 북으로 돌아갔다.

현 단장은 지난 15일 판문점에서 열린 북한예술단 평창방문에 관한 실무접촉 회담장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날 북측 차석대표로 참가한 현송월(34) 모란봉악단 단장은  미국의 뉴욕 타임스(NYT), CNN를 포함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북한은 자국의 대표단을 파견할 때 왕왕 차석대표가 실세인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석대표로 판문점에 나온 현송월이 회담 테이블에 앉자 북한 요원이 먼저 서류철을 현송월 앞에 올려 놓았다. 명색이 이날 북쪽 수석대표인 권혁봉 문화성 예술공연운영국장도 현송월 단장의 눈치를 보며 회담에 임했다고 한다.

회담 중에도 현송월이 말을 많이 했다고 한다. 누가 보아도 현송월이 북측의 실세임이 금방 들어 났다. 한국의 통일부가 제공한 이날 회담 내용을 본 미국의 언론 들은 “한때 처형설로 사라졌던 현송월이 국제적으로 이목이 집중된 남북 회담에 김정은의 지지를 받고 나타났다” 고 보도했다.

NYT는 “북한 김정은과의 염문설 등 루머의 주인공인 현송월이 평창 올림픽 참가단의 실세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미국 언론들은 현송월의 이름을 Hyun Song-wol로 표기한다. 영어 이름을 표기할 정도로 서방 언론에서도 이미 닟이 익은 인물로 알려졌다. 언론들은 "한때 ̒김정은의 옛 애인설이 있는 현송월이 지난해 10월 당의 핵심 기구인 중앙위원회 후보 위원에 임명됐다"면서 "이번에 실무 대표로 나온 권혁봉 문화성 국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위치로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뉴욕 포스트지는 “현송월은 1990년대 영국에서 선풍적 인기를 모은 여성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Spice Girls)를 모방한 모란봉 악단을 대표하는 가수로 한때 김정은의 애인으로 알려져 주목을 받았다"고 전했다.

또 미국 연예지 ‘빌보드’지는 현송월은 이제 모란봉 (Moranbong) 악단의 단장이 아니라 북한 “오케스트라의 수장”으로 불린다고 보도하면서 5가지 면에서 유명한 인물이 됐다고 밝혔다.

첫째 그녀는 이번 남북회담에 참석한 대표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이 되었다. 남북을 통틀어 대표급 여성은 현송월 뿐이었다.

둘째 그녀는 김정은과 북한을 찬양하는 노래로 인기를 모았는데, 평창 올림픽의 축제에서 모란봉 악단이 어떤 역할을 할 지 분명하지 않다. 한국의 국가보안법은 북한 정권을 찬양하는 것을 불법으로 간주하고 있다.

셋째로 그녀는 악단장이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는 여성이다.

넷째 현송월은 “한번 죽었다가 돌아온 사람”이다. 그녀는 2013 년에 포르노그라피에 연루되어 정치적 반체제 인물로 취급 되었다. 그러나 2014년에 그녀가 공개적으로 전국 예술가 회의에서 연설을 한 후 이 소문이 잘못 보고 된 것으로 밝혀졌다.

다섯째 그녀는 “준마처녀”라는 뮤직 비디오로 세상에 떴다. 2005년 부터 유행을 타기 시작한 그녀의 노래는 북한의 발전을 위해 일하는 공장 직원으로 묘사 된 뮤직 비디오였다. 모란봉 악단의 제작의 뮤직 비디오 “준마 처녀”(Excellent Horse-Like Lady)는 디스코와 트로트를 조화시킨 오래된 팝 장르를 연상시킨다.

한편 NYT, CNN 등은 김정은과 현송월의 스캔들을 다뤘다.

이들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원래 두사람의 '스캔들'은 김정은이 스위스 베른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2000년도 초반부터 둘의 관계가 시작됐다고 한다. 생전에 영화광이고 예술인들과 자주 어울리던 아버지 김정일의 영향으로 김정은이 현송월과 자연스럽게 가까워 졌다는 것이다. 현송월이 유명 예술단원으로 활동 도중 김정일은 김정은에게서 떼어 내기 위해 활동 중단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갑자기 활동을 중단하고 사라졌다.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을 앞두고 있던 김정은은 현송월과의 관계를 정리하라는 김정일의 지시를 끝내 받아들였고, 이때 현송월은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부녀가 됐음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말을 무시한 김정은의 요구로 관계를 지속했다.

그후 2013년, 은하수관현악단 단원들과 함께 음란물을 찍은 혐의로 총살당했다는 보도가 전해졌고 한동안 공식 석상에도 나타나지 않아 총살설이 크게 퍼졌으나, 2014년 5월에 평양에서 열린 제9차 전국예술인대회에 모란봉악단 단장 직함으로 대좌 군복을 입고 나와 연설을 하면서 다시 건재함을 알렸다.

2015년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베이징에서 공연할 예정이었으나 모종의 사정으로 중단하고 귀국했다. 중국이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대한 항의로 고위 인사들의 참석을 철회하고 김정은 찬양 노래 등을 부르지 말 것을 요구하자 이에 반발하여 돌아온 것으로 추측된다.

1995년까지 중앙당 국제부장으로 일하다가 사망한 현준국 노동당국제부장의 조카로서 고위층 집안 출신인 현송월은 20012년 3월에  딸을 낳고 전 남편과 이혼을 했다고 한다. 이혼사유는 “장군님께서 주신 혁명임무를 더 잘 수행하기 위하여 가정보다는 악단사업에 열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것은 김정은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고 평양사람들은 확정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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