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희 기자]"그렇게 사니 행복하십니까?"

A판사는 이혼 조정기일에 나온 70대 원고에게 이렇게 말했다. 별거를 권함에도 원고가 이혼을 원하자 대놓고 창피를 준 것이다. A판사는 "결혼은 신성한 계약이라 함부로 깰 수 없다"며 자신의 가치관을 강요한 뒤 "별거하는 것으로 조정하지 않으면 이혼 기각 판결을 할 수 밖에 없다"고 으름장까지 놨다. 이 사건은 이후 변경된 재판부에 의해 이혼 판결이 났고 위자료까지 인정됐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서울변회)는 이 재판을 가리켜 "상대방과 상대방 소송 대리인 앞에서 노골적으로 예단을 드러낸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가 25일 공개한 법관 평가 결과에 따르면 여전히 소송 당사자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거나 막말을 퍼붓는 사례들이 다수 지적됐다.

판사들과 직접 이해관계가 얽힌 변호사들이 내놓은 평가란 점에서 공정성이 완벽하게 담보됐다고 볼 순 없지만, 사법부에 대한 신뢰 확보 차원에서 문제점에 대한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변회 관계자는 "이번 평가에서 최하위점수를 받은 법관은 47.43점으로 95점 이상을 받은 우수법관 14명의 평균 점수 96.29점과 무려 48점 이상의 차이를 보였다"고 말했다.

이번 평가에 참여한 변호사들이 제출한 사례에 따르면 재판 도중 소송대리인을 "거기"라고 하거나 "OOO씨"라고 부르는 경우가 확인됐다.

B판사는 여자 변호사에게 법정에서 "나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거 싫어한다"고 밝혔다. 해당 변호사는 "변호사를 소송대리인이 아닌 여성으로 보고 한 발언으로서 담당 소송대리인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도 듣고 불쾌함을 느꼈다"고 털어놨다.

판사의 무례함 때문에 애꿎은 변호인만 무안을 당하기도 했다.

C판사가 사건 당사자인 장애인이 제때 소 제기를 할 수 없었던 이유를 얘기하자 코웃음을 치며 "그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고 한 것이다.

이 변호사는 "장애인 진술보조인이 재판이 끝난 후 '판사님이 장애인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전혀 없다'고 말할 때 법조인으로서 너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서울변회는 "판사가 준비서면, 증거 내용을 잘 모르는 것도 부족해 '그런 내용이 어디 있느냐'고 하며 대리인에게 고성과 반말을 하는 경우도 제출됐다"며 "심지어 사건 쟁점이 어려운 내용도 아닌데 원고 주장을 매 기일마다 물어보고 적용 법조까지 물어보는 등 사건 파악에 대한 의지가 전혀 없는 판사도 있었다"고 전했다.

D판사는 "다음 기일 갈 것도 없다. 빨리 끝낼 사건"이라고 하면서 심증을 조기에 극단적으로 표출했다. 기일 지정에 있어서도 대리인이 이미 겹치는 기일이 있어 다른 날을 잡아 달라고 하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정했다.

판사가 재판 진행에 있어 당사자 일방을 노골적으로 편드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판사는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제기한 다른 소송과 관련해 질문하면서 "왜 그렇게 많이 청구했느냐"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 그는 법리상으로 원고 패소 판결을 쓸 수 밖에 없게 되자 원고 전부 패소임에도 불구하고 소송비용을 각자 부담하도록 했고 이에 대해서는 불복수단조차 없었다고 서울변회는 설명했다.

F판사는 항소심에서 "저는 원심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이 약정은 원고들에게 불리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등 적극적으로 심증을 드러냈다. 당시는 항소심 '첫 변론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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