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일 법정에 앉은 래리 나사르 전 미국 국가대표
[김승혜 기자]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옳고, 의사이며, 자격이 있고, 남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으며, 단지 치료를 했다고 생각한다. 난 당신에게 내 개도 보내지 않을 것이다"

미국 미시간주 랜싱법원의 아킬리나 판사는 24일(현지 시각) 체조 국가대표 팀 닥터였던 래리 나사르(54)에게 175년형을 선고했다.

그러면서 아킬리나 판사는 나사르에게 형을 선고하면서 "당신은 다시는 감옥 밖으로 걸어나갈 자격이 없다"며 판결문을 '사형 집행 영장'이라고 표현했다.

선고가 끝나자 이를 지켜보던 피해자와 가족들은 서로 부둥켜안고 눈물을 터뜨리고, 발을 구르며 박수를 쳤다.

당초 법조계에서 '25년' 정도로 예상한 형량이 사실상 종신형으로 늘어난 데는 피해자 156명이 일주일간 법정에서 이어간 '증언 릴레이'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175년의 형량의 발단은 무려 30년 간이나 체조선수 156명을 성추행 또는 성폭행한 나사르가 최근 아킬리나 판사에게 자신이 유죄를 인정하도록 교묘히 조종당했다면서 마치 피해 여성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것에서 시작됐다.

나사르는 편지에서 "미디어가 그들(피해자들)에게 내가 한 모든 것이 잘못이라고 설득한 것"이라면서 "그들은 내가 믿음을 깼다고 생각한다.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 그건 완벽한 악몽"이라고 밝혔다.

이날 법정에서 편지 일부를 읽던 아킬리나 판사는 혐오스럽다는 듯 편지를 내던지고는 "당신은 아직도 당신이 한 짓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 편지가 말하고 있다"고 일갈했다.

정형외과 전문의 나사르는 1986년부터 국가대표들을 치료하다 명성을 얻어 공식 팀 닥터가 됐다. 2014년 그가 교수로 있는 미시간주립대 여학생들이 '나사르에게 추행당했다'고 처음 신고했고, 이듬해 선수들의 비슷한 증언들이 지역 언론에 보도됐지만 모두 묻혔다.

나사르는 2012년 런던올림픽과 2016년 리우올림픽서 미국 여자 체조팀 '선전'의 최대 공로자 대접을 받았다. 그러다 지난해 10월 런던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매카일라 마로니(22)가 "13세 때 전지훈련에서 나사르에게 처음 당했다"는 폭로 글을 올렸다. 할리우드의 성폭력 고발 캠페인 '미투(Me too)'에 힘입었다고 했다. 여기에 알리 레이즈먼, 개비 더글러스 등 2020년 도쿄올림픽 상비군의 '미투' 증언이 이어지면서 미 체육계가 발칵 뒤집혔다. 나사르는 지난해 11월, 80여명에 대한 성추행 혐의로 기소돼 구속됐다.

나사르는 이번 공판 전까지 "어린 선수들이 치료 행위와 오해한 것" "경기력이 떨어지니 대중의 관심을 끌려고 나를 이용한다"며 여론전을 펼쳤다. 이에 담당 판사인 로즈메리 아킬리나는 지난 18일부터 피해 여성 80여 명을 모두 법정 증언대에 세우기로 했다.

체조 선수뿐 아니라 그에게 진료받은 수영·축구·배구 선수 등 10~30대 여성들이 쏟아낸 증언은 충격적이었다. "나사르에게 '진료'를 받은 후 출전한 경기 중 내내 성기가 쓰라렸다" "올림픽 스타가 되려면 그를 믿고 따라야 한다고, 나사르도 체조협회도 부모님도 나를 '세뇌'했다" "날 진료대에 눕히고 몹쓸 짓을 하는 동안, 나사르는 커튼 뒤의 우리 엄마와 종교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직까지 남자의 손만 봐도 치가 떨린다"…. 6세 때부터 10여년 동안 추행당한 선수, 첫딸을 낳은 뒤 '이대로 거짓을 덮고 갈 순 없다'고 결심했다는 전직 선수, 성폭행 충격으로 끝내 자살한 선수의 어머니가 출석해 오열했다.

'눈물과 분노의 증언'이 전국에 생중계되면서, 숨어 있던 피해자들도 합류해 증인은 총 156명으로 두 배가 됐고 증언 기간도 일주일로 늘어났다.

뉴욕타임스는 "미 법정 사상 유례없는 '거대한 카타르시스의 장'이 펼쳐졌다"고 전했다. 수년간 선수들의 신고를 묵살해온 미 체조협회 회장과 이사진, 미시간주립대 총장 등이 지난 며칠 새 줄사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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