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호 기자]검찰이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는 핵심 측근인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을 구속 기소하면서 사실상 이 전 대통령에 대해 주도적으로 국정원에 특수활동비 불법상납을 요구한 사실을 적시했다. 이로써 이 전 대통령은 조만간 퇴임 6년 만에 검찰 포토라인에 서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 송경호)는 5일 김 전 기획관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 및 국고손실 혐의로 구속기소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을 이 사건의 주범, 김 전 기획관은 ‘방조범’으로 판단한 것이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국정원으로부터 받은 돈을 어디에 사용했는지에 대해 계속 조사할 방침이다. 김 전 기획관에게 적용된 국고손실이나 뇌물죄 혐의는 돈을 수수한 것 자체로 범죄가 완성되기 때문에, 사용처에 대한 부분은 보강수사를 거쳐 계속 조사하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검찰은 국정원 특활비를 사용하는 것도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랐던 것으로 보고 있다. 뇌물을 받고, 사용하는 과정 모두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결과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지시로 지난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걸쳐 2억원씩 총 4억원의 국정원 특활비를 상납받은 혐의를 받는다. 먼저 2008년 4~5월께 이 전 대통령은 당시 김성호 전 국정원장에 직접 특활비 상납을 요구했고, 김 전 원장 지시를 받은 김주성 당시 기조실장이 국정원 예산관에게 돈을 전달하도록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김성호 전 국정원장에게 특활비 상납을 요구한 것으로 파악했다. 이 전 대통령은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에서 돈이 올 것이니 받아 두라"고 직접 지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와 관련 김주성 전 국정원 기조실장은 이 전 대통령과 독대해 "국정원 돈 전달이 문제될 수도 있으니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로 만류하기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기획관은 또 2010년 7~8월께에도 부하직원을 시켜 청와대 부근에서 국정원 특활비 1억원이 든 쇼핑백 2개, 총 2억원 건네받았다. 이 역시 이 전 대통령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요구해 받은 것이다.

김 전 기획관은 검찰조사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돈 수수한 것"이라고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국정원 특활비를 주고받은 복수의 청와대-국정원 직원들도 대부분 사실관계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검찰은 이상득 전 의원도 재소환 여부를 검토 중이다. 이 전 의원은 지난달 26일 휠체어를 타고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았지만 병환을 이유로 4시간 만에 귀가한 바 있다.

이 전 의원은 조사 과정에서 나이, 주소 등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인정신문 외에 혐의를 전반적으로 부인하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돈을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없다는 취지다. 이에 검찰은 지난 조사에서 이 전 의원의 입장을 명확히 파악한 만큼 재조사가 유의미할지 여부에 대해 신중히 검토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기획관을 방조범으로 기소하면서 주범을 명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중요 사건 수사 결과를 내세우면서 전직 대통령을 애매모호한 상황에서 공소장에 적시하진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검찰이 기소해 놓고 나서 해당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를 수집하는 식으로 특수수사를 하지 않는다"며 "수사를 할 만큼 한 상태에서 현 단계에서 입증할 수 있는 부분에 한에서만 기소한다"고 덧붙였다. 이미 이 전 대통령의 주범 혐의를 입증할 증거와 진술이 상당수 확보됐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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