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혜 기자]법조계에서 촉발된 '미투'(Me Too·성폭력 피해고발) 운동이 문학계로 번졌다.

지난해 최영미 시인이 발표한 '미투 시(詩)'가 뒤늦게 주목받고, 신임 한국시인협회장에 선출된 감태준(71) 시인이 과거 성추문 전력의 논란이 되고 있다.

당사자로 지목된 감태준 시인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30년 전 일이라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당시 후배 문인을 격려한다는 취지에서 한 행동이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된 행동이라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최영미 시인은 계간 문예지 '황해문화' 겨울호에 '괴물'이라는 제목의 시를 올렸다. 이 시는 'En선생 옆에 앉지 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으로 시작된다.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감히 삼십년 선배를 들이박고 나는 도망쳤다"는 전개가 이어지면서 성추행을 일삼는 작가 'En'의 행태가 적나라하게 묘사됐다.

 
작가 'En'의 실명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노털상 후보로 En의 이름이 거론될 때마다/ En이 노털상을 받는 일이 정말 일어난다면,/ 이 나라를 떠나야지/ 이런 더러운 세상에서 살고 싶지 않아"라는 암시적 표현이 있었다.

'문단 내 성폭력 아카이브'는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문학이란 이름으로 입 냄새, 술 냄새, 담배 쩔은내 풍기는 역겨운 입들"이라며 "계속해서 다양한 폭로와 논의와 담론이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적어도 처벌이나 사람들 눈이 무서워서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하도록. 최영미 시인님 고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최근 사단법인 한국시인협회의 42대 회장으로 선출된 감태준 시인의 과거 성추문 사건도 논란의 중심에 섰다.

앞서 한국시인협회는 지난달 23일 평의원 회의에서 감 시인을 새 회장으로 뽑았다. 선출된 회장은 3월 31일 열릴 총회에서 이·취임식을 거쳐 공식 회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감 시인은 지난 2007년 중앙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를 성추행했다는 추문에 휘말려 해임됐다.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피해자 진술이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감 시인은 해임처분을 취소하라고 소송을 냈으나 패소했다.

논란이 확산되자 최영미 시인은 한 언론과의 통화에서 “제 시를 문학작품으로 봐주시기 바란다. 문단과 사회에 만연한 우상 숭배를 풍자한 시다. 지금은 더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한편 트위터 ‘문단-내-성폭력 아카이브’ 계정과 페이스북 등 에스엔에스에서는 또 다른 문인들의 성폭력에 관한 주장과 실명이 올라오면서 2016년 문단을 달구었던 문단 성폭력 고발 운동이 재연될 조짐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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