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 낭송하는 고은 시인
[김승혜 기자]"En선생 옆에 앉지말라고 문단 초년생인 내게 K시인이 충고했다. 젊은 여자만 보면 만지거든", "옆에 앉은 유부녀 편집자를 주무르는 En을 보고, 내가 소리쳤다. '이 교활한 늙은이야!'", "자기들이 먹는 물이 똥물인지도 모르는 불쌍한 대중들"

최영미 시인이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에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성추행을 당했고 또 목격했다는 경험을 말하면서 한국 문단의 거목 고은 시인이 나락으로 추락했다.

세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시가 관심을 받은 건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46·사법연수원 33기)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e-pros)’ 게시판에 올린 글 ‘나는 소망합니다’가 미투 운동(#Me_Too)으로 번지면서부터다.

이때부터 최영미 시인의 시 '괴물'은 주요 소셜 미디어에 공유되기 시작했고 네티즌들의 관심은 온통 En선생에 쏠렸다. 많은 누리꾼들은 이 시에 나오는 '노털상'은 노벨상이고 En은 고은의 이름이라며 고은 시인을 'En선생'으로 추측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류근 시인이 En선생의 실명을 공개해 고은 시인을 '확인사살' 시켰다. 류근 시인은 지난 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몰랐다고? 고은 시인의 성추행 문제가 드디어 수면 위로 드러난 모양이다. 최영미라는 시인께서 지난 가을 모 문예지의 페미니즘 특집에 청탁받아 쓴 시가 새삼 주목을 끌고 있는 것이다. 놀랍고 지겹다"고 밝혔다.

결국 고은 시인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30여 년 전 어느 출판사 송년회였던 것 같은데, 여러 문인들이 같이 있는 공개된 자리였고 술 먹고 격려도 하느라 손목도 잡고 했던 것 같다”며 “그럴 의도는 없었지만, 오늘날에 비추어 성희롱으로 규정된다면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뉘우친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미 네티즌들의 눈엔 '용서할 수 없는 자'였다.

결국 고은 시인은 2013년 8월 수원시가 마련해 준 장안구 상광교동 광교산 자락의 주거 및 창작공간(문화향수의 집)에 거주한 지 5년 만인 18일 이곳을 떠나기로 햇다.

이날 고은재단 측은 "창작공간에 거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이주를 준비해 왔다"면서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불편한 수원시의 관계와 이웃한 광교산 주민들의 "우리는 47년간 개발제한구역과 상수원보호법 때문에 재산피해를 보고 있는데, 수원시가 고은 시인에게 특별지원을 하는 것은 잘못됐다. 고은 시인은 광교산을 떠나라"는 불만과 세간의 따가운 시선을 외면하기에는 그는 늙은 시인에 불과했다.

"아흔이 다 돼가는 늙은 문인에게 너무 가혹한 잣대는 들이대지 않았으면 한다”는 한 원로 작가의 우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고은 시인은 '괴물'이 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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