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영 기자]이명박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의혹이 일고 있는 자동차부품회사 '다스'(DAS) 비자금 중 120억여원과 관련해 시중은행 직원들이 돈세탁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현재 검찰의 비자금 수사는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그중 120억원은 이 전 대통령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아 다스 경리직원 개인이 횡령한 비자금으로 결론 났고, 나머지 두 종류의 비자금은 수백억대 규모로 전해진다.

시중은행은 비자금 은닉 목적의 차명계좌 개설에만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일부 은행 직원들이 120억 자금세탁에도 관여한 사실이 드러나 다스의 다른 비자금들도 은행을 통한 '세탁'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20일 사정당국 등에 따르면 다스 비자금 120억여원을 차명관리한 세광(다스 옛 협력업체) 경리직원 이모씨는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의 간부급 직원들을 동원해 돈세탁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다스 비자금 조성 당시 경리팀 소속이었던 조모씨가 주로 외환은행 법인 계좌에서 수십억원이 출금되는 날짜만 골라 허위출금전표 삽입, 출금액 과다기재 등의 수법으로 매월 1억~2억원씩 수표로 조금씩 인출했고, 이를 전달받은 세광 경리직원 이씨는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직원들에게 수표를 건네 돈 세탁을 부탁했다는 것이다.

당시 국민은행 울진지점의 이모 부지점장과 영천지점 윤모 과장은 이씨로부터 전달받은 수표 1억5000만원을 세탁하고 4억7400만원 상당의 양도성예금증서를 발행했다.

하나은행의 박모 차장과 이모 대리는 이씨의 부탁을 받고 주식회사 다스 명의로 된 10억원 상당의 수표를 전액 현금으로 세탁한 후 이씨의 친인척 명의로 된 차명계좌로 입금했다.

이상은 다스 회장을 보좌했던 전직 다스 직원에 따르면 이씨는 무직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은행 VIP"라고 자랑하고 돌아다녀 주변 사람들이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직원들도 2008년 특검 조사에서 "VIP 고객인 이씨를 위해 수표를 현금으로 세탁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든 금융거래를 당사자 본인의 이름으로 거래하도록 한 금융실명제법을 다름 아닌 대형 금융기관이 위반한 셈이다.

일각에서는 시중은행 직원들이 다스 비자금의 차명계좌와 금액까지 인지할 정도면 비자금 조성 수법이나 관여 인물 등에 대해서도 일정부분 알고 있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국민은행은 자금세탁 뿐만 아니라 비자금을 은닉하는 데 활용된 차명계좌를 관리해준 정황이 포착됐다. 국민은행 직원들은 당시 이씨가 김모씨 명의로 차명계좌를 보유한 사실을 인지했으며, 10여명의 계좌로 10억원 상당의 자금을 관리하도록 도왔다고 한다.

하나은행도 이 전 대통령과 얽혀 있다. 하나은행은 지난 2000년 이 전 대통령이 실소유한 의혹을 받고 있는 BBK에 5억원을 투자한 사실이 확인된 바 있다.

하나은행은 내부 문서에 BBK를 LKe뱅크의 자회사로 명시했다. LKe뱅크는 이 전 대통령이 재미사업가 김경준씨와 함께 설립한 사이버 종합금융회사로 BBK의 실질적인 지주회사다. 하나은행이 BBK에 투자할 당시 은행장은 이 전 대통령과 대학 동문(고려대 경영대학 61학번 동기)인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이었다.

조씨는 2008년 2~3월경까지 김성우 전 사장 등 경영진과 공모해 다스 회사 차원의 비자금 및 경영진 개인의 비자금 조성에 각각 관여하면서 회사 몰래 자신의 비자금 120억여원을 보유했다.

검찰이 120억원과는 별개로 비자금 '두 뭉치'를 더 발견한 만큼 조씨와 각별한 관계인 이씨가 다스 비자금을 동일한 수법으로 돈세탁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동부지검에 마련된 다스 수사팀이 과거 검찰은 물론 특검의 수사기록까지 샅샅이 훑어본 만큼 시중은행 직원들이 다스 직원의 비자금 조성에 개입한 사실을 확인했을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직원 개인의 단순 비리로 보고 덮을지, 직원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을 물어 법인을 처벌할 것인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시중은행들의 비위 사실을 금융당국에 통보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다스 비자금 자료를 수집·분석해온 김경율 회계사(참여연대 집행위원장)는 "검찰이 다스 비자금 120억원과 다른 두 비자금의 조성 수법이 수표로 인출하는 점에서 일치한다고 확인했기 때문에 다른 비자금들도 이런 방법으로 은행을 통해 세탁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은행 직원이 자금세탁이 불법인 걸 알면서 본사에 보고도 하지 않았을 가능성은 낮은 만큼 어쩌면 (은행을 통한 자금세탁이) 다스 비자금 의혹을 풀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120억원을 직원 개인의 횡령으로 결론 냈는데 세상에 어떤 직원이 비자금을 만들면서 수표를 활용하겠냐"면서 "수표는 흔적이 남기 때문에 계좌이체나 다름없다. 회사 차원의 조직적인 방법이 아니면 수표를 이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조씨와 이씨 두 사람이 다스 법인자금을 사적으로 유용한 사실도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액수만 최소 5억여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세광공업이 폐업한 뒤 일정한 직업이 없었던 이씨는 매월 생활비 명목으로 200만원씩 5년간 약 1억원을 썼다. 이씨는 또 주택구입 자금 1억원, 재산취득비용 1억원, 다스 직원 조모씨와의 유흥비 등으로 총 4억여원을 다스 비자금에서 끌어다 썼다. 조씨도 전세보증금 1000만원을 비롯해 다스 수표를 현금화 한후 1억원 상당을 개인적으로 쓴 것으로 전해진다.

조씨가 120억원 이외에 2008년 2~3월경까지 김성우 전 사장 등 경영진과 공모해 다스 회사 차원의 비자금과 경영진 개인의 비자금 조성에 관여했다는 검찰 조사에 비춰보면 유용액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검찰 관계자는 "2008년 당시 회수된 120억원 이외에 별도 은닉 자금이 있다. 금액에 대해서는 조사를 할수록 계속 증가하는 추세에 있기 때문에 상당한 금액이라는 것 이외에는 구체적인 건 확인해주기 어렵다"면서도 "금액은 말 못하지만 적지 않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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